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생활양식과 환경위기의 극복방안
한국교회환경연구소 김영락

1. 들어가며

환경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어서 머지 않아 파국에 이를 것같은 상황이다. 아니 이미 파국은 시작되었다. 그 증거는 환경이 파괴되어서 인간까지도 죽게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반성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인간의 탐욕을 위해서 환경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는 계속해서 성장일변도로 나가고 있으며, 국가간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경제성장으로 인한 자원고갈과 환경파괴는 가속화 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경각심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면역성이 생겨 둔감해지고 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더욱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며, 어떻게 하면 더욱 인생을 즐길 것인가에 눈이 어두워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신이 오염된 것을 의미하며, 또한 환경오염이 단순히 물질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준다.

2. 현대인의 생활양식

(1) 화학농법과 수세식화장실(도시화의 문제)

자연생태계는 식물 생장으로 유기물이 생산되고, 동물이 식물을 먹음으로 그 유기물이 소비되고, 동물이나 식물의 사체나 배설물은 흙에 있는 미생물에 의하여 분해되고, 그 분해된 유기물은 식물에게 공급된다. 그래서 생태계에서 유기물은 생산자(식물), 소비자(동물), 분해자(미생물)의 순환고리를 따라 돌게 되어있다. 옛날의 농작물 생산방식은 바로 이런 자연의 원리에 따라 수행되었었다. 그래서 식물을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풀이나 분뇨 등으로 거름을 했었고, 사람이 배설한 인분도 거름으로 쓰였다. 그런데 현대의 농사법은 화학비료를 주어서 생산하고, 또 인간의 배설물은 수세식 화장실에서 정화조를 거치기는 하지만 강물로 가서 오염을 시키고 있다. 초기에 화학비료는 손쉽게 농사를 짓게하는 것으로 알려져 각광을 받았지만, 3-40년간 화학농법으로 농사를 지은 결과 땅은 산성화하고, 농작물들은 병충해에 약해져서 맹독성의 농약을 사용하게 되었다. 맹독성의 농약은 그것을 다루는 농부에게 피해를 주고, 농산물을 오염시켜, 도시의 소비자들의 건강을 해치게 되었으며, 농약으로 인하여 토양과 수질이 오염되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농촌에서도 재래식 화장실을 없애고 분뇨를 인위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사회구조적 측면에서 보면 수세식 화장실은 도시화에 의하여 더욱 확산되었다. 화학농법과 수세식 화장실은 생태계의 순환구조를 깨뜨린 것인데도 현대의 농산물 생산과 배설물 처리의 대세를 이루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없이 도시화에 의한 것이다.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음식쓰레기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음식쓰레기가 도시쓰레기의 골치거리가 되고 있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문제이다. 현대에 와서 도시화를 근본적으로 역행할 수는 없을 지라도 농촌의 문화를 살리고 도시생활 속에서도 흙을 가까이 하는 삶이 필요하다.

(2) 자동차와 냉장고, 그리고 세탁기(기계화와의 문제)

지난 여름,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서는 오존에 의한 대기오염 문제가 크게 대두되었었다. 서울에서 여러번 오존주의보가 발령되었는데 그 원인은 자동차 배기가스였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오존층파괴로 인하여 피부암이나 백혈병의 위험이 있다는 얘기와, 내년부터는 오존층파괴로 인한 위해성을 미리 예보를 통하여 알리겠다는 신문 보도도 있었다. 사람들 중에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다. 오존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단순화시켜서 말하면, 성층권, 지상 10 내지 50km 상공에 있는 오존은 생명체에 해로운 광선이 우주로부터 날라오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에 좋은 것이요, 지상에 있는 자동차 배기가스에 의한 오존은 사람의 호흡기에 들어가서 손상을 주기 때문에 나쁜 것이다. 이렇듯이 상공에 존재함으로 생명체를 보호해 줄 오존이 지상에 발생함으로 공해가 되는 것이다. 한편 성층권의 오존층은 냉장고나 에어컨의 냉매로 쓰이는 프레온 가스에 의하여 파괴된다. 거의 모든 가정에서 사용되는 냉장고, 그리고 매년 여름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에어컨이 오존층 파괴의 주 원인이다. 하나님은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해서 오존을 하늘에 두셨는데, 인간의 기계문명은 하늘의 오존은 파괴하고, 땅에 오존을 만들고 말았다.

