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는 구원의 삶

                          성백걸: 한 생명교회 전도사

 정말 잘 들어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맞는다.                                              (요한 복음 12:24)

쓰레기 천지

 이 시대에 어떻게 사는 것을 구원의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까? 이 시대를 구원할 수 있는 신앙인의 생활 방식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방향 맞혀 있어야 하는가? 아주 주체적으로 내 삶을 올바르게 고쳐주고 전 세계 생명구조의 흐름을 똑바로 잡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서 숨쉬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 한 생명교회의 식구들이 끊임 없이 훈련하며 터득해야 하는 구원적인 삶의 방식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을 저는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쓰레기 문제

현대 산업문명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국가, 모든 인종, 모든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갖 잡스럽고 독한 쓰레기를 배출해 내고 그 결과 바로 그 썩지 않는 쓰레기들로 인하여 역으로 생활환경과 자연생명, 아니 인류와 지구생명 그 자체가 위험 받고 있는 심각한 현실입니다. 현대인들이 생활과 사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핵 폐기물 쓰레기, 산업 폐기물 쓰레기, 생활 쓰레기들이 썩지 않고 나뒹굴며 사람과 자연을 포함한 지구 생명체의 흐름과 순환을 절단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국민 1인당 쓰레기 산출량이 세계 1위이고, 전국에서 하루에 8만 4천톤의 쓰레기가 배출되고 있으며, 하루에 도시 주민들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는 8톤 트럭으로 1만 4천여대나 된다고 합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 매체는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와 공단지역에서 배출되는 산업쓰레기를 더 이상 품어 않을 매립지가 없으며, 난지도 쓰레기 매립지도 올 3월이면 폐쇄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기도 화성군 산업 쓰레기 매립지 부근에서는 오염물질로 인해 태아가 유산되고 뿔달린 강아지와 다리가 셋인 송아지가 태어나는 심상치 않은 일도 있었습니다. 실로, 우리가 “눈을 제대로 뜨고 보면” 내 생활주변, 이 한반도 금수강산 전체가 쓰레기 강산, 쓰레기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어두운 현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범은 쓰레기 같은 인생

요즈음은 “한생명교회 이야기”를 만드는 일 때문에 2주에 한번씩 을지로 3가의 인쇄골목에 나가 보아야 합니다. 그러다 전부터도 느끼는 점이지만, 그 곳에서 하루에도 수 없이 찍혀나오는 인쇄물들을 보고, 거기에다가 덪붙여 우리 교회 이야기를 몇 백부씩 마스터 해가지고 메고 오다 보면, 우리가 왜 이러는가? 과연 이 한생명교회 이야기를 만들 가치가 있는가? 한생명교회 이야기는 쓰레기가 아닌가? 괜히 우리 또한 종이 쓰레기나 만들어 내고 있는 쓰레기 인생들이 아닌가? 우리가 숨쉬고 있는 한 정녕 쓰레기를 만들어낼 수 밖에 없는가? 아주 심각하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쓰레기, 도대체 쓰레기의 “실체”가 무엇인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쓰레기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습니다. 쓰레기란 한마디로 ‘반 생명적인 모든 것들”이었습니다. 부드럽고 유하고 쉽게 썩어지는 것들을 쓰레기가 아닙니다. 그것들은 자체가 썩어져서 다시 생명의 큰 흐름 속에 들어가 다른 생명을 살찌우고 성장시키고 살리는 밑거름이 됩니다. 이에 반해 피해를 가져다 주는 쓰레기들은 오래도록 잘 썩지 않고 딱딱하고 강하고 독한 유해 요소들을 방출하여 사람과 자연의 생명을 갉아 먹고 있습니다. 생명의 순환에 “반”하여 그 자유로운 흐름을 절단하고 생명을 죽이는 반생명적인 유해 물질, 여기에 쓰레기의 본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쓰레기는 자기 스스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람, 현대 문명사회의 구조속 에 끼어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즉 사람. 그 중에서도 쓰레기 같은 사람들 쓰레기 같은 반 생명적 삶의 방식이 쓰레기 문제의 주범이었습니다. 부드럽고 유하게 자기가 썩으면서 다른 생명을 살리는 삶다운 삶이 아니라 자기를 내세우며 딱딱하고 상하고 독하게 다른 사람과 자연을 죽이는 사람들과 그런 사회 구조 속에 바로 문제의 핵심이 도사리고 있다는 저에게는 무서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생명의 거름인 예수 그리스도

 그러면 점점 더 심각해지는 이 쓰레기 문제 해결의 길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디서 우리는 나 자신과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생명의 지혜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 사람, 바로 사람이 바뀌어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람이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쓰레기 같은 옛사람과 생활방식을 버리고 사람다운 한생명적인 삶을 사는 새사람으로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입니다.(고후 5”17). 우선 본질적으로 참된 신앙인이 되어 참된 인생을 살아가는데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숨쉼, 우리 생각, 우리 말, 우리 행동, 우리 생활, 우리의 먹고 잔고 입고 살면서 만들어 내는 모든 문화생활의 성과가 심지어 교회의 전반 생활이 다른 사람과 자연을 죽이는 쓰레기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살찌우는 생명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쓰레기는 눈에 보이는 핵 폐기물과 산업 폐기물과 비닐이나 플라스틱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생명”을 죽이는 모든 정신과 생각과 말과 사상과 행동과 문화와 문명 자체가 모두 쓰레기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만이 또 여러 생명으로 다시 날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심 그대로 이 땅에서 구원의 한 밀알로 썩어져 모든 생명을 살리는 참 생명의 주로 부활하신 분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쓰레기 같은 인생들로 고생하며 죽어가는 모든 생명을 살리는 참 생명의 거름이 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구원의 삶에서 쓰레기 같은 요소들이나 그림자를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살림의 지혜가 담긴 구원의 삶

 그렇습니다.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내 단 한번뿐인 인생을 통하여 쓰레기 같은 것 들이나 만들어내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는 사람다운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온갖 향락문화와 소비생활을 유혹이 꼬리를 쳐도 내 귀중한 생명을 한낱 쓰레기나 만들어 내면서 살 수는 없다는 각성이 필요합니다.

 요즈음 저 자신이 먼저 뼈속 깊이 새기고 있습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쓰레기나 만들어내는 인간 쓰레기 일 수는 없다” 만일 “한생명교회’도, “한생명 목회”도 “한생명 교회 이야기”도 그것이 나를 살리고 이웃을 살리고 자연을 살리고 사회를 살리고 하나뿐인 지구, 아니 온 우주의 생명을 살리는 삶의 일이 아니라면 그런것들에 내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생명 교우 여러분!

날로 심각해지는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니 이 시대에 기독교인으로서  구원의 마른 삶을 살기위해! 우리 생명의 거름이 된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림과 사랑과 진실과 실리가 담긴 참 생명의 삶을 살아 갑시다. 그래서 쓰레기를 만들어 내지 않는 구원의 밝은 삶을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