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증인됨

                        조성은

"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놓았다. 너희와 너희의 자손이 살려거든, 생명을 택하여라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를 따라라. 그러면 너희가 살 것이다. 주께서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너희가 잘 살것이다." (신명기 30:19-20)

 불편하다는 것이 사람들을 깨어나게 할 때가 많습니다.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옛말도 있듯이 푸르고 건강한 자연과 함께 살 때는 돌보지 않던 자연을 맑은 공기, 맑은 물을 마실 수 없는 인간들의 불편함 때문에 이제서야 사람들은 자연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 맑은 물, 맑은 공기가 없어지기까지 상처 받고 고통받으며 파괴되어진 자연에 대한 반성과 책임이 앞서기 보다는 병든 자연이 사람에게 주는 불편함이 앞서며 아직까지도 인간만을 향한, 인간 우선의 사고방식에 민감해 있기만 합니다.

 오늘 읽은 구절의 초반에 보면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운다고 하셨는데 이 밖에 신 4:26, 31:28, 사 1:2, 넴 2:12에서도 하나님은 자연을 불러서 증언으로 삼으십니다. 본문에서 자연이 증인이 되어야 하는 문제는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과 그 후손들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시겠다고 맹세하신 그 땅에서 잘 살려면 생명을 택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삶만이 이스라엘 민족이 살길이요, 생명을 택하는 것 만이 온 인류가 함께 사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위의 본문에서 나타나듯이 하나님은 자연을 인류역사의 증인으로 삼으십니다. 자연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생활터전(창 1:11-12, 24-25)이고 생명의 힘이 숨쉬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증거로 택하신 것은 자연이 인간의 행위를 실질적으로 드러내 주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자연은 드러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행위의 결과에 함께 하는 공동운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자연은 생명의 공간이며 자연의 순환은 생명을 만들어 냄으로서 인류의 생명은 자연의 생명과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자연은 생명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자연은 생명체의 생활공간이며 생명력을 지닌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인간들에 의해 마구 파헤쳐지고 메말라지고 착취되어 버린 병든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존층이 파괴되어 강한 적외선이 노출되었고 땅은 산성화로 사막화가 되어 가고 있으며 삼림자원의 고갈은 산소 공급원을 잃어 가고 있고 지구는 온실현상이 나타나고 바다는 핵폐기물을 처리하는 곳이 되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인간의 안락하고 편리한 생활을 담보로 생명의 터전을 황폐시키고, 인간의 생존을 내세우며 자연을 함부로 착취하여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현대인이라면 다 가지고 있다는 현대병들 또한 인간이 자연을 마구 사용함으로 자초한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중심의 발전은 이러한 자연의 파괴에도 아랑곳없이 더욱 더 가속화되어가고 있습니다. 문화의 수준은 상향 조절만이 가능하다는 말과 같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들의 끝없는 욕망들로 인해 자연은 신음하며 탄식하고 있습니다. (롬 8:22-23)

우리들의 삶의 증인이 되는 자연이 이렇게 파괴되었다면 지금의 인간들 또한 그만큼의 생명을 잃은 것입니다. 어느 작가가 우리가 참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생명을 상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는 우리에게 생명의 상실이란 곧 우리 본질의 상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생명은 다시 살아나게 하며, 연합하게 만들고, 사랑하게 하며, 끊임없이 솟아나고 순환적인 것이어서 결국 함께,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역할이 있듯이 자연에게도 그 하나님에 대한 창조의 역할이 있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망각하고 또 다시 인간의 불편함 때문에, 그 해결을 위해 자연을 지배하고 이용한다면 더 이상 우리 삶의 증인되는 자연은 인간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며 인간과 자연은 함께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 삶의 증인으로 세운 자연을 다시 생명이 있도록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회복하기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인 것입니다.

 자연의 생명을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는 먼저 자연과 만나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적인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자연을 만드시고 그 피조물들과 이야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인간을 가깝게 관계하게 하시고 이야기하게 하셨던 것처럼 자연과 인간은 지배관계가 아니고 존중하면, 같은 한 생명을 가진 인간도 소중해지며 존중됩니다. 자연을 억압하고 파괴하면 인간의 삶도 억압되고 파괴되어집니다. 왜냐하면 인간과 자연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한 생명을 가진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자연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제국주의로, 경제원리로, 인간 중심주의로 억압하며 막고있었던 자연의 소리, 생명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 소리는 생명력을 찾으려는 외침이며 구원의 외침입니다.

  지금 자연이 내뿜는 아픔과 고통은 자연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아픔이요, 하나님의 아픔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망각했던 우리들의 그 동안의 그릇된 모습들을 반성하며 더욱 아파해야 합니다.아직도 인간은, 우리들의 불편함과 욕망들이 하나님의 생명되심보다 앞섭니까? 지금도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으시고 우리들의 병든 생활, 죽음의 생활들을 생명으로 옮기라고 자연 속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맑은 물,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더러운 물과 공기를 거르는 것만이 아닌 자연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우리 안에 생명을 되찾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 세계에 대한 책임을 담당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연의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은 자연과 우리와 우리 후손이 더불어 하나님의 생명되심에 참여하는 것이며 생명을 선택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