99 환경주일 공동설교문

 돌은 돌이고 떡은 떡이다

구약 / 창세기 2:7-9, 15-17, 3:1-7 . 서신 / 로마서 5:12, 17-19  .복음 / 마태복음 4:1-11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우리는 죄인들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기면 좋으련만, 우리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 섬기는 우상 숭배자들입니다. 같이 살도록 짝 지워준 내 형제를 내 몸처럼 사랑하고 살면 좋으련만, 우리는 형제를 미워하며 싸우며 경쟁하고 삽니다. 하나님 은혜에 겨워, 성령에 이끌리어, 홀린 듯, 술취한 듯, 주님 사랑하고, 형제 사랑하고 살면 좋으련만, 애만 쓰지 되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 우리의 무력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을 주님의 자비의 날개로 덮어 주십시오. 갈래갈래 부서진 이 마음을 지금 주님 발 앞에 쏟아 붓습니다. 진흙과 같은 우리를 빚으셔서, 주님의 형상으로 만드십시오. 주님만 섬기게 하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갈릴리로 가셔서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시기 전에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광야에서 세 가지 시험을 받습니다. 그 중에 첫 번째 시험이 "이 돌들이 변하여서 빵이 되게 하라"입니다. 개역 성경에는 떡으로 되어 있고 새번역 성경에는 빵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탄이 예수께 다가와서 "이 돌들이 떡이 되게 하라" 그렇게 유혹을 했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 제목을 "돌은 돌이고 떡은 떡이다."라고 정했습니다. 고승의 법어 같습니다. 그래서 꽤나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을 줄 알지만 말 그대로입니다. "돌은 돌이고 떡은 떡입니다."

사탄이 예수께 다가와서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라" 할 때 '이 돌로 어떻게 떡을 만들지?'하고 고민하는데 바로 거기에 속임수가 있는 것입니다. 돌은 돌이고 떡은 떡인데 왜 돌을 떡으로 만들어야 합니까?

유대 광야에는 돌이 많이 널려 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돌이 많지요. 언뜻 보면 배가 고픈 사람들은 그 돌들이 떡처럼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 돌들, 쓸데없는 돌들, 그것을 차라리 떡이 되게 해서 굶는 사람들에게 먹이면 얼마나 좋을까, 저 돌들, 쓸데없고 가치 없는 돌들을 떡으로 만들라는 말입니다. 소위 부가가치를 높이라는 말입니다. 그 돌들은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그 돌에다가 가공을 하면, 즉 색칠을 하거나 자르거나 하면 비싼 상품이 되지요.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만이 당한 유혹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이 당한 유혹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한마디로 돌을 떡으로 만드는 역사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인간들이 시날광야에서 바벨탑을 쌓습니다. 그들이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써서 탑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돌로 집을 지으면 한 층 밖에 못 짓습니다. 벽돌로 집을 지으니까 2층도 되고 3층도 됩니다. 흙으로 집을 지으니깐 작은 집밖에 못 짓습니다. 역청은 시멘트입니다. 벽돌과 시멘트로 집을 지으니깐 5층, 6층도 지을 수 있고, 아파트도 짓고, 다리도 놓고, 도시가 생깁니다. 문명이라는 게 무엇입니까? 자연 그대로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다가 사람의 손을 가해서 돌대신 벽돌로, 흙대신 시멘트로 집을 짓고, 도시를 만든 것이 문명 아닙니까? 문명은 자연을 촌스럽다고 합니다.

