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홍경일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저 하늘 높이까지 주의 위험 가득합니다. 어린이과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주께서는 원수와 복수하는 우리를 꺾으시고 주께 맞서는 자들을 막아 낼 튼튼한 요새를 세우셨습니다. 주께서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주께서 달아 달아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 까지 생각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이렇게 까지 돌보아 주십니까? 주께서는 사람을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지으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의 왕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주께서 손수 지으신 만물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시고, 모든 것을 사람의 발 아래에 두셨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하늘에서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노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주 우리의 하나님, 주의 이름이 온 땅에서 어찌 그리 위엄이 넘치는지요? (시편 8편)

본 시편 8편의 노래는 창세기에 나타난 창조신앙을 좀더 아름답고, 우아하며 그리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멜로디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주께서 친히 달아 놓으신 저 달과 별들을 봅니다.” 이 위대한 [창조의 오케스트라]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이게 하며 환희에 차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위대한 [창조의 오케스트라] 때문에 11세기의 위대한 성자 아씨시의 프란치스코는 꽃과 새들과 나무들 그리고 물고기와 들짐승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함께 하나님의 위엄을 노래하였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진정 기쁨의 동산 [에덴]을 상상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이 위대한 [창조의 오케스트라]는 우리의 뇌리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고 있고 한낱 환상으로 밖에, 먼 미래의 파라다이스에서나 만날 것이라는 기대도 좌초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이 세계는 지휘자 없이 연주되는 오케스트라, 병들어 썩어가는 파라다이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후 런던에서 하룻밤에 수많은 사람들이 질식하여 죽어야만 했고 1971. 3. 울산, 남화, 용잠동에 제 2화력발전소가 가동되면서 공장에서 배출되는 매연, 분진, 유독성 아황산가스에 의해 야산의 잡목 1만여 그루가 말라 죽었습니다. 보리, 배추, 고추등도 잎이 녹거나 시들어 죽었으며 또, 두통, 구토, 피부병이 집단으로 발생하여 주민들은 고통을 받았고 시력가지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국 발전소가 가동된지 6년만인 1977년 주민 291가구 1,400여명을 집단 이주하여 지금도 그 자리는 허허벌판인체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천군 삼일면 낙포리 마을 앞에서 1978년 동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특히 낙포리마을 바다 앞에 최대의 비료공장 남해 화학이 들어서면서 이 마을에는 우리창문마다 흰 재가 달라붙고 그을음과 독한 냄새가 마을을 뒤덮어 심할 때도 눈을 뜨기도 어려웠습니다. 한해동안 발생한 눈병, 피부병환자가 708명이나 되었고 1079년에는 403명의 주민이 각종 질환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하석집들은 유도가스로 지붕이 녹아내려 하늘이 보였고 쇠붙이는 모두 녹이 슬었고, TV안테나도 3개월이 못가 녹슬어 부러졌습니다. 유독 성분에 의해 소도 낙태를 하고 개도 새끼를 낳지 못하였으며 농작물은 매년 70-90%가 감소되어 결국 1980년 낙포리 주민 1,200명이 집단 이주하여야만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어찜입니까? 도대체? 왜? 아름다웠던 파라다이스적 세계가 비참한 모습으로 돌변해 버린 것 일가요? 오늘 우리는 설교를 통하여 그것을 찾아보고 참다운 [창조의 오케스트라]를 상기하며 동참코자 합니다.

 헬라화의 세계 속에서 발전되어진 기독교는 성서해석에 있어서 여러 가지 잘못을 범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이분법적 논리로 이 세계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이분법적 놀리는 쉽게 말해서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하는 것인데 바로 그 악한 것은 이 세계라는 것이며 물질이라는 것입니다. 즉, 이 이분법적 원리는 세계를 악한 것으로 보아 심판 때 불살려 버릴 것, 죄 된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끔 합니다. 또 하나의 잘못은 인간을 지나친 우월주위에 놓음으로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다스림”이라는 이제 가운데 이를 인간의 지배원리로 이해케 함으로 전제된 상황들을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더 크게는 가부장적 사고가 크나큰 누를 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서의 이해로 말미암아 오늘날 교회에서 되어지고 있는 설교도 세상을 악한것으로 자연을 의미 없는 한 미생물로 치부하고 인간을 우월시하여 철저히 분리시키는 내용으로 넘치고 있습니다.

둘째, 자연은 엄연히 인간의 공생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자연이 병들면 인간도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은 인간의 적이 아니며, 노예는 더욱더 아닙니다. 그러므로 “가진자”들에 의해 자연이 병들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연을 선교의 동반자. 찬양의 동반자로 이해하며 살아왔던 성프란치스코의 삶의 모습을 되새김해야 보아야 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사명은 어느 곳 하나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생육하고 번성하게 함에 있습니다. “크고 작은 온갖 집짐승과 들짐승까지도 하늘에서 나는 새들과 바다에서 노니는 물고기와 물길 따라 움직이는 모든 것을 사람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하는 노래는 인간을 세계의 관리자로, 감독자로 두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셋째, 자연은 위대한 오케스트라 단원입니다. 자연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노래해야 하는 소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계가 망한다해도 변함없는 것이며, 인간만의 오케스트라는 하나님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합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위대한 오케스트라만이 환영받을 수 잇는 것입니다.

 성서는 결코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지 않으면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관계에 두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버터 수직관계의 이해 속에서 분리되고 불협화음만을 내었던 오케스트라를 바르게 수정해야함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소명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명에 충실할적에 하나님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창조의 오케스트라”는 우리 속에 현존되어질 것이며 우리 가운데서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의 위엄이 이 땅에 내재하고 있음을 느끼고 노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오직 하나. 원초적 생명의 자리인 위대한 창조의 오케스트라를 오늘의 살아있는 오케스트라로 만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