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땅  연필

                        이상묵: 시인 반석 감리교회 목사

쓰레기장 안에는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이 모여 삽니다. 구겨진 휴지, 사그라진 연탄, 깨진 병 조각…. 한결같이 이 모두는 쓸모 없다는 이유로 쓰레기장으로 가득 실려왔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처지를 부끄럽게 또는 창피하게 생각하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울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희망하여 이곳으로 오게 된 이들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그런데 쓰레기장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가에는 댑싸리들이 푸르게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먼 곳에서 바라보면 이곳을 막아주는 울타리처럼 보여집니다. 이 덕분으로 쓰레기들은 자신의 수치 됨을 조금은 가릴 수 있었지마는 운동장처럼 드넓은 이곳 안에는 모여든 이들의 슬픈 이야기들로 가득 베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틈바구니 속에 몽당연필이 있었습니다. 몽당연필은 연탄재 사이에 끼어있어 키 작은 몸은 먼지로 눈물로 얼룩이 졌습니다. 몽당연필은 이곳으로 오게 된 자신의 슬픔을 털어 놓았습니다. 누구 한 사람 귀 기울여 주거나 말을 건네주지 않았습니다.울타리처럼 서 있는 댑싸리들 만이 물결 이루듯 바람에 흔들거렸습니다.

 나는 본래 지금과는 달리 키가 컸습니다. 줄곧 식이라는 아이의 줄무늬 필통 속에서 지냈습니다. 그곳에서 칼이랑 지우개랑 한번도 다툰 적이 없었습니다. 식이와 난 늘 붙어서 생활을 하였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은 산수 공부를 할 때 일입니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면서 양 손가락을 움직여 보다가 으레 식이는 내 뒷꽁다리를 깨물어 주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느낀 참 즐거운 마을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 언제나처럼 식이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함께 숙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때마침 서울에서 식이의 삼촌이 오셨는데 식이에게 샤프펜을 선물로 건네 주었습니다. 처음 가져보는 샤프펜에 식이는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책상 바닥에 놓여있는 나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것만을 가지고 학교에 가 버렸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돌아올 식이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책상을 정돈하시는 식이의 엄마에게 내 모습이 발견 되었습니다.

‘으음, 이 연필이 다 됐구나. 식이는 샤프펜이 생겼다지? 버려야겠는걸’

 샤프펜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로보트와 비슷하게 삶은 샤프펜, 병원 주사기 같은 침이 있고 열었다 닫았다 하는 그의 몸집) 이러한 생각을 하는 사이, 나도 모르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몽당연필은 지난 날 식이와의 정답던 시절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외로움만이 작은 가슴을 파지 하였습니다. 들어주는 이 없었지만 슬픔에 겨워 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바로 그때,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휴지들은 비행기처럼 날아가기도 합니다. 연탄재도 체조하듯 움직였습니다. 이들속에 끼여있던 몽당연필은 자신의 전 모습을 드러내 놓았습니다. 이 순간 몽당연필에게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게는 손도장 찍을 때 나타나는 식이의 손자국이 배여 있고 뒷꽁다리에는 기쁜 마음을 주었던 식이의 입자국이 아직도 남아 있었구나!)

 가득 차 올랐던 슬픈 마음이 눈이 녹듯 수그려 졌습니다. 밤을 지새우며 아파했던 문제들이 온통 희망으로 차 오릅니다. 눈물이 흥건이 고여 흐릅니다. 그것은 슬퍼서 나오는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몽당연필은 고개를 들고 쓰레기장 한 바퀴를 둘러 보았습니다. 흩어진 쓰레기들 모두는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만나서 위로해 주고 싶었습니다.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모습처럼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누구에게 먼저 가야 하는 지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고개를 들어 보았을 때 한 복판에 위치한 채송화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이상하구나, 이곳에 채송화가 웬말인지? 울고 있잖아--)

 궁금한 마음을 안고 단숨에 뛰어 갔습니다. 채송화는 몽당연필이 와 있다는 것도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 채송화야, 이곳에 어쩐 일이니? 왜 울고 있니? 그 예쁜 얼굴에-…”

채송화는 고개를 떨군채 대답대신 돌아가 달라는 시늉으로 팔을 내 저었습니다. 모든게 귀찮다는 듯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채송화에게 몽당연필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행여, 채송화가 자신의 모습이 될는지 모르지 않겠어요?

 식이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3학년 아이인데 꽃중에서 채송화를 제일 좋아했다는 이야기, 그래서 이곳에 남보다 먼저 채송화에게 오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들려주었습니다. 채송화는 지난 날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곳에서 누구에게 자신을 열어 보인적이 없었지만 웬지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채송화에게 지난 날 즐겁던 시절이 있었거든요. 채송화의 이야기에 몽당연필은 귀를 모았습니다.

