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죄와 자연파괴

                        윤명덕: 평안 감리교회 전도사

" 주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이제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다. 땅이 그 입을 벌려서, 너의 아우의 피를 너의 손에서 받아 마셨다.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이제는 너에게 효력을 더 나타내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 땅 위에서 쉬지도 못하고, 떠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창 4:10 ~ 12)

" 나는,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사별이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8:18 ~ 21)

들어가는 말

 요즈음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심각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지구가 썩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제 인간의 힘이 너무 켜져서 자연을 너무 많이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시골에서 목이 마르면 우물이 있고 또 어느 곳을 가든지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물 걱정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아파트 꼭대기에서 전기가 나가 버리고 수도가 올라오지 않으면 큰 일입니다. 물을 어디서 길어 옵니까? 우리들이 삶이 이와 같이 인공적인 인위적인 질서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환경 오염의 문제입니다. 환경 오염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환경 오염 문제는 우리의 육체의 문제입니다. 육체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정신은 육체에서 나온 것은 아니지만, 육체 없이 정신은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가 솔직히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육체가 파괴되면 정신도 파괴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문제와 소외의 문제 그리고 환경오염의 문제는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6공화국이 들어서기 이전에 갤러리 회사에서 대학생들에게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인가 라고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첫째는 정치 문제였습니다. 일곱번째로 환경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집계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계 모든 선진국은 환경문제가 첫번째로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후진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의 정치가 얼마나 잘못되어 가는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몸 말

 미국의 유명한 학자 가운데 화이트 주니어라는 사람이 내놓은 이론 가운데 “오늘날의 공해는 기독교가 짊어져야 한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은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이기 때문에 반박할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 동안 기독교는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다’하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다른 종교는 ‘자연이 신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다들 종교에서는 자연을 숭상, 숭배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는, 자연은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사람이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것으로 가르친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는 실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서양의 자연과학의 발달은 ‘종교개혁’이후에 비로소 발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실험을 못하게 했습니다. 자연을 어떻게 건드립니까, 자연은 신성한 것인데요.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자연은 신성하지 않다.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마음 놓고 실험을 하고, 마음 놓고 자연을 착취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 자연과학과 현대 공업이 발달된 것은 기독교적 창조관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하는 그 말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수 있을까요. 가령 인구를 줄인다든지, 우리의 소비 형태를 바꾼다든지, 혹은 경제체제를 바꾸어 가지고 공해가 될 만한 것은 만들어 내지도 못하게 한다든가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이트 주니어라는 학자는 우리의 종교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옛날 동양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신비 종교로 돌아가야 한다. 동양 종교처럼 그렇게는 못되더라도 성 프란시스코처럼 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성 프란시스코는 ‘새도 나의 친구요, 나무도 나의 친구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자연을 정복할 대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친구로 보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상을 우리가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 공해문제가 생기는 것은 역시 인간의 죄 때문에 그렇습니다. 왜 인간의 죄가 공해를 불러 일으켰습니까? 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는 것’ ‘하나님의 관계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에 가인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쫓겨 나왔습니다. 하나님과 의 관계가 끊어진 인간에게는 두 가지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불안이요, 다른 하나는 스스로 쾌락을 찾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자장 중요한 두 가지 특색입니다. 가인은 불안해 졌습니다. 14절에 보면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내가 두려워서 견딜 수 없나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벗어난 인간은 두렵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이 ‘그렇지 않다 너를 죽이는 자는 일곱 갑절로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도 가인은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인은, 스스로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성을 쌓습니다. 그 다음에 목축업을 합니다. 그 다음에는 무기를 만듭니다. 이 모든 것이 스스로 자기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사람에게 위협을 줍니까? “나는 만나는 사람이 나를 죽이겠나이다” 인간이 인간에 대하서 불안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의 안전을 자기가 보장하려고 하는데, 욕심이 지나치다 보니까, 많은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이 하나, 둘씩 모여서 과소비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면 쾌락을 찾습니다. 왜 쾌락을 찾습니까? 이 세상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뿐이기 때문에, 고전 15, 32절에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나님을 또한 인간은 소망을 상실합니다. 소망이 없으면 쾌락을 찾기 마련입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노나니’ 옛날에 한참 부르던 노래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세상 뿐이면 그것은 아주 현명한 생각입니다. 젊을 때 놀아야지요, 그러니까 쾌락을 찾습니다. 이러한 쾌락이 오늘날 공해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인간이 땅 위에서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어느 정도 창조적인 활동을 위해서 필요한 만큼만 소비를 했다면 공해는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과도하게 소비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는 영혼만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육체까지도 잃어버리고 말아 버린 것입니다. 즉 공해라는 것이 육체를 망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났을 때는 육체적인 인간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영적으로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육적으로도 병들고 말아버린 것입니다. 오늘날 인류전체가 결국 하나님을 떠나서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이런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해 문제를 계기로 해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없이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육체에서 이익이 되지는 않습니다. 결국육체에게는 불리하게 됩니다. 육체는 멸망으로 이끌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영혼도 살고 육체도 건강하려면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방법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쾌락을 누리려면 하나님 앞에서 보람 있는 삶을 살아야 진정한 쾌락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세상 사람들은 술 마시고 즐기고 돌아가는 것이 쾌락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그런 쾌락이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영적 쾌락이 있습니다.

