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를 날려보내는 한 해

                          이용일: 큰배움교회 권사

 몇 주일 전에 미국에서 친척 한 분이 오셔서 같이 지내던 중 내가 뭐 도울 일이 없겠지가 물었습니다. 미안해 하면서 망서리던 끝에 혹시 옛날 국민학교 다닐 때 살았던 동네와 집을 가보고 싶은데 데려갈 수 있겠느냐고 청해 함께 그 곳을 가보게 되었습니다. 약 3-40년 전에 살던 곳이었기 때문에 크게 변화했으리라는 생각과 주위에 다녔던 학교와 이웃에 함께 살았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 동안 한국에 몇 번 왔을 때마다 찾아가 보고 싶었으나 그때마다 기회를 갖지 못했던 터였습니다. 혜화동의 비교적 큰 길가에 위치했던 터라 쉽게 찾을 수가 있었고 막상 그 집 앞에 차를 세우고 내리니 이 집은 XX내 집이었고, 저 집은 XX네집이었고, 이집은 XXX관저, 이 집은 XXX국회의원집하며 옛날의 기억을 되살리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골목 저골목을 휘젖고 다니다가 빠른 걸음으로 어디로 사라졌는데 잠시 후에 나타나서는 단숨에 옛날에 다니던 초등학교 앞까지 갔다 왔노라고 했습니다. 아쉽게도 그 학교는 중, 고등학교로 바뀌어 약간 서운하기도 했지만, 또 코너에 위치했던 어떤 집들은 연립주택과 빌라로 바뀌었고 하면서 내뱉는 一聲은 옛날에는 그렇게 크게 느껴졌던 집들이 왜 이리 작아 보였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이따금 호기심에서 옛날에 살던 동네를 일구러 지나가 보면서 옛날에 이곳은 어땠는데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혹시 비슷한 느낌으로 옛날 기억으론 집도 크고 마당도 넓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리 작게 보이는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다행이 江化이였기 때문에 그렇지 江南이었다면 이만한 향수도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확실히 우리 사회가 大型化, 密集化 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 어렸을 때 기억 중 지금도 남아있는 것은 동네에 배추밭이 있었는데 겨울김장철에 배추 꽁지를 맛있게 먹었던 일과 쓰레기를 가마니에 올려놓고 새끼줄로 끌어 먼 먼까지 끌어다 버리곤 했던 일 생각납니다. 그 당시에는 쓰레기라고 해봤자 쇠붙이, 유리병, 신문지 그밖에 모든 고물을 엿장수하고 바꿔 먹었기에 쓰레기량은 별로 안되었습니다.

  제가 대학교에서 다니면서 보았던 미국영화 한편을 기억하는데 그 주제가 ‘Pollution’에 관한 것입니다. 지금도 기억하기로는 미국에서는 20년 전에 제일의 Pollution으로 꼽았던 것이 Air Pollution, Water Pollution 세번째로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이 Garbage Pollution,즉 쓰레기로 인한 공해의 문제였습니다. 물론 미국의 경우 물자가 풍부해서 각종 포장물, 빈용기, 찌거기등이 오래전부터 생겨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 당시 그 영화를 보면서 저는 공기, 물, 쓰레기로 골치를 앓는 미국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우리나라에서 공해라는 개념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던 때었습니다). 그러나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기에 한국에서 이러한 공해들은 불명예스럽게도  선진국들은 큰 차로 추월했습니다.

근자에 들어 우리 종교계에서도 생태계위기상황이라든지 그 밖에 공해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또 세계적으로 리오 환경회의니 Green Round니 녹색혁명이니해서 환경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앞서 친척의 예처럼 옛것에 대한 향수는 우리가 직면하고있는 상당한 변화를 가려서 수용했으면 하는 마음의 一但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공해문제는 분명히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야기시키는 것이며 그에 대한 결과도 바로 그들이 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자연을 허락해 주셨는데 부족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은 제대로 보전하지 못하고 심지어 파괴하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입니다.

 이정배 목사님이 4년 전에 펴내신 (생태학과 신학)이라는 책의 서문에 인용한 비유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가 기억하고 살아갔으면 합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조그마한 연못 하나가 있었다.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고 있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싸움이 벌어져 두 붕어는 물어 뜯고 했다. 그러자 한 마리는 죽어 물 위에 떠오르고, 그 놈의 살은 썩어 들어갔다. 그러자 연못의 물도 썩어 들어갔다. 이긴 줄 알았던 붕어, 영원히 잘 살 줄 알았던 붕어가 썩은 물을 먹에 되자 얼마 후에 그도 죽고 말았다. 그래서 깊은 산 오솔길 옆 조그마한 연못엔 지금도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않게 되었다.”

 우리는 지금 도덕성의 결여, 질서의식의 부재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 저무는 해와 함께 公害를 많이 날려 보내고 도덕성과 질서의식을 키워나가는 새로운 한 해를 맞도록 주님의 크신 은총을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