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통한 상생(相生)의 발견

                                  이 호신

지난해 늦가을 나는 근 5년간 생태기행을 통해 걸러진 자연소재를 그림으로 발표전을 가졌다.

무엇보다 하나의 소재를 화폭에 담기 이전에 대상에 대한 애정과 감수성의 회복 그리고 자연의 성찰을 통해 배움을 간절히 원했다. 따라서 나는 미술학도로서 철저히 자연생태를 탐구하고 기록하고 그려보는 과정을 마다하지 않았다.

여러 생태전문가를 따라 다니며 그들의 전문지식과 자연사랑을 통해 화가는 무엇을 그려 낼 수 있는가에 스스로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의 자연은 사계절이 보여주는 순리와 먹이사슬에 따른 생태계의 질서가 엄숙하게 존재하는 상생(相生)의 섭리가 내겐 큰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산과 들, 강과 바다, 늪지와 갯벌에 이르기까지 사철 '생명의 숨결'은 '상생의 노래'를 그치지 않았다.

세기말에 처한 자연파괴의 개발논리 상황속에서 자연환경은 그 아픔을 감내하며 이제 인간 스스로가 선택해야 할 메시지를 보내주는 것만 같았다.

아니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질서와 윤리, 그리고 욕망에서 벗어난 공존의 드라마를 자연은 겸허하게 가르쳐 주고 있었다.

수천마리의 철새들이 한 마리도 이탈없이 무리를 이룬 새떼들의 정연한 모습을 통해 정녕 질서의식을 느끼지 않을수 없고, 고사목(枯死木)에서 피어난 들꽃을 발견하는 순간 생사의 운행과 우주의 섭리를 생각해야만 했다.

이른 봄 둥지를 튼 왜가리가 보금자리를 백로에게 이어주는 공생(共生) 의 드라마나 꽃을 다치거나 다투지 않고 꿀을 빠는 벌 나비의 공존(共存) 또한 세기말 사람들이 배워야할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처럼 자연생태 공부를 통해 무엇을 느끼고 그려야 할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삶의 무질서와 혼돈, 그리고 욕망에 사로잡힌 세속의 문제들을 반추해 보기에 이른 것이다.

결국 물질문명은 인간의 지혜가 편의주의적 욕망으로 치달음에 끊임없는 소비로서 발명의 지속을 꾀해왔다. 그 지속은 자본의 논리와 한고리를 지며 개발과 파괴로서 신문명의 사조를 띠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 그 부산물은 자연손상과 환경오염으로 드러나게 마련인 것이다.

이제 이러한 인간의 문명발달도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처지에서는 더 이상 문명의 우월로 소비를 볼 수 없게 된 마당이다.

지구촌이 한 마당인 세상에 강대국의 막대한 개발사업이 공해로서 이웃에게 미칠 영향은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인간의 지혜는 발전을 위한 물적자원의 경쟁보다 있는 것으로 하여금 재발견되어 쓰여지고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는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즉 '발견의 덕목'을 키워 오늘의 자원을 보존하고 미래의 희망을 바라보는 인간의 지혜가 요청되는 시점이라고 하겠다

나는 이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생태계를 통해 배우고 깨달으며 그 느낌을 화폭에 담아 보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 버린 생명의 존엄과 외경, 그리고 삶의 순리를 통한 기다림과 그리움, 뭇 생명의 가치는 무엇하나도 헛됨이 없다는 진실과 진리의 거룩함을 인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아! 수세기를 품어온 저 거대한 은행나무가 푸른 하늘을 이고 치닫는 바람을 옹이에 새기고 태초의 햇살로부터 별과 달을 사귀며 수천 수만의 노란잎 손짓으로 나부끼다가 흙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흙은 세 뿌리를 도와 지금 겨우내 잠긴 뜻으로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이 흙과 뿌리의 관계를 발견하는 덕목이 신세기의 희망이다.

'점봉산 진동계곡'을 다녀와서 그린 그림과 글을 옮겨 적는다.

"오염과 파괴로 점철된 고발 현장 못지않게 온전한 아름다움도 함께 보여주어야지요. 이는 마치 선악의 분별처럼 참다운 환경과 그릇된 문제를 함께 예시함으로써 자각의 기회를 부여하자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통한 감수성의 촉발 속에서 인간의 선의와 정의가 솟아날 때 우리의 자연환경은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환경운동' 관련 담당자들에게 언제나 내가 주문하는 말이다.

맑은 하늘, 투명한 계곡과 풀꽃들의 잔치, 그리고 성성한 숲속의 바람과 새소리를 들어보지 않고서야 어찌 자연의 아름다움, 고마움을 알겠는가.

비록 가난했으나 자연의 품 속에서 유년의 뜰을 지닐 수 있었던 어른들은 언제부턴가 그 고마움을 잊고 자연 파괴를 일삼으며 이룬 콘크리트 더미 위에서 한때는 득의만만해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땅의 자손들을 위해 진정 무엇을 해줄 것인가 하는 물음 앞에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도심의 온갖 오염지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쓰레기나 줍게 하고 자연보호 포스터를 그리게 하는 일은 이미 어른들이 저질러놓은 공해를 전가하는 일이요, 그 책임을 은연 중 방기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나 좋은 환경을 누릴 권리가 있건만 20세기 후반 아이들은 무슨 탓으로 오염된 땅에서 유년을 보내야 하는가.

이제 우리 어른들은 가난했지만 자연환경이 아름다웠던 그 유년의 뜨락으로 아이들을 인도해주어야 한다. 그것이 함께 사는 길이요, 자식이 살아야 할 세상을 염려하는 어버이의 일이다.