 나도 누구만큼 행복했어. 꽃밭에서 미가 젤루 작았기에 맨 앞줄에 서서 많은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했어. 사람들은 나 아기꽃이라고 부르면서 얼마나 예뻐했는데 어저께 주인아줌마는 꽃밭을 손질해 주었지. 우리 사이에는 늘 짖궃게 굴던 잡초들이 자라나고 있었거든. 주인아줌마는 “ 이 깡패 같은 녀석, 꽃도 피울 수 없는 것이……” 라며 잡초들을 제거해 줄땐 우리는 늘 흐뭇했어. 그런데 잡초들과 섞이어 나 마저 뽑힌 것이다. 햇빛에 타서 잡초들은 죽어 버렸는데 나는 모질게도 목숨이 남아 있잖니. 이럴 바에는 나도 잡초처럼……

 채송화는 말끝도 채 맺지 못했습니다. 두눈가에는 이슬비로 촉촉히 젖어 들었습니다. 몽당연필의 눈가에도 무엇이 보였습니다. 듣고만 있던 몽당연필은 작은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채송화야, 너무 슬퍼하지 말렴.  이 많은 쓰레기들을 보아라.  이 가운데서 꽃을 피우는 것은 너 뿐이구나.   생각해 보렴……

 여기에서도 너는 꽃밭에서와 같은 꽃을 피울 수 있잖니? 한 가지로 꽃을 피우고 나면 너의 꽃맺이에는 작은 씨앗들이 여간 많으니? 네 씨앗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뿌려진다면 이듬해, 주인 아줌마가 올때처럼 꽃밭을 손질하시고 잡초를 손질하시고 잡초를 버리러 오실 테지, 그때 곳곳에 피어있는 네 모습을 보고 “어머, 우리집 채송화랑 똑같네, 반색하면서 너를 안아 다시 주인집으로 옮겨가지 않겠니?”

 채송화는 귀가 번쩍 띄였습니다. 지금까지 줄곧 꽃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거든요.(농구 선수를 한다던 해바라기 언니, 가장 가깝게 지내던 봉숭아 언니……

 그러나 몽당연필의 말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떠니? 이곳에서 네 씨앗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꽃을 피운다면 저들이 예쁜 네 모습을 통해 거울을 보듯 자신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큼 보람이겠니?

 “보람? 보람이라고……보람이 뭐야?”  여지껏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습니다. 채송화의 작은 가슴이 콩닥 콩닥 뛰었습니다.

 몽당연필은 맨처음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여왔습니다. 그것은 너무나 처량하고 구슬픈 노랫소리였습니다. 몽당연필은 또 다시 누구를 만나기 위해 나서려는 참이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얼마쯤 갔을까요?

 그곳은 쓰레기장 맨 가장자리였습니다. 다 먹고 난 옥수수통이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옥수수통은 방금까지 한던 소리를 잠시 멈추고 몽당연필을 힐끔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더니 이내 그 노래를 다시 시작합니다. 몽당연필은 자신보다 수십배 덩치가 큰 옥수수통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 할는지 망설였습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애써 가라 앉히며 말을 붙였습니다.

 “옥수수통 아저씨, 아저씬 그 큰 덩치에 부끄럽지도 않으셔요?  슬픈 노랠랑 부르지 마셔요.!!”  “농담하지 말게, 나는 이제 끝장인 걸.”  “끝장이랴뇨? 그게 무슨 말씀이어요. 아저씬 행복할 수 있는데”   “행복? 나도 왕년엔 행복했었지”

 옥수수통은 어른스럽게 말을 했습니다. 한숨을 내 몰아 쉴 때마다 밭이랑처럼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잡혔습니다. 옥수수통은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몽당연필은 너무 너무 기뼜습니다.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방금 전, 채송화에게 하듯 그러려든 참이었거든요.

 뻐꾸기 노래소리 들리는 시골에서 우리는 살았단다. 낚시대처럼 키가 크신 어머니, 파아란 물결 이루면 엄마등에 업혀서 평화로운 꿈을 꾸었단다. 도화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며 고향을 생각했고 농부들의 고마운 마음을 헤아려 주기도 했지. 여름이 돌아와 우리는 시집을 가게 되었단다. (이 말에 몽당연필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습니다.)

 시집가는 것이란 일생중 큰 기쁨의 날, 엄마등에 곱게 자란 이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떠나가는 것을 말한단다. 사람들은 우리를 가져다가 양식으로 사용하는데 그것이 우리의 할 도리이거든.

