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만드신 삶의 자리

                          고달삼 : 가락 중앙교회 목사

 현대인이 살고 있는 현장이 어떤 곳인지 확인해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도시화가 되면서 고층 아파트와 대형 빌딩들로 이루어진 수풀 안에서 현대인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면 아무리 넓혀도 자동차로 홍수를 이룬 길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대인이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이 현장에 병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리고 현대인들의 현장이 감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늘어나는 병원과 감옥이 무엇을 말해주는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보는 사람은 적을 것입니다. 오늘은 병원과 감옥을 같은 맥락에서 현대인의 현장으로 규정지어 생각해 보려는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허락하신 두개의 현장

 본문에서 우리의 눈에 보이는 두개의 삶의 장이 있습니다. 하나는 엿새 동안에 창조하신 자연이 모든 생태계와 함께 살아야 할 삶의 장으로 제공받은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루의 창조가 끝날 때마다 “보기에 좋았더라”라는 말씀으로 생태계의 건강한 삶에 가장 알맞은 삶의 장인 것을 확인하셨습니다. 빛이 있고, 윗물과 아랫물이 있고, 산에 나무가 있고, 바다가 있으며, 해와 달과 별이 있는 자연은 공중의 해와 바다의 물고기와 들의 곤충과 짐승과 인간들에게 건강한 삶을 사는 가장 적당한 삶의 장으로 제공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또 하나의 삶의 장을 제공해 주신 곳이 있습니다. 거룩한 삶의 현장으로서 일곱째 날의 안식의 장입니다. 안식일은 창조의 면류관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엿새동안에 한 노동의 결과를 정리하면서 만족함을 경험하는 날이며, 모든 가족들이 함께 모여 모든 일을 쉬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심을 성공적으로 노동을 마친 결과에 대하여 감사하며 식구들과 함께 하나님만 경배하는 날입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하나님은 건강한 삶의 장으로 자연을 주셨고, 거룩한 삶의 장을 안식일의 휴식의 장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축복받은 삶이란 무엇일까요? 건강한 삶이 아닐까요? 거룩한 삶이 아닐까요? 그외에 무엇을 얻으면 축복받았다고 하겠습니까? 당신은 오늘도 무엇을 축복으로 알고 달음질 하고 있습니까? 큰 집인가요? 많은 재산인가요? 큰 권세인가요? 그것들이 진정한 복이라면 그것은 어디서 보장을 받았습니까? 건강한 몸과 거룩한 심령으로 부부가 사랑하며 자녀들과 평화롭게 사는 것이 에덴 동산의 축복이라 생각되지 않습니까?

둘째, 허락 받지 않은 두 개의 현장

 우리들의 주변에는 에덴동산에는 없는 두개의 삶의 장이 있습니다 그것이 병원과 감옥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병원에 입원하기를 원하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 있다고 대답할 분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때서 병원에는 환자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단 말인가요? 환자들이 많다가 너무 많아 대기중인 환자들이 많아지는 실정입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으면서 병원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해가 거듭될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여러분을 축복하고 싶습니다. 제발 이 가족들은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없도록 건강하게 하옵소서, 이것이 축복의 기도가 아닌가요? 건강을 잃어보십시오! 건강이상 중요한 것이 있습니까? 재산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라 합니다.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건강을 잃은 것은 다 잃은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감옥이 얼마나 대형화되고 있는지 아십니까? 감옥에 사람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아십니까? 에덴동산에는 병원도 없었지만, 감옥도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없지만, 감옥에 가기를 원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 번 범죄하여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들은 감옥을 떠날 때 “세상을 돌아보고 올 터이니 잘 있어!” 하고 출소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것이 진정일까요? 수갑으로 손목이 묶여서 끌려가는 것이 그렇게 좋다고 할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없을 것입니다. 병원은 절대로 입원하고 싶은 곳이 아니고, 병원에 들어가는 것이 축복도 아니고 행복도 아닙니다. 같은 맥락에서 감옥도 절대로 들어가고 싶은 곳이 아닙니다.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입니다. 내가 두 손모아 여러분들을 위해 복을 빈다면 어떤 복을 원합니까?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습니다. 돈인가요? 지위인가요? 권세인가요? 성공인가요? 학식인가요? 이 모든 것은 건강할 때 그리고 자유 할 때 좋은 것들입니다.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하든지, 범죄 하여 감옥에 들어가고 나면 그것들이 복일 수 없습니다. 건강입니다. 그리고 자유입니다.

셋째, 왜 건강을 잃을까? 왜 자유를 잃을까?

