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흙의 관리자

                          이찬우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

-반 자연은 반 신앙-  창 3:19이하

 사람들은 에덴에서 벗어나 옷을 지어 입고 가죽신을 만들어 신은 후부터 이미 자연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에덴에서 벗어난 인간은 오래지 않아 바벨탑이라는 반 자연적인 세계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반 자연적인 행위는 곧 반 신앙적인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였다고 성경은 증언합니다. 그러나 이 반 자연적인 사고와 습성은 바벨탑 사건으로 끝이 난 과거의 흔적이 아니라 제2 제3의 바벨탑을 매 시대마다 건축하였고 오늘날의 산업사회는 그것의 극치라 할 만하다고 여겨집니다. 옷도 나뭇잎이 아니라 화학섬유로 지은 것을 입고 몇 십층 계단이 있는 건물 속에서 생활을 하며 창세 이래 여전히 땅 위에 살면서도 흙을 밟지 않고 시멘트와 아스팔트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은 몹시 편리하고 효율적인 삶을 가능케 하지만 우리들의 정서는 메마르고 자연은 파괴되었습니다. 그래서 땅은 우리들이 멋을 독이 없고 싱싱하고 생명력 넘치는 소출을 내지 아니하며 마실 공기는 더럽고 먹을 물은 오염이 되었기에 누구나 먹고 마시는 일까지 불안과 불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은 자연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와 방식을 바꾸라는 하느님의 촉구입니다.  우리는 자연을 벗고 인공의 세계 속에서 살고자 하는 바벨탑 지향주의를 청산하고 우리들 자신고 자연의 일부이며 흙으로 빗어진 자연의 한 부분이요 자연의 벗임을 생각하나 전환을 이루어 에덴을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땅과 사람은 공동의 운명체-

 본래 땅과 사람은 서로 단절된 남암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은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사람은  땅에 속한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그뿐 아니라 인간이 죄를 짓자 이 일로 땅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를 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 3:17) 그뿐 아니라 안식일법을 보면 안식은 사람만이 아니라 7년에 한 번씩 땅도 안식을 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땅과 사람이 지닌 깊은 연관성을 말할 뿐 아니라 땅도 살아 있는 생명과 사람들처럼 소중히 여겨야 함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아끼고 사랑하듯 자연을 벗으로 고마운 이웃으로 여겨야 할 것입니다. 정말 사람들은 흙과 똑 같은 원소로 만들어져 있고 흙 위에 거처하며 흙이 만들어낸 소산을 먹고 사는 것입니다. 사실 컴퓨터와 기계화 공장의 생산물들은 없어도 살지만 흙이 낸 먹거리 없이는 누구도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흙은 이처럼 생존의 기초가 되며 근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같은 피보물로서 흙에 대한 친밀함과 고마움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의 실상을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실상은 어떠합니까? 사람들은 땅의 일부가 아니 양 살아가고 있을 뿐 아니라 땅을 기름지게하고 아름답게 하는 수풀과 내와 호수를 더럽히며 심지어 중금속과 핵폐기물과 폐비닐과 쓰레기로 오염시키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지구상에 인간만이 존재하는 양 하는 인간 중심적인 오만과 이기주의를 벗는 회개가 필요한 때입니다.

-땅은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땅은 사람들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관리자로서 땅을 경작할 수 있도록 경작권만을 허락하셨을 뿐 소유권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땅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따라서 땅의 권리를 빼앗고 땅의 최종 소유주처럼 땅을 마음대로 훼손하거나 땅을 인간들만을 위한 터전으로 삼아서는 아니 됩니다. 그래서 추수할 때에는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일일 뿐 아니라 사람이 아닌 들짐승과 날짐승들이 먹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땅은 사람들의 소유가 아닐 뿐 아니라 사람들만을 위한 터전도 아닙니다. 하늘을 나는 새와 들짐승과 푸른 나무들과 꽃과 곤충들 모든 피조물들을 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몸이며 아름다운 우주의 한 부분인 것입니다.

-사람의 땅의 위임관리자입니다-

 성경은 사람과 땅의 관계를 이중적인 상관성을 지닌 것으로 선포합니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흙의 일부라는 사실과 살아서 흙 위에 머물 때에는 땅의 관리자로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창 2:15) 하셨던 것입니다. 공동 번역 성경은 “다스리며 지키게”를 “돌보며”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섬기고 지키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땅에 대한 소유자가 아니라 봉사자요 섬기는 자요 돌보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흙으로 빚어지고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인간 자신의 운명의 왜소함과 연약함에 견주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로 하여금 만물을 돌보게 하신 일은 실로 크게 경탄하고 감사할 노래의 소재가 되고 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중   략)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중   략)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사람과 땅은 공동의 운명체이며 땅은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의 터전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러한 땅을 돌보고 섬기고 봉사하는 자로 불리움을 받은 ‘흙으로 지음받은 관리하는 피조물’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영광이며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바로 이 선한 관리자의 모습 속에 숨겨져 있으며 이것으로 사람이 모든 만물과 같은 피조물임에도 그들과 일면 다른 축복인 ‘하나님의 형상’이 발현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