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머루 소풍

                              김선옥:주치리 감리교 전도사

“꼬끼요오~”

 마치 귀에다 대고 지르는 것처럼 힘찬 소리에 용구는 화들짝 놀라면서 깨어났습니다. 창문이 환합니다. 걱정이 되어 시계부터 봅니다. 흐유, 아직 멀었잖아, 난 또 늦은 줄 알았네. 매일 용구에게서 모이를 받아 먹는 닭도 오늘이 무슨 날이지 알았나 봅니다. 그래서 용구의 방문 앞에서 유난히 큰 소리로 날이 밝았다고 알렸나 봅니다. 마당으로 내려서는 용수의 손에 평소보다 많은 모이가 들려 있습니다. 오늘은 용구가 다니는 교회에서 소풍을 가는 날 입니다. 용구네 마을에 교회가 생긴지 거의 일년이 되어 갑니다. 하지만 소풍은 처음입니다. 그 동안 용구와 교회 친구들은 얼마나 소풍을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처음 나가는 교회라서 모든 게 다 신기했지만 특히 교회 소풍은 어떤 것이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교회 소풍이 늦어진 이유는 전도사님의 건강 때문입니다. 작년, 가을 어느 가난한 사람에게 신장을 하나 나누어주는 수술을 하신 것입니다. 수술을 하러 가신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용구는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전도사님, 그럼 돈 많이 받겠어요.”

 “아니야, 너무 귀한 것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안 받는단다. 공기 없이는 단 한순간 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이지만 돈을 안내는 것과 마찬가지야.”

 용구는 숨을 깊이 들이쉬면서 문득 그때의 말을 기억합니다. 너무 귀해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것, 맛있는 아침 공기를 실컷 들이마셔 봅니다. 그리고 뒷산 꼭대기에서 삐쭉삐쭉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 아침 햇살을 두찰 벌려 껴안아 봅니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교회에 가보기로 합니다. 이장님 댁 옆을 지나면서 습관적으로 외등을 올려 다 봅니다. 환한 대낮까지 끄덕끄덕 졸고 있는 외등이 없도록 돌아보는 일이 용구의 몫입니다. 용구는 그 일을 하는 게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벌건 대낮에는 몹시도 부끄러움을 타는 전등입니다. 남에게 미루지 않고 스위치를 찾아 꺼주는 것이 바로 에너지를 아끼는 길이요, 환경보호라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부지런한 이장님이 벌써 동네 한바퀴를 돌으신게 분명합니다.

 교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피아노 소리가 선명하게 들립니다. 찬송가 연습을 하시나 봅니다. 언젠가 전도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 구실을 못한다고 먼지를 뒤집어 쓰고 앉아 있는 피아노의 별명은 “잠만 자는 거대한 상자”이라고, 밤새 실컷 잔 피아노를 깨웠나 봅니다. 우리 교회 피아노는 결코 잠만 자는 거대한 상자가 아닙니다. 방과 후에는 6명의 어린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있습니다. 피아노의 기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활용하는 것도 환경 사랑하기의 방법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용구는 피아노를 좀 배우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요즈음은 전도사님을 졸라서 기타를 배우고 있습니다. 용구는 피아노보다 기타가 훨씬 재미있습니다.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기타를 발견한 사람은 용구입니다. 용구 때문에 다시 빛을 보게 되고, 다시 노래하게 된 기타는 하루에도 몇 번씩 용구에게 감사하고 있을 겁니다.

 “우리 용구, 일찍 왔구나”

 전도사님이 돌아 보시면서 반갑게 웃어 주셨습니다. 둘이는 함께 소풍 준비를 합니다. 오늘 여러 가지 게임을 준비하는 것을 용구의 몫입니다. 일일이 다시 확인하면서 점검합니다. 풍선, 이쑤시개, 탁구공, 수저, 실과 바늘, 노끈 등. 용구는 개인용 컵을 준비하는 것을 잊지않습니다. 교회에서는 가능하면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회용 컵 대신에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손잡이가 달린 개인용 컵을 사용합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소풍을 가서도 이 개인용 컵을 사용할 것입니다. 컵에는 저마다 주인의 이름이 쓰여져 있습니다. 처음엔 귀찮은 생각이 들 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화용품 사용이 얼마나 엄청난 자원을 낭비인가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은 개인용 컵 사용을 모두 좋아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평소보다 일찍 나왔습니다. 간편한 옷차림에 도시락이 든 가방을 하나씩 메고 있습니다. 김밥 외에 무슨 과자가 그 속에 들어 있는지는 점심시간까지 비밀입니다. 짖궂은 아이는 다른 아이의 가방을 툭툭 쳐보기도 합니다. 행여 미리 들킬까 봐 달아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좆고 좆기면서도 여전히 싱글 벙글입니다.

