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반공해선언문

                                   한국의 공해현실에 대한 우리의 주장

-제12회 세계환경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의 공해문제는 민족통일과 민주주의, 그리고 기본적 인권의 확립과 함께 우리 민족이 물어야 할 최대의 과제이다. 20∼30년 전만 해도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었던 푸른 하늘, 맑은 물, 깨끗한 공기, 비옥한 토양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공해 피해지역으로 변해 버렸다.

그 이유는 60년대 이후 강행된 대재벌 위주의 대외의존적이고 반민중적 경제정책에 따른 것이다. 겉으로는 경제규모가 커졌지만 400억불 이상의 외채로 인하여 우리는 자주성을 잃어갔고 선진국의 공해산업과 사양산업이 우리나라에 무더기로 몰려 들어왔다.

따라서 민중의 삶을 파괴하는 일부 산업 폐기물이 우리의 생활에 내버려졌다. 기업들은 공해방지시설이 있다 하여도 가동비를 줄이기 위해 야밤이나 장마철에 폐수와 매연을 뿜어내어 물고기의 떼죽음을 초래시켰을 뿐만 아니라 주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해왔다. 위에 든 다국적 기업에 의한 피해로 대표적 예가 울산공단과 여천공단이다. 울산 온산 공단의 극심한 공해는 농어민을 비롯한 주민 5만 여명의 생활터전을 박탈, 집단이주를 불가피하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당국의 예산도 대재벌을 위한 금융지원에는 후한 반면 국민건강과 직결되는 환경투자에는 전혀 배려를 하지 않고 있다. 선진국의 경우 환경개선투자에 국민총생산의 3∼4%를 할애하고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고작 0.05% 선인 것이다.

그 결과 공해의 피해는 농 어촌과 도시를 가릴 것 없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어 우리의 삶을 구체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12,000명이 호흡기 질환으로 죽었던 1952년 영국 런던의 대기오염 상황과 현재 서울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영국의 환경전문가는 경고하고 있다. 77년도 대기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질환자가 전체 환자의 27%였던 것이 불과 5년 후인 83년에는 46%로 증가하였다.

서울 등 대도시에는 아황산가스와 질소산화물이 섞여있는 산성비가 내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배기가스의 규제치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최고 15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서울시민은 미국인보다 11배나 많은 납을 인체에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장폐수와 농약 합성세제로 오염된 강에서는 기형 물고기가 대량으로 잡히고 우리의 식수원인 한강을 비롯한 5대 강에서 인체에 유독한 수은이 검출되고 있다. 수은 중독은 일본의 경우 560명의 사망자와 5,000여명의 공해환자를 야기한 무서운 병인데, 발병까지 7년 이상 수십년이 걸리며 자손에게까지도 영향이 미친다.

작년 인천에서는 공장의 유독한 카드늄과 납으로 30여톤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으며 울산 포항 마산 여천 광양만 등은 이미 황금어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 충남 홍성에서는 82년 상반기에만 47명이 농약중독으로 죽었다. 우리의 농약 사용량은 최근 15년 동안 16배나 늘었고 이에 따라 농민의 82%가 농약에 중독되었으며, 30.8%는 요양치료해야 할 정도의 중증이다.

78년 전남 담양의 고씨 농가 일가족은 수은중독으로 인해 많은 피를 쏟고 팔다리가 마비되고 눈의 초점이 흐려져 전체 국민을 불안으로 몰았지만, 당국은 수은중독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였다.

우리는 70% 이상의 식품을 인스턴트 가공식품으로 사용하고 있다. 250가지 이상의 방부제 색소 화학조미료 표백제 등이 사용되고 있는 가공식품으로 인해 우리의 식탁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79년도 드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20억불이 30초 사이에 없어진 이후 한 건의 원자력발전소 건설 주문이 없는 실정인데 우리는 1기에 20억불 이상하는 원자력 발전소 44기를 건설할 계획으로 있다.

또한 80년대 들어서면서 우리는 미증유의 핵 위험에 놓여있다. 이제 핵문제에 민족의 사활문제가 걸려 있는 것이다. 민족 전체를 전멸시킬 가공할 핵무기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대치하고 있는 현실에 우리는 전율을 금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공해의 고통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공해방지를 위해 가장 문제 삼아야 할 것은 지금까지의 환경을 파괴하면서까지 강행한 경제정책이다. 앞으로는 공해확산의 일차적 책임자인 당국과 기업의 공해 방지에 대한 적극적 자세와 과감한 투자가 요청된다.

따라서 건강과 안전, 환경보전, 교육, 문화 등에 대한 종합적인 질적 발전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피해자인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의 소극적 방관적 자세에서 벗어나 공해추방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피해주민이 공해문제에 적극적 관심을 갖고, 반대운동을 전개한다면 공해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에 우리는 공해추방을 위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환경파괴형 경제정책을 지양하고 소득의 공평한 분배와 민중의 권리를 보호하는

경제정책으로 전환하라.

1. 행정당국과 기업은 공해방지에 과감하게 투자하라.

1. 기업의 악질적인 공해배출행위는 사회적 살인행위이므로 가차없이 처벌하라.

1. 의도적으로 공개하지 않는 공해자료를 국민 앞에 공개하라.

1. 행정당국은 지금과 같은 형식적인 규제가 아닌 건강에 피해가 없는 규제로 제반

법규를 재정하라.

1. 공해피해지역 주민의 피해를 정당하게 보상하라.

1. 안전성이 문제되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반대할 뿐 아니라, 한반도 주변의 모든

핵무기가 철거되고 한반도가 비핵지대로 설정될 것을 요구한다.

1. 생존권을 위해서는 시민 모두가 자각하여 반공해운동에 앞장서자.

1984년 6월 5일

한국공해문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