원시인들은 타고난 몸 하나 가지고 삽니다. 벌거벗고 뛰어다닙니다. 그러나 문명인이라는 사람들은 몸에다가 무엇을 걸칩니다. 나뭇잎을 걸치다가, 가죽을 걸치다가, 지금은 멋진 옷을 걸치고 있습니다. 산수가 너무나 아름답고 좋습니다. 그것을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화폭에 그림으로 그리고, 그림을 거실에 붙여 놓고 '야, 경치 좋다' 합니다. 이것이 문명인들이 예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 이거 그냥 보니깐 별로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들을 전부 거룩한 장소로, 성전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가 '거룩할 성'자를 붙여서 거룩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다 같은 집이지만 예배당은 성전이다 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집과 구별합니다. 거기에서 하는 일은 성직이다 해서 우리의 직업하고 구별합니다. 똑같은 의자고, 피아노지만 이것을 예배당에 갖다 놓으면 성물이라고 해서 우리 집에 있는 의자하고 구별합니다.

돌을 벽돌로 바꾸고, 자연스러운 것을 인공으로 바꾸고, 땅의 것을 하늘의 것으로 바꾼 결과가 어떻습니까? 더 편리하고, 더 쾌적하고, 더 행복해졌습니까? 지금 우리는 훨씬 더 숨이 막히고, 훨씬 더 소외되고, 사람을 잃어가고 피곤해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지, 왜 사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무수한 현대인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교회당이, 거룩한 성전이 온 땅에 가득한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이 20세기가 끝나가는 마지막 시간에 어디에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우리를 뒤덮고 있는 어둠과 혼돈의 안개가 서서히 걷혀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불어 보내시는 바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서야 사람들이 무엇인가가 잘못됐다 하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지금 속아 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자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될텐데, 큰일날텐데 하는 위기의식이 살아난다는 말입니다. 그 동안 정신없이 '돌을 떡으로 만들자' 하면서 살아왔던 그 삶에 제동이 걸리기 시작합니다. "돌은 돌이고 떡은 떡이다" 하는 자각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 단순한 진리 "돌은 돌이고 떡은 떡이다"하는 사실을 현대인들이 깨닫는데 2천년이 걸렸습니다. 아이들도 다 알아듣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사실을 똑똑하신 어른들이 받아들이는데 오백년이 걸리고 천년이 걸리고 2천년이 걸렸습니다. 사탄이 우리보다 더 교활합니다. 우리를 교묘하게 속였습니다.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말을 우리가 최근에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이 우주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말입니다. 사람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요, 뭇 생명과 해와 달과 별들과 돌과 산과 물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우주는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질서를 따라서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잘 보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든 현대문명은 마땅히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땅의 것을 저 하늘로 올려간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하늘로 올려간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땅으로 옮겨와야 합니다. 성전 안에 가두어 놓은 모든 것들, 소위 거룩하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을 이제는 신전을 허물고 원래 있던 곳으로 다 되돌려 보내는 세속화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어둠과 혼돈의 바다 위에 하나님의 영이 휘돌고 있었다는 그런 기록이 있죠? 거기 하나님의 영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바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의 바람이 혼돈 위에 운행하실 때, 혼돈이 가시고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가 드러납니다. 이 하나님의 바람, 성령이 이제 우리 위에 휘돌고 있습니다. 우리를 뒤덮었던 어리석음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합니다. 몽롱한 가운데 속아 살던 우리가 이제 정신이 들기 시작합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제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돌은 돌이고 떡은 떡인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돌을 떡이 되게 하라는 무모한 시도를 그쳐야 합니다. 그래도 돌을 떡으로 만드시겠습니까? 예수께서도 하지 않으셨던 일입니다. 사탄이 예수보고 "이 돌들을 떡덩이가 되게 해야되지 않겠느냐?"하였을 때 예수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려고 오늘도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은 돌을 떡으로 만들려는 무모한 노력을 하기보다는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시험을 끝내시면서 사탄에게 이런 일격을 가합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겨라"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지음 받은 피조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 뿐입니다. 그 분을 섬기는 일 하나 뿐입니다. 그 분을 경배하는 일 뿐입니다. 웨스터민스터 교리문답 제 1조 1항에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대답은 인생의 첫째 목적은 하나님을 기뻐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목적입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 분만을 섬기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것만이 우리가 할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 설교를 마치면서 시편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숨쉬는 자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