 드디어 소풍 장소인 뱀머루로 향합니다.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기 때문에 평소에도 가끔 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모든 것이 달라져 보입니다. 숙제를 다 못했기 때문에, 또 준비물을 안 가져 왔기 때문에 터벅 터벅 걷던 길과는 전혀 딴판입니다. 모두가 우리를 반겨주는 것 같고, 잘 다녀오라고 손 흔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길가의 돌멩이를 툭 차보아도 아프지 않습니다. 도중에 노래를 여러 곡 불렸습니다. 물론 너무 크게 왁왁 소리만 질러대지는 않습니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연의 소리와 어울려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에 귀기울이여 잘 어우러지는 노래를 부르려고 애씁니다. 대로는 우리 노래를 그치고 자연의 노래를 들어보기도 합니다. 우리처럼 피아노도, 기타도 없지만 많이 연습했는지 아주 듣기가 좋습니다. 노래가 끝난 후, 쑥스러워서인지 건너편 산으로 날아가는 이름 모를 산새에게 힘찬 박수를 쳐 주기도 했습니다.

 뱀머루에 닿았습니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어울려 놀 수는 없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개울가에서 세차를 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습니다. 뱀머루의 물을 흐르고 흘러서 충주댐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세차를 하면 여러 가지 오염 물질들을 상수원에 곧장 흘려보내는 것이 됩니다. 그 아저씨들을 그런 것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차 씻기에만 바쁩니다. 마치 그 일만을 위해서 온 것처럼 주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입니다. 오래된 먼지로 더럽던 차가 씻기면서 번쩍번쩍 윤이 나는 게 신이 나는가 봅니다. 저 아저씨들의 양심도 깨끗하게 씻어 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한쪽에선 크게 스피커를 틀어 놓고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처음 보는 큰 기계는 성능이 아주 좋은 이동식 노래방이라고 합니다. 번갈아 마이크를 잡고 목청 높여 노래를 합니다. 용구는 속이 상했습니다. 오랜만에 솜씨를 보여주려고 잔뜩 벼르고 있던 산새들도 시냇물도 풀이 죽었습니다. 자신의 재롱을 보아주지 않았을 때의 동생처럼, 잔뜩 볼이 부어서 노래를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달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순간 맛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군침이 돕니다. 하지만 산이나 강에서 취사를 안 하는 것이 자연을 되살리는 것이라던 전도사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도시락을 준비해온 것입니다. 용구는 일부러 자신에게 말해봅니다. “그까짓 고기, 안 먹고 싶다.” 준비해간 게임들을 하나하나 진행하는 동안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웃음소리 조차도 커다란 스피커 소리에 삼켜져서 빛을 잃었습니다. 점심시간에, 안그러려고 해도 자꾸 곁눈질을 하게 됩니다. 고기 굽는 냄새를 따라 고개가 저절로 돌아갑니다. 속상합니다. 바짓가랑이를 걷어 부치고 냇가로 들어가서 올뱅이를 잡았습니다. 허리를 굽히고 들여다보면 바위에 붙어있는 올뱅이가 환히 보입니다. 물속에 손을 집어 넣고 한움쿰 훑어내어 빈 도시락에 담습니다. 다시 즐거워졌습니다. 그러나 잠시였습니다. 돈을 주고 살 테니까 많이 잡아가지고 아오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고, 올뱅이 잡는 기쁨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래서 예정보다 일찍 귀가를 서둘렀습니다. 놀았던 자리를 정리하면서, 저분들도 깨끗이 청소를 하고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용구는 오늘 하루동안의 일을 생각하면 일기를 씁니다. 아주 조그만 몽당 연필로 일기를 씁니다. 그냥은 손에 잡히지 않아서 볼펜 빈 깍지에 끼워서 쓰고 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닳으면 교회에 가지고 갈 겁니다. 용구네 교회는 더 이상 쓸 수 없을 정도로 알뜰히 쓴 몽당연필을 새 연필과 바꾸어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종이나 연필을 낭비할 때마다 쓰러져가는 나무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본 이후로, 종이 한 장, 연필 한 자루도 아끼고 있습니다. 교회 전도사님이 한번 쓴 편지봉투를 잘라서 메모지로 이용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일은 토요일, 아주 즐거운 날입니다. 동네 개울가에 모여서 빨래를 하는 날입니다. 환경보호 차원에서는 맑은 개울가에서 방망이 빨래를 하는 것이 제일 좋다고 하시면서, 전도사님이 토요일을 발려하믐 날로 정했습니다. 그래서 용구도 토요일엔 빨래를 합니다. 처음엔 빨랫감을 감추고 주지 않으시던 할머니가 이제는 순순히 내어 주십니다. 그리고 “아이구, 우리 용구 착하기도 해라.”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십니다. 우리 동네는 세탁기가 한 집도 없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원래 빨래는 주무르고 두들기는 일을 반복해야 깨끗이 빨아진다고 합니다. 비누도 교회에서 직접 만든 무공해비누를 사용합니다. 통닭 집에서 얻어온 폐수용유와 가성소오다를 이용해서 만든 비누입니다. 그러니까 용구네 교회 어린이들은 모두 빨래 박사입니다. 그런데 전도사님을 우리에게 박사학위를 하나 더 주셨습니다. 환경박사라나요, 빨래박사는 이해가 되는데 환경박사는 어째 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어쨌든 기분은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