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여! 대지여!

                        홍증자: 전도사

"곧 피조물에게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하나님의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날과 우리의 몸이
해방될 날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공동변역 로미서 8장 21~ 23절)

<그리움>

벌써 어머니가 저의 곁을 떠나서, 아주 떠나셔서 흙으로 돌아가신지 오년이나 되는군요. 살아계신동안 내낸 흙과 너무나 친하셔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수없이 이사를 다니시면서도 어머니 표현대로 송곳 하나 꽂을 만큼 만한 빈 땅이 있으면 그 곳에 무슨 씨앗이든지 심으셨고 무엇이든지 심기만 하시면 어머니 손끝에서는 만지실 적마다 거름이 흘러 나오는지 잘도 자라고 또 어머니 말씀을 빌려서 예쁘게도 커서 몇 배나 효도(?)를 보시던 어머니.

 이제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는 흙과 바로 한 몸이셔서 우리 어머니가 흙이고 흙이 우리 어머니셨는데도 이제는 그 형제조차도 흙이 되셔서 흙 속으로 아주 들어가 버리셨군요! 나이 50이 넘고도 매사에 서툴고 어려운 이 막내딸마저 아주 잊으신듯이. 아니요! 우리 어머니의 그 따스한 피부는 바로 흙이 되어 내가 흙을 만지면 다시 어머니를 만져볼 수 있고 내가 흙에 누우면 우리 어머니  포근한 품에 안기우는 것이지요. 나의 어머니여! 대지여!

<물자는 남(공통)의 것 시간은 내 것>

 금년 여름 교회학교 교육 주제가 「창조와 생명 교육」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교사 강습회에 외람 되게도 주제 강연을 맡게 되어 그 말씀을 준비하다 보니 아! 우리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어떻게 이 땅의 모든 생명들과 친하게 살 수 있고 교류 할 수 있는가를 직접 들을 수 있었을텐테 하면서 어머니가 더욱 간절히 보고 싶고 귀하게 느껴져서 순간이나마 가슴이 뭉클하고 눈자위가 화끈해집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 여러 남매와 부모 없는 조카 둘까지 키우시며 간난한 공무원의 ?기실 그 시절엔 차라리 공무원이 더 가난 하지는 않았을나-아내로 터득하신 생활철학이 “흘러가는 물도 아껴 써라”였습니다. 나도 어릴적에 한 때는 반발도 했다. ?어리석은 답습이고 타성에 젖은 생활관이지 어차피 흘러가 버릴 물인데 무엇 때문에 아껴-그러면서도 그 절약 정신은 내 정신과 습과 속에 침잠되어 나의 생활이 되었고 우리 딸애에게서 절약박사라는 칭찬 반 불만 반의 별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지나친 물자 절약으로 더 드는 품을 괴팍하게 계산해서 불평하는 우리 남매에게 <얘! 천량(우리 어머니는 물자라는 말을 그렇게 하셨다)은 남의 것(공동의 것)이고 시간은 내 것인데 조금 덜 자고 조금 덜 쉬면 되잖는냐? 신식 공부를 못하신 우리 어머니는 공동의 것이라는 낱말은 못쓰시고 남의 것이라고 하셨으나 공이 앞서고 우선적인 그 정신과 실천만은 단호하고 철저 하셨습니다.

<몸으로 언어 이전의 시를 쓰시며>

 우리 어머니는 요즘처럼 생태학이라는 낱말은 모르셨으나 가장 생태학적이니 삶을 사셨고 입으로는 창조를 말할 줄 모르셨으나 가장 하나님 창조 질서에 순응 하시어 창조적으로 사신 분이셨는데, 개, 돼지, 소, 닭, 토끼 등 여러종류 짐승을 기르시며 농사도 지으셨는데 닭이나 심지어 돼지조차도 우리 어머니가 드나드시는 말 소리를 용케 구별하고 그들에 대한 애정과 음식을 특유의 방범으로 표현하는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 또 그럴 수 있는 것이 어머니 손에는 밭을 매시고도 짐승이 먹을 만한 풀은 뿌리를 호미로 털거나 자르고 아니면 손 구석의 물에 씻어 가지고 들고 오셔서 고루 나누어 주시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저 놈 돼지가 아주 내 냄새가 나나봐 나만 가까워지면 저어기서부터 벌써 소리 지르고 야단이야” 아주 떼어 놓았던 막내라도 만나시는 얼굴 이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어머니는 모든 생명들과 교류를 즐기시며 몸으로 글자 없는 시를 쓰고 사셨습니다.

