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창조화 지혜로운 관리자

                                김명신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을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 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이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니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한 아들들에게 일러 가라사대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너희와 함께한 모든 생물 곧 땅의 모든 생물들에게 세우리니 방주에서 나온 모든 것 곧 땅의 모든 짐승에게니라. 재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 9:1 ? 13)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니 만물이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골 1:15 -16)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도 환경보호에 관한 목소리가 높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각계각층에서 환경보호와 창조질서 보존을 위해서 노력하는 움직임은 무척 다행스러운 현상입니다. 지난 5월 31이에는 서울 유림회관 대 강당에서 “한국 종교인 평화회의’가 열려 “환경윤리 종교인 선언대회”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인간은 오만과 탐욕으로 인해 다른 생명과의 상호의존 관계를 깨eke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환경보존을 위한 4개항을 채택했습니다.

첫째는, 정신적인 풍요를 소중히 여기는 삶.

둘째는, 자연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사고.

셋째는, 범세계적인 사고.

넷째는, 후손의 삶을 생각하는 사고입니다.

그 요지는 점점 오염되어 가는 환경을 보존해야겠다는 내용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살기 좋은 모습으로 보존할 수 있을까요? 오늘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은 환경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민간환경단체가 132개나 됩니다. 지난 6월 5일은 세계환경의 날이었습니다. 지난 1992년 6월 3일 브라질 리우데 자네이루에서 개막된 유엔 환경 개발회의(일명 리우환경회의)는 환경에 대한 인류의 숙명적인 관심을 학인시켜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환경보존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인식을 바로 해야 하겠습니다.
 다윈의 진화론이 하나님의 천지창조에 대한 도전이었다면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는 곧 창조신앙에 대한 도전입니다. 전통적으로 자연의 세계는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에 불과합니다. 자연은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해석해 왔습니다. 인간은 자연 위에 자연의 지배자와 소유자로 존재하며 자연은 인간 아래에, 인간에 의하여 지배되고 소유되어야 할 대상으로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세계관은 오늘날 일아나고 있는 자연환경의 오염과 파괴, 생태계파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신학의 전통에 반하여 오늘날 신학은 창조를 구원에 못지 않은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즉 창 1-2장에 있는 창조신앙을 하나님중심의 세계관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세계의 중심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자연은 인간의 임의로 지배되고 정복되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계를 관리해야 할 관리자.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창1장 26절의 “다스리라”라는 말은 본래 이집트와 베벨론의 궁중언어로서 “돌보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을 다스리는 자”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자연세계의 행복과 평화를 위하여 돌보고 가꾸어야 할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창1장 28절의 “정복하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를 우리는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정복은 자연에 대한 파괴와 착취를 뜻할 수 없습니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인간이 축복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여기서 말하는 정복은 인간이 그에게 맡겨진 자연을 돌보고 가꾸면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소산물을 먹고 건강하게 더불어 사는 곳을 뜻합니다. 정복이라는 말을 파괴적으로 사용할 때 인간에게는 노아 시대와 같은 생명의 위기가 다가오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유지를 위하여 하나님의 창조섭리에 순응하는 지각있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살아가는 인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도 하나님처럼 자기와 다른 존재에 참여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어 한 몸을 이루고 살도록 창조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를 고백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상대방의 존재에 참여하면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한 몸을 이루고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형이십니다. 하나님은 지배와 명령으로서가 아니라 나눔과 공생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도 하나님처럼 다른 존재에 참여하고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한 몸을 이루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기의 때에도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속에서 온갖 생물과 더불어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연만물에 대하여 책임성을 가질 때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피조물을 위하여 수고하는 분으로 나타납니다. 그는 피조물의 생명에 필요한 물을 마련하기 위하여 에덴 동산에 강을 끌러들이며, 손으로 진흙을 사용하여 사람과 짐승을 빚으시고 그의 숨을 불어 넣으셔서 그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배자가 아니라 피조물을 위하여 ‘섬기는 자’, “고난을 당하는 자 “호 계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체화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철저히 책임적인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을 책임지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 (골 1:15)이라면 인간이 지닌 하나님의 형상도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 대한 그이 책임성, 그들을 위한 봉사와 희생에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인류와 자연세계에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보존은 인간의 의무이며 살길입니다.
 창조질서의 보존은 복음과 깊은 관계를 지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에 의해서 도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창조질서의 보존을 포함한 올바른 문화행위를 계속해야 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의 자연과 생물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잘 가꾸고 보호하며 지키라는 분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관리자와 청지기로서의 임무와 생명을 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따나 범죄한 인간은 한없는 탐욕으로 이 세상을 파괴하고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인간의 탐욕과 무절제로 말미암아 점점 무너지고 있으며 환경은 오염되고 동식물은 병들어 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예를 들면 열대지방의 숲이 매년 1100만 헥타아르씩 가라앉습니다. 공기오염이나 산성비 때문에 산업국가에서 3천 1백만 헥타아르씩 손상되고 있습니다. 산업지역의 호수와 강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습니다. 마실 물이 귀해지고 수천종이 동식물이 매년 사라지고 있습니다. 모든 종의 동식물 가운데 1/5이 앞으로 20년 동안에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지구의 온도가 2050년이 되면 벌서 1.5도에서 4.5도 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합니다. 이미 지구의 오존층에 구멍이 커져가고 있습니다. 이밖에 돌 원시림의 인공적 파괴,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다량살포에 의한 농경지의 폐허, 생물학적 천적의 소멸, 대기오염도가 산성비, 해양의 오염 등은 자연환경의 문제의 심각성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창조질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생태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인간의 탐심입니다. 탐욕으로 물든 인간의 죄악을 극복되기 전 가지는 참된 의미의 창조질서의 회복과 보존은 기대될 수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진정한 창조질서 회복은 복음 안에서만 그 결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복음 안에서의 제자의 삶”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환경회복을 위한 바른 길이라고 믿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살기 좋은 환경을 보존할 수 있는 지름길입니다 탐심을 버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갑시다. 또한 중요한 것은 어려운 이웃과 제 3세계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과 제3세계에 대한 사랑의 노력이 없이는 지구환경보존은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생존을 위해서 환경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노력이 없으면 모두가 자멸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창조질서 보존이라는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교회학교의 교육을 통해. 또한 부모를 통해서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연을 돌보며 가구고 함께 즐거워 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 무지개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의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구원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혜택을 덧입고 사는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가꾸어 나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