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피조물 그리고 그의 탄식

                            김봉균 :부곡 감리교회목사

"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 (롬 8:21-23)

"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비추어 보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가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것은 제 본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열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나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에 참고 기다릴 따름입니다. " (로마서 8:18-25)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창조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하루에 한가지씩 새로운 것을 창조하실 때마다 그것은 경탄을 불러 일으키는 아름다운 것이요 질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히 창조되기는 하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인간은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일부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연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였습니다. 청지기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관리자요 봉사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그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계시를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은 그 무한대의 크기와 그 정밀한 질서 그리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끊임없이 나타내어 보이므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겸손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자연의 한 부분이요, 한 연결고리 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요, 책임과 사명이 막중한 연결고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간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그 한계를 벗어났습니다. 관리자요 봉사자가 되는 대신에 지배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는 대신에 그 자연을 마구 파헤치는 지배자로 군림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문명이 급격히 발전하고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공해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자 크리스챤들은 바울이 말한 피조물의 탄식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과학의 발달이 이 땅을 낙원으로 만들어줄 것으로 착각하고 끊임없이 부를 생산해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전보다 편하고 안락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락함과 부를 채 누리기도 전에 재앙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그 재앙이 지금 우리나라에도 상륙하였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는 오로지 경제성장만을 추구하여 온 결과 어느 정도 경제력을 갖춘 세계 주요 수출국 중의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절제하고 무조건적인 경제발전을 선진국들보다 훨씬 심각한 공해문제를 야기시켰습니다. ‘공해백화점’이란 별명을 얻기에 걸맞도록 도시, 강, 바다 어디고 할 것 없이 숨을 쉬기도 불쾌한 대기와 보기에도 구역질 나는 시커먼 오염 수들이 흐르는 광경을 약간의 관심만 갖는다면 이 땅의 어디에서나 볼 수 있습니다. 최근 식수가 과연 마실만한 물이냐로 논쟁이 일어났고, 또 하나는 원자력발전소가 과연 안전한가 하는 시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문마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기획기사로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이 문제에 대하여 정부나 우리 국민들은 아직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공해는 우리의 일상활동에 수반해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우리 모두가 공해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해문제는 일단 발생하면 그 피해가 심각하고 장기적이고 회복이 어렵거나 불가능해지게 됩니다. 공해병에 걸리면 치료가 불가능합니다. 공해문제는 점차적으로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는 특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 지역사회나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전 세계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이 다스리고 지키라고 하신 자연을 마구 훼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신학은 인간의 구원문제만을 다루는 데 그쳐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먼저 구원하시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연을 구언 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의 과제는 단순히 사람을 구원하는 데 머물지 아니하고 창조질서의 회복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신 명령인 자연을 다스리고 지키는 책임을 이제 구원 받은 교회가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 선교회에서 거창한 사업도 좋지만 창조질서의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들이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 선교회는 할 일이 많습니다. 세제를 덜 쓰거나 안 쓰는 운동, 쓰레기 적게 버리는 운동, 머리를 샴푸로 감지 말고 비누로 감는 일, 기름 같은 것을 하수구에다 함부로 버리지 않는 일, 그리고 비닐 봉지를 가능하면 안 쓰는 일, 그리고 비닐 봉지를 가능하면 안 쓰는 일, 지나친 포장을 피하는 등 수없이 할 일이 많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의 선교 외 과제인 것입니다. 정부가 많은 돈을 들여 환경오염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 이전에 우리 스스로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면서 자발적으로 환경정화에 발벗고 나서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강산은 금수강산에서 공해강산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강과 바다에서 어족들은 사라지고 새들도 우리를피해 가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는 세에 병들어 죽어가며 땅은 다시는 생산할 수 없는 몹쓸 따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죽어가는 환경을 살리고 하나님이 주신 금수강산을 되찾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선교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들이 인간의 탐욕과 오만으로 인하여 탄식하여 신음하고 있습니다. 지금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이 신음소리, 저 피조물의 탄식소리를 우리가 귀 기울여 들여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단순히 나 혼자 마음의 평안을 얻는 데 끝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축복 받고, 내가 잘되고 내가 천당가는일에 머물러서는 온전한 신앙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웃을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위하여 우리의 책임을 다할 때 비로소 ‘잘했다 신실한 종아’라고 칭찬을 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