세탁기의 문제는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합성세제로 인한 수질오염의 원인이 되고 있다.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는 편리함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무절제하게 사용되고 있는데, 문제는 이러한 기계문명은 인간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정신적으로 나태하게 만들고, 물질의존형 인간을 만들게 된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문명의 이기는 돈이 없이는 그 편리함을 누릴 수 없기 때문에 돈에 집착하게 됨으로 물질주의적인 인간을 만들게 된다. 마태복읍 6:24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물질에 집착하면 결국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다는 뜻이기에 물질주의는 인간의 영혼까지도 병들게 한다는 말이 된다.

기계문명으로 인하여 각가지 공해가 발생하고 있는데 이는 편리함이라고 하는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있다. 편리함을 포기하지 않는 한, 환경오염은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3) 화석연료와 원자력(산업화의 문제)

지구의 생명체는 태양으로부터 빛이라는 에너지를 받아서 살아가게 된다. 식물이 광합성을 통하여 에너지를 축적함으로 지구의 생태계가 살고있다.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석유나 석탄은 먼 옛날 동물이나 식물이 태양으로부터 받은 빛의 에너지를 축적하여 화석화시킨 에너지로서 이를 우리는 화석연료라고 부른다. 에너지의 근원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빛에너지이다. 그런데 제3의 불이라고 부르는 원자력은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가 아니고, 원자의 구조를 분열시키거나 융합시킴으로서 얻는 것이다.

원자력은 인간에게 허락된 것일까? 태양빛의 근원이 원자력이다. 태양이나 별에서는 핵융합에 의하여 막대한 에너지가 방출되고 있다. 그 에너지가 여러종류의 빛으로 우주공간을 향하여 날라가고 있으며, 그 중에 극히 일부분을 지구가 받아서 생명체가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 빛 중에는 너무나 강해서 생명체에게 해로운 빛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빛을 차단하시기 위해서 지구의 성층권에 오존층을 만드셔서 생명체를 보호하고 계신다. 태양 빛도 직접 쬐면 해롭듯이, 원자력에 의한 빛(방사능)도 인체에 해로운 것이다. 원자력은 한마디로 지상에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태양이나 별의 것이며, 거기에는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원자력의 문제점은 방사능으로 인한 환경오염 이외에 원자력발전소에 의한 사고의 가능성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을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것은 산업화로 인한 막대한 에너지 수요때문이다. 풍요로운 삶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에 에너지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기는 물론이요, 물, 종이, 쌀, 옷 등등 모든 것을 생산하는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전력생산량의 1/3 이상이 원자력에서 얻어진다. 이미 우리는 죽음의 에너지를 사용하며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도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화석연료도 재생 불가능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사용을 억제해야 한다. 석유는 60년, 석탄은 200년 쓸 것 밖에 없다고 하는데, 우리의 후손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소모하는 것은 비윤리적인 것이다.

3. 환경위기의 근본원인

환경위기는 산업혁명에 의하여 초래되었다고 한다. 그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기계화가 되고, 분업화가 되면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환경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산업혁명이 일어난 근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이 원초적으로 가지고 있는 탐욕 때문이다. 보다 편하게, 많은 상품을 만들어서 부요하게 되려는 욕망으로 산업화는 가속화 되고, 급기야는 다른나라를 식민지로 만들어 생태적으로도 제국주의를 확대해 나갔다. 그러므로 산업혁명이 환경오염의 원인이 아니라,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이 원인이다. 현대사회의 위기는, 그런 관점에서 볼 때에, 엄밀히 환경오염이 아니라 환경을 오염시킨 인간의 문제이다.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그로 말미암아 인간 사회의 질서가 무너지며 범죄, 인륜 타락 등의 문제와 더불어 환경이 위기에 서게 됐다. 현대의 환경위기와 그로 인한 생명파괴는 물질주의, 인간중심주의, 과학기술주의 등에 의하여 가속화되고 있다.