 형제 자매들과 즐거운 교제를 하고,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우리가 희생하고 같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는데도 세상 사람들이 발견할 수 없는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이 기쁨은 땅 위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우리는 구태여 땅 위에서 즐기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두고두고 즐길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할 그 기쁨은 땅의 우리 인간이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어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아야 우리는 땅의 육체적인 문제도 해결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땅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습니다. 이 지구는 로마서에서 말하는 것처럼 피조물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지금 신음하고 있고, 고통을 당하고있습니다. 자연이 파괴되고 있고, 자연이 찢기고, 자연이 이제 원상 회복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병들었습니다. 그것은 자연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잘못하여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자연을 맡겨 주셨는데, 인간이 범죄하고 인간의 생각이 병들었으므로 인간이 지배하고 있는 자연도 병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물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간절히 기다린다하고 말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부분적으로 공해문제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야 되고 역사적으로는 우리 기독교가 분명히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뭉쳐서 먼저 공해는 방지하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합니다. 공해는 줄이는 것이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공해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책임인 것입니다.

 큰 배가 있다고 생각합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배 위에서 놀고 먹고 춤을 추고 있습니다. 그 때에 배 밑에 구멍이 뚫렸습니다. 그래서 물이 새들어 옵니다. 다른 사람보고 물이 새들어 오니깐 막으라고 소리 칩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고 춤을 추고 놉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화가 나서 나도 안 막겠다. 그런 방법이 하나 있겠죠. 왜 나 혼자만 이 물을 막고 있어. 나도 춤을 추고 놀고 싶은데. 그러나 막지 않으면 다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같이 죽어버리지 뭐! 그건 감정이며,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지금 우리지구의 상황이 이렇습니다. 누구든지 앞장을 서서 공해를 줄이려고 노력을 해야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관심하고, 먹고 놀고 공해를 자꾸 일으키는데, 내가 뭐 답답해서 나 혼자 줄이려고 하겠느냐! 줄이지 말아 보세요. 빨리 죽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상황입니다.

나오는 말

 자연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을 때는 파괴시키고 오염시키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인간에게 잘 다스리라고 한 것입니다. 군대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부하들을 때린다면 그 상관은 군법회의에 넘어가서 재판을 받도록 되어있습니다. 하물며 이 좋은 세상을 잘 다스리라고 명령하셨는데, 이 자연을 상대로 파괴시키고 오염시킨다면 인간에 대한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이제까지 손상시킨 자연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으로 원상복귀 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인간은 인간이 스스로 판 무덤에 묻히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