 참, 그러구 우리의 세계는 시집가는 일이 있는 후 장가드는 일도 있단다.(이번 말에도 몽당연필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습니다.) 장가드는 일이란 시집가서 할 도리를 다 한 뒤 사람들이 우리를 가져다가 가령 불쑤시개를 한다거나 또 다름 이용물로 사용해 주는 것을 말한단다.

  이 일까지 있게되면 우리에겐 최고의 영광인 셈이지. 난 주인의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었고 행복하게도 장가도 들게 되었단다. 방바닥으로 굴러다니는 나를 주인 할머니께서 고르신 것이야. ‘마침, 잘 됐구먼! 등이 가려운데 등 긁는데 아주 적격이거든!!’

 장가를 든 걸레임에 가슴 벅차서 잠을 이루질 못했단다. 그런데 이게 무슨 운명일까? 수학여행을 다녀온 손주녀석이 할머니를 위해서 등긁음대를 사오지 않았겠는가? 옥수수통은 한숨을 기세 내뿜어 내셨습니다. 그리곤 입술을 바싹 당겼습니다. 그 큰 덩치는 더욱 쓸쓸해 보였습니다. 몽당연필은 더 이상 무엇을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슬퍼하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채송화를 대 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당연필의 작은 가슴은 터질것만 같았습니다. 불 타오르듯이 마음은 자꾸만 자꾸만 달아 올랐습니다.

 “옥수수통 아저씨, 아저씨의 삶은 아름다웠어요.”  “아니야, 틀렸어. 이젠 끝장이야……” 맨 처음 보았을 때 하던 같은 말을 했습니다.

 “아니에요 보셔요. 아저씨에겐 누구에게도 지니지 않은 하모니카 고운 무늬가 있는걸요. 이제부터 아저씬 슬픈 노래가 아닌 아저씨의 삶처럼 희망찬 노래,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주세요. 많은 쓰레기들이 그 고운 소리에 슬픔을 달래며 세수를 하듯이 마음이 맑아지고 환해질게 분명해요. 그렇게 된다면 아저씬 또 다시 장가를 드는 셈이 아니겠어요?” 옥수수통은 심장이 멎을 듯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모르고 있던 놀라운 사실이 였습니다. 왠지 자꾸만 겸연쩍고 부끄러워졌습니다

 몽당연필이 옥수수통과 만나는 사이게 채송화는 몽당연필을 찾아 나서서 두루 헤메고 다녔습니다. 그가 들려준 보람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쓰레기장 맨 가장자리에 와 있는 몽당연필을 보고 채송화는 달려왔습니다. 가누지 못하는 기쁨으로 몽당연필을 꼬옥 껴안았습니다.  말을 듣지 않았지만 몽당연필은 채송화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몽당연필은 옥수수통에게 채송화를 인사 시켜 주었습니다. 마주 선 셋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한참 뒤 몽당연필은 굳게 닫힌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셋은 간장 행복한 자임에 틀림없어.  식이와의 추억이 그대로 남아있는 나,

  꽃의 보람 채송화,

 하모니카 고운 무늬, 옥수수통 아저씨.” 시를 읽어가듯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습니다. 셋의 눈빛은 하나처럼 반짝 빛났습니다. 조금전과 같이 침묵이 잠시 흘렀습니다.. 이번에는 채송화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러고만 있으면 안돼. 우리의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나누어야 해. 그래서 스스로 지닌 아름다움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저기 좀 봐!”

 채송화가 가리킨 꽃에는 콩나물 찌꺼기, 라면봉지 다 해진 운동화 등 많은 쓰레기들이 울상을 짓고 있었습니다.

 “저쪽으로 가서 우리의 아름다움을 나누어야 해…” 대답대신 입가에는 똑 같은 웃음꽃이 방긋 피어났습니다. 그제서야 덩치가 큰 옥수수통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셋이 아니라 하나이구나. 아름다움”  셋이 나란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느새, 눈매도 표정도 마음도 같아 졌습니다. 마주 잡은 손을 조심스레 풀면서 각기 쓰레기들에게 발걸음을 옮겨 놓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쓰레기장을 울타리처럼 두르고 서있던 푸른 댑싸리 위에 나비처럼 내여 앉는 바람이 속삭였습니다.

 “나도 한 몫을 꼭 할게. 너희들이 이 많은 쓰레기들을 만나서 위로 해 줄 때 얼마나 피곤하겠니? 그때마다 댑싸리 고운 이랑을 흔들어 주어 너희들이 이마 위에 흐르는 땀을 시원이 씻겨준다고…” 댑싸리 위의 바람은 몽당연필이 그렇게 대견할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