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

가난한 이웃과 나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생을 갚아 주시리라" (잠19:17)

우리 가운데 가장 철저히 절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는 가난한 사람이다. 인간의 의지력으로 절제를 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가난한 자는 과소비하거나 사치하지 않으며, 그들에게는 남겨서 버릴 음식이 없으며, 그들에게는 자가용을 타지 말자는 얘기가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자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은 매우 큰 미덕이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부요한 자가 가난한 자에게 그 재물의 일부를 나누어 주는 것은 일방적으로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난한 자에게서 영적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께 더 많이 간구하고 의지할 수 밖에 없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해 살아간다. 그러므로 부요한 자는 가난한 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가난한 자의 고통에 동참하고, 가난한 자와 함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같이 체험하게 될 것이다. 현대사회의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복음에 충실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비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신 예수를 기억하며 우리 자신을 가난한 자와 동일시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삶의 방식을 건전하게 해줄 것이다.

①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눅 6:20) 말씀을 마음에 새기자.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이 말씀은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사랑하시고 복 주신다고 단언하고, 누가복음 6:24에서는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라고 말씀함으로써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마태복음 5:3에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함으로써 겸손한 자의 복을 말하고 있다. 여하튼 물량주의의 현대사회에서 가난한 자와 겸손한 자에서 복이 있다는 말씀은 현대인에게 가치관의 전환을 촉구한다.

- 누가복음을 가난한 자의 입장에서 정독하자.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이 많이 나타나 있다. 성경을 자신의 처지에 따라 편의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냉정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교훈을 준행해 보자.

- 정기적으로 가난한 자와 함께 하자.

구체적으로 가난한 자를 방문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물질을 나누는 것을 실천하자. 특히 같이 교제하고 대화하는 것이 서로에게 매우 유익한 일이다. 온 가족이 함께 이 일을 실천하는 것도 자녀교육을 위해 좋은 일이 될 것이다.

- 하나님이 가난한 자를 더 사랑하심을 기억하자.

가난한 자 앞에서 교만해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또 가난한 자를 측은하게 여기는 것도 올바른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를 더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에게서 '가난의 영성'을 배우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②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교회가 되자.

우리 사회 전체가 성장이데올로기에 빠져 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다 보니 무리한 건축, 전도활동 등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교회가 교회답게 되려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이웃을 열심히 돕는 교회는 교회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과도한 소비를 하지 않고 건전한 교회로 발전할 것이다. 먼저 깨달은 기독교인은 각자가 속한 교회가 가난한 자를 돕도록 촉구하고 스스로도 실천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