(1) 물질주의

현대사회의 특징을 여러 가지로 규정할 수 있지만 단순화하면 물질주의이며, 다른 말로는 '돈'이 지배하는 사회이다. 현대는 물질주의가 극에 달하여, 인간이 물질을 만들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오히려 인간을 규정하고, 인간을 속박한다. 사람들은 물질을 소비하며 자아를 실현한다고 착각한다. 사람을 평가할 때에도 그 사람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재력, 능력, 월급, 자동차 등으로 평가한다. 개인이나 작은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국가나, 국제사회도 돈이 좌우한다. 대통령의 외교도 경제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최근의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은 온 세계를 하나의 시장으로 만들어서 더욱 치열한 무역경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 말은 온 세계가 돈을 위해서 치열한 싸움을 한다는 뜻이다. 올림픽의 금메달도 돈으로 따져지며, 가수나 배우의 인기도 돈으로 환산된다. 장기이식수술이 보편화되면서 심지어는 인간의 장기도 돈으로 불법매매 되고 있다. 윤락가에는 노골적으로 짙은 화장을 한 여성을 쇼윈도에 전시하여 '판매'하며, 예술작품을 빙자한 성의 상품화도 확산되고 있다. 대중 매체는 광고를 통하여 상업주의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텔레비전은 이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현대사회는 이렇게 수요를 창출함으로서 소비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어서 물질주의는 심화되고 있다.

(2) 인간중심주의

지금까지의 문화는 인간 중심적이었다. 인간을 위해서 모든 자연 만물이 존재하는 것이고, 인간의 생존만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서 어떠한 자연 파괴나 자원소비도 정당화되었었다. 이러한 인간중심주의는 민족주의를 거쳐 개인주의에까지 이르면서 모든 피조물이 함께 살아야 할 지구를 파멸로 가져갔다. 성경에서 문화명령의 근거가 되는 "땅을 정복하라. . . . .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말씀은 잘못 이해됨으로서 인간중심적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안식일 계명, 안식년계명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만이 아닌 육축도 쉬도록 명령하시고, 땅도 칠년에 한번은 쉬도록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인간만을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의 교만이며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같이 공존하며 서로 사앙하라고 하신다. 이제 사랑의 지평이 모든 피조물에게까지 확대 되어야 한다.

(3) 과학기술주의

인간들이 우상시 하고 있는 현대과학기술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나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경외심을 떨어뜨리고 인간이 마치 하나님의 자리에 선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유전공학이나, 첨단 의학기술, 첨단 정보시스템은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것처럼 환상을 심어주고 있으나, 이것들은 또 다른 사회적, 윤리적 문제들을 야기시켜 인류의 미래를 더욱 불안하게 한다. 많은 사람들은 현대사회 위기의 핵심이 될 에너지, 식량, 환경의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예를 들어서 에너지의 문제는 원자력을 이용함으로서 해소할 수 있다고 하고, 혹자는 핵융합에 의한 에너지 생산이 곧 실용화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주 요원하며 그것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식량의 문제도 국제사회에서의 정의를 구현함으로 해결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화학농법이나 유전공학 등의 과학기술로 해결하려 함으로 더 복잡한 다른 환경오염과 생명파괴의 문제를 낳고 있다. 과학기술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할수록 문제는 더 미궁으로 빠져 들어간다.

4.. 환경위기의 극복방안

(1) 청빈, 절제 그리고 나눔

물질주의를 극복하지 아니하고는 환경보전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실제의 예를 살펴보면 이것은 허구임을 알 수 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고 있는 현대인과 우리의 조상들을 비교하면 현대인이 몇 십배 더 행복해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어느 조사에 의하면 일본인이 느끼는 행복도보다 인도네시아인이 느끼는 행복도가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행복은 소유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욕심에 반비례하는 것임을 유의해야 한다. 물질이 풍요로울 수록 욕심은 더 커지고 행복은 멀어지는 것이다. 청빈과 절제는 물질주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단순화 시켜서 말한다면 '돈을 쓰지 않는 것이 환경운동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돈이 사용되는 곳, 즉 상업화가 조장되는 곳에서 환경은 유린되기 때문이다. 절제하여 남는 재물은 가난한 이와 나누어야 한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들에 의하여 환경이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2) 작고 겸손함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의 의미를 폭 넓게 적용할 수 있다. 배기가스를 많이 내뿜는 대형승용차보다는 소형승용차가 아름답고, 화려한 옷보다는 검소한 옷이 더 아름답고, 교만한 사람보다는 겸손한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들마다 자기가 잘났다고 으시대는 시대에,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하는 마음으로 시류에 좇아가지 않는 사람이 아름답다. 이와 같은 덕목은 말로는 참으로 쉬운데 실천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작아지는 것은 세상에서 도태됨을 의미한다. 지금까지의 환경의 위기는 인간이 지구를 독점하였기 때문에 온 것이다. 이제는 인간이 작은 것을 아름답게 여길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작아져야 인간도 살고 피조물도 산다.