 병원은 왜 많아지는가요? 물론 병자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감옥은 왜 많아지는가요? 물론 범죄자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왜 병자가 많아지는가요? 건강하게 사는 삶의 장으로 주신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빈 결과가 아닌가요? 오늘 우리가 사는 집을 보고 우리가 근무하는 사무실을 보고 우리가 일하는 작업장을 보십시오! 그곳에 빛이 있는가요? 형광등도 빛인가요? 하나님이 있으라 하신 빛에는 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빛이 비취는 곳에는 습한 곳도 말라 버립니다. 그러나 형광등 밑에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리고 빛이 있는 곳에는 공기가 있고 바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악취가 사라지고 맙니다. 그러나 방안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취가 쉽게 사라지지 아니한다. 윗물과 아랫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육지에서 빗물에 씻기면서 강으로 흘러 내려간 모든 독성 있는 쓰레기나 폐수의 독을 용해 시키는 곳이 바다입니다. 산의 나무에서 분비되는 산소, 바다에서 소독되면서 증발하는 수증기가 합하면 건강의 현장이 됩니다. 해와 달과 별이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아닙니다. 모든 풀이 태양을 향하고 있습니다. 달은 바닷물을 움직여 밀물과 썰물이 되게 합니다. 나침반의 바늘은 북극성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을 보고도 해와 달과 별이 멀리 있다고 할 것 인가요? 그러나 우리의 삶의 현장에는 나무에서 분비된 산소가 없습니다. 독을 해소 시키는 바닷물이 없습니다. 공중에 나는 새소리는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 시켜 줍니다. 공중에 나는 새소리는 우리의 스트레스를 해소 시켜 줍니다. 바다의 고기들이 헤엄치는 모습만 보아도 억압감정이 풀리고 맙니다. 들에서 나는 채소와 곡식과 과일이 우리의 건강을 보장하지 않습니까? 오염된 채소, 과일, 곡식을 먹고도 건강할 것 같은가요? 건가의 현장인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켜 놓고도 건강하게 살 길이 있는가요? 그러니 병원이 늘어갈 수 밖에 없지 아니합니까? 자연을 파괴한 죄인들, 환경을 오염시킨 죄인들이 가야 될 곳은 병원 말고도 또 있습니까? 인간들이여 깨달으십시오. 병원문을 드나드는 환자들이여 들으십시오. 당신의 건강을 책임질 곳은 자연이라는 것을……

 그러면 왜 자유를 잃을 가요? 왜 수갑을 차야 할까요? 왜 감옥으로 끌려가야 할까요? 심령이 무너진 까닭이 아닐까요? 왜 심령이 무너질까요? 거룩하게 지내야 하는 안식을 어긴 것이 아닐까요? 엿새동안에 힘서 일하고, 일곱째 날에는 교회에 나 왔다 가서 가족들과 오손도손 성경이야기와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심령이 양식을 먹는 날로 삼는다면 우리의 심령이 무너질 리가 없지 않은가요? 거룩한 날을 거룩하게 지킬 때 심령은 건설됩니다. 안식할 때 안식할 줄 알아야 심령이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겸하여 기독교교회협의회가 1992년 12월에 발표한 기독교 8대 민주화정책중에서 환경정책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어 드림으로 이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들 인간은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몸이 죽으면 인간자체도 죽습니다. 몸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따라서 자연환경이 공해로 죽어가면 인간도 몸도 함께 죽어가게 됩니다. 오늘날 인간을 위한 경제개발이 자연환경과 인간의 생명을 죽이는 역현상을 심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남한의 환경오염 문제는 최악에 이르고 있습니다. 서울의 대기오염 수준은 세계 3위, 경작지 면적당 농약 살포량도 세게 3위, 국민 1인당 쓰레기 배출량은 세게1위라고 합니다. 낙동강의 페놀 방류 사건을 비롯한 독극물, 폐수, 매연 등을 정화하지 않은 채 무제한적으로 방류하거나 뿜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명파괴의 주범은 성장 위주의 경제와 산업구조라고 봅니다. 최대 이윤과 고속 성장의 추구는 자연환경의 파괴를 초래하였습니다. 이제는 생명을 북돋아 주고 생명을 창조하는 (life-enhancing) 경제와 산업으로 개편하여 생명을 지켜야 합니다. 현재의 경제구조와 산업구조로써는 곧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환경요인을 고려하지 않은 경제와 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에게 자연환경을 잘 보호하고 가꾸라는 청지기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 후손들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환경요인을 우선으로 하는 사업구조 개편 등의 환경정책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태계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자연을 주셨습니다. 빛과 물과 초목과 바다의 해와 달과 별을 주셨습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생태계의 건강을 위하여 주신 자연이 파괴되고 오염되고 나면 우리의 건강은 무너지고 가야 할 곳은 병원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심령을 위하여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안식한 줄 모르는 사람은 심령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생태계를 건설하고 심령을 회복시키는 정성이 있을 때 건강한 사람은 많아지고, 거룩한 사람은 많아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