 아주 말년에는 자식들을 따라서 그 좋은 농촌을 떠나 서울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집 근처인 정능 그 언덕바지 바위산 밑에 또 밭을 일구시는 것이었습니다. 매일 돌을 골라내고 윗동네서 흐르는 ?그 때는 산 동네에 하수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었습니다. ? 몰골을 순조롭게 흐를 수 있게 만드시면서 그 사이를 비켜서 그야말로 서구라파 지도 모양, 바위를 피하고 몰골을 비켜서 복잡한 경계의 밭을 만드셨습니다. 비가 와서 흘러내리는 언덕의 흙은 연탄재를 주어다 돌려 세우고는 호박 같은 덩굴 식물을 심어 그 흐름을 고정시키고 조금이라도 평평한 딸에는 각종 채소를 심어 풍성하게 가꾸어 아는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덕분에 어머니 손은 아카시아 나무의 마른 등걸처럼 거칠고 손톱하나 제대로 자라지를 못했으나 어머니 삶의 철학대로 조금 덜 자고 조금 덜 쉬면서 늘 기쁘고 흐뭇하게 사셨습니다. 때문에 쓰레기를 다 땅에 묻혀 거름이 되었기에 그런 것의 철분에는 문제도 없었습니다. 흘러가는 물도 아껴  쓰신 분이 또 무엇을 함부로 버리겠습니까?

 지금 우리 나라에선 일년간 먹을 만한 음식으로 버려지는 것이 돈으로 치면 9조원을 넘고, 정부 예산 사분지 일이 훨씬 넘고 전체 음식물의 35%가 버려져 쓰레기중 28%를 상회 한다고 하니 이 시간에도 5억의  인구가 굶고 있는 이 지구 가족을 생각하면 우리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나 또한 이러한 세상 이러한 세대로 살고 있으니 어찌 그 죄악에서 비켜 갈 수가 있겠습니까.

 우리 어머니인 대지에 멀쩡한 생명도 막 버리고 또 그 썩어지는 독으로는 또 다른 생명을 앗아내고 있으면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다.  내가 가끔 어머니가 사시는 정능 집엘 가면 집 뒤 비탈 밭 뙤약볕에 앉으셔서 일에 너무 열중하고 계셨기에 사랑하는 막내 딸이 간줄도 모르십니다. 아마 그 때 우리 어머니는 밭 이랑의 흙과 거기 심겨진 푸성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을 것입니다. 어떤 때는 그 모습이 너무도 진지해서 선뜻 어머니! 하고 부르지를 못하고 한참을 서서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깨뜨릴 수 없는 어떤 진실의 엄숙함.

<살아서는 살찌워 기르다가 그 주검조차 끌어 안아 주는데>

 이렇게 우리 어머니는 바로 흙의 친구, 아니 그 분신이라고 해야 맞을 만큼 가장 귀한 하나님의 동역하는 피조물로 사셨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돌아가 계신 그 흙, 아니 바로 우리 어머니인 대지가 이제 병이 위중해 가고 있으니, 더 이상 인간을 위해 마냥 식물을 내어 줄 수 없을 만큼 젖줄은 마르고 고름(죽은 물)이 흐르고 부드럽던 가슴은 굳어져(산성화) 가고 아파서 신음하고 있으니 나(인간)의 아픔은 누가 만져주겠습니까?

 살아 있는 생명체인 나무를 키워서 산소를 내어 주어 숨 쉬게 하고 물과 먹이를 내어 살찌워 기르다가 그 수명이 다 하여 떨어지는 생명체들은 그 주검까지도 끌어 안아주는 내 어머니여! 대지여! 그것은 영원한 생명원인 줄 알았더니.

 아니 본래는 그랬는데, 너무나 이 땅에 마이더스 대왕의 후예이 많다 보니 살아 있는 대지가 죽은 황금으로만 보여서 그 손길 발길이 닿기만 하면 그 생명력을 죽이고 마는 저주가 되었고 대지도 그 마력에 본래의 자기를 잃어 버려가고 있기에, 몇 년 전에는 서울 남산의 반 만큼한 흙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 고양 지방 그 일대를 핥아버리고 수 많은 생명들을 쓸어가는 복수(?)를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 어머니처럼 너도 좋고 자네도 반갑고 하는 그런 포용이 아닌 너는 이래서 싫고 저는 주는 것 없이 밉고…. 영락없이 우주 만물조차 이런 저주를 다 배우고 있는 것 같아서 본래 아름다운 동산을 창설하시고 상생의 원리로 복 주시며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기뻐하시던 우리 하늘 아버지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르렁 꽝 일갈로 호령 하시겠습니까? 아예 이 지구는 없었던 걸로 하자 하시지는 않을까요…

 그렇지만 이제라도 우주 만물이 다 하나님께 속해 있음 같이 우리 육신이 이 대지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나가서 바로 그 흙이 내 살점임을 알고 만물이 다 한 가족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이렇게 우리 속 사람이(영성) 제 정신을 차릴 때 또 그럴려고 눈을 뜰 때 하는 아버지께선 우리 어머니를 이땅에 보내심 같이, 그 따스한 희생의 삶을 땅에 묻어 놓으시고 자연순환 법칙으로 치유케 해 주셔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사 모든 피조물이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케 하실려고 세우신 계획(롬8장)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내 어머니! 大地여!

 내가 어머니의 품속인 대지를 그리워하고 우리가 다 같이 하늘 아버지의 도우심을 입어 내 어머니의 가슴에 뽀얀 젖줄이 다시 솟아나게 하고 굳어서 딱지진 가슴팍에 새 살이 돋는 안게 될 것입니다. 영원한 어머니의 후예들이, 이 땅의 주인들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한 것 같이 나의 딸, 딸의  딸들도 제 어미인 흙과 같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내 어머니여! 大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