(3) 불편하고 단순함

현대인이 못 참는 것이 불편함이다. 편리한 세상에 깊이 길들여 있어서 잠시도 불편한 것을 참지 못한다. 편리함을 제공하는 여러가지 문명의 이기 중에서 환경을 파괴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는 각가지로 환경을 오염시키고, 일회용품은 쓰레기를 양산하고 있으며, 텔레비젼은 광고로 소비조장을 하고 있다. 불편하지 않으면서 환경보전하는 법을 찾는 것은 동그란 세모를 찾는 것과 같다. 불편함을 극복해야 한다. 편리함에 빠지면 인간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도 나약해진다. 이미 현대인의 다리는 약해져 있고, 정신적으로도 편리함에 중독되어 있다.

불편하고 단순한 것이 좋은 것이다. 상업화된 사회는 자꾸만 복잡하고 자동화되고, 보기 좋은 상품을 만들어 내지만 그것들은 더욱더 많은 자원을 소비하고 제한된 용도로 밖에는 쓸 수 없는 것들이다. 문명의 이기는 인간들의 활동력을 높여 그만큼 더 피조물을 억압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하는 일이란 대부분이 궁극적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다. 불편한 것은 인간을 위해서나 피조물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다. 불편함을 즐기자.

(4) 시간에 쫓기지 않는 삶

앞서 말한 불편함을 즐기려 해도 문제는 시간이다. 손으로 빨래를 하려하고, 버스로 다니려해도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변명한다.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와지지 않으면 환경보전을 실천할 수 없다. 바쁘지 말아야 한다. 바쁜 이유를 살펴보면 대부분은 이기적인 욕심을 차리느라 바쁘다. 자신의 건강과 정신적 여유를 위해서도 바쁜 것은 지양해야 한다. 어떻게? 단순한 생활을 하면 된다. 자동차나 전화, 컴퓨터와 같이 시간을 절약해 주는 문명의 이기의 혜택을 누리고 사는 현대인이 그런 것 없이 우마차를 타고 다니던 옛날 사람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바쁜 이유는 무엇인가? 생활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바쁜 마음을 진정시키자. 덜 먹고, 덜 쓰고, 덜 놀고, 덜 다니자. 시간에 쫓기며 살면 앞으로 벌고 뒤로 잃는다. 그것이 쌓여 인간이 죽고 피조물이 죽는다.

(5) 흙과 농촌을 사랑하는 삶

인간은 무엇인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존재가 아닌가? 오늘도 인간은 흙에서 난 농산물을 먹고, 흙으로 돌아갈 배설물을 내어 놓는다. 이와같이 인간은 분명히 자연의 일부분이다. 그런데도 도시화된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을 도시의 일부분으로 생각하고, 도시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 같이 여기고 있다. 흙이 우리의 고향이다. 흙을 만지며 농작물을 가꾸는 생활이 아름답다. 흙과 농촌을 떠나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도시는 그야말로 환경오염의 원천이며 사회범죄의 온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는 현상은 이 사회가 점점 깊이 병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농촌을 살려야 한다. 도시화된 농촌이 아니라 생태적으로 건강한 농촌이 되게 해야 한다. 뜻을 가지고 흙과 농촌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에 도시화에 의하여 일그러진 피조물들은 서서히 회복되어 갈 것이다.

5. 나오며

환경이 절망적 위기에 와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이다. 지금까지 교만하고 탐욕스럽게 살아왔던 우리의 삶을 깊이 반성하고 회개함으로 인간을 포함한 피조물이 해방될 수 있는 기회이다. 인간들은 지금까지 거의 자원들을 독점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지구는 인간이라는 하나의 종(種)에 의하여 독점되고 나머지 종들은 인간때문에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인간을 두고 이르기를 '홀로세의 공룡'이라고 칭하였다. 홀로세란 신생대 중에서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세분해서 말하는 이름이다. 즉 중생대에 살던 공룡이 지구 전역을 덮었던 것과 같이 인간은 제2의 공룡이 되어 지금의 지구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공룡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 모든 피조물이 건강해야 내가 산다는 인식을 하고, 피조물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피조물을 섬길 뿐아니라, 다른 사람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