이러한 취지에 동참하느라 '백두대간 점봉산 산풀꽃 보기 생태답사'(우이령보존회 주최)에는 가족 단위로 참여한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산과 자연을 지키는 우이령보존회의 행사는 때마다 비와 인연이 닿는지, 지난 달 '우이령 산풀꽃 심기 시민 걷기 대회 및 고속도로 저지 등반대회' 때도 비가 왔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우리 가족 또한 주최측에서 나누어준 할미꽃과 용담을 심었다. 1년에 딱 한 차례 북한산 내의 군부대를 개방하는 날이라 악천우 속에서도 1천 여 명이 넘게 우이령을 넘으며 풀꽃과 묘목을 심었는데 연신 빗물에 젖는 제문을 읽던 모습은 차라리 절규에 가까웠다.

우리의 산은 짓밟히고 있습니다. 우리의 물은 썩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공기는 더렵혀지고 우리의 자연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커다란 분노와 그리고 반성의 실천으로써 북한산과 도봉산의 영봉이 마주 보는 이 거룩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하는 이 엄청난 시련과 고난의 대부분은 우리가 개발과 편리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섭리를 역행하고 섭리를 파괴한 죄악에 대한 업보인 것으로 우리는 믿고 있습니다. …… 오늘 이 거룩한 연봉들 앞에서 우리는 무서운 분노로서 다짐하는 바입니다. 자연을 사랑하고 산을 사랑하는 일은 다만 자연과 산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산을 부수고 파헤치고 산의 숨통을 조이고 짐승을 몰아내는 시대와의 싸움입니다. …… 우리는 섭리가 파괴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연이나 인간이나 정치, 경제, 사회 속에서도 다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는 산을 살려내는 이 싸움을 사랑과 분노의 결의로 이겨내고야 말 것입니다.

북한산과 도봉산 연봉의 신령이시여!

부디 저희들의 싸움을 굽어 살펴주시옵소서.

1998년 4월 12일 / 산과 자연을 지키는 우이령보존회

금년들어 우이령보존회의 두 번째 행사로 강원도 인제군 점봉산 진동계곡으로 떠나는 주말 오후에도 비가 내렸다. 따라서 산림청 지정 국내 유일의 '원시림'이요, 유네스터 MAB(Man & Biosphere) 생물권 보존지역이자 열목어(천연기념물) 서식지로 알려진 점봉산 생태기행의 기대는 염려로 바뀌기 시작했다.

팔당호를 끼고 달려 강원도 현리에서 진동리로 들어섰을 때 이미 어둠이 깊었기로 계곡과 산, 비포장의 험난한 찻길이 빗줄기에 싸여 있었다. 말로만 듣던 70리 비포장 도로는 대형버스가 더 들어가지 못해 민박집에서 트럭과 짚차로 일행들을 날랐는데 물에 잠긴 계곡과 이미 숲을 이룬 험악한 길을 비오는 밤에 지나기란 긴장의 연속이었다.

우리를 맞아준 진동리의 마지막 통나무집은 꽃님이, 지민이 두 어린 남매를 둔 홍순경 씨의 집인데 5년간 뜻있는 이들과 함께 직접 지었다고 한다. 젖은 몸은 따뜻한 주인의 배려로 금세 녹았고, 저녁을 먹은 다음 설악산 환경운동가로 알려진 박그림 선생이 준비한 슬라이드를 감상했다. 설악산의 아름다운 생태 앞에서는 탄성을, 파괴된 모습에서는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끼게 하니 시종 감회가 뒤섞였다.

특히 대청봉으로 오르는 길목의 뿌리를 드러내 나무와 아예 초목을 볼 수 없게 된 생채기는 마치 어느 우주인이 보내온 불모의 행성을 찍은 사진 같아 모두 할 말을 잃어야 했다.

자연 경관을 완전히 무시하고 조성한 봉정암의 기도처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대명콘도와 골프장 공사는 설악산의 정기를 막고 자르는 것 같았다. 온갖 오물들로 계곡 전체가 쓰레기로 변한 모습에서는 악취가 풍겨나는 듯한데, 연중 산을 찾는 사람이 360만 명이나 된다고 하니 하루에 만 명이 산을 오르는 셈이다. 그 중 대청봉을 찾는 사람이 40만이라, 불모지가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겠다.

이 인간의 욕심 속에서 설악산을 구제하는 일은 가능한 한 설악산을 찾지 말아야 한다는 말에 오늘의 토의는 역설이 되고 만다. 구름바다에 잠긴 설악의 일몰 사진을 보며 스스로 아픔을 감내하는 자연의 섭리에 일행 모두는 숙연함에 잠겨야 했다.

참가자 모두는 자정이 넘도록 '자연과 사람'의 관계를 토론하느라 잔을 나누었는데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자연이 원상 회복되어 오늘 같은 모임이 필요없게 되는 일이므로 모두 한 마음으로 잔을 높이 들어 '우이령보존회 해체!'의 그날이 빨리 오기를 간구했다.

역시 뜻이 있는 곳에는 길이 있는 법인가. 이튿날 일행 중 한 사람인 기상통보관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하늘은 청명하고 오월의 산록은 눈부시게 푸르다. 또한 비가 내린 뒤라서 계곡의 물소리마저 우렁차니 대지는 새로운 기운으로 살아오른다.

단목령까지 길 안내를 맡은 현진오 박사('꽃산행'의 저자)와 이병천 박사(임업연구원)가 편을 나누어 길 안내를 하고 점봉산 식생 탐사에 들어갔다. 다행히도 오염되지 않은 원시림의 신비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곳이 점봉산 숲이라고 소개한 그들의 말대로 숲과 계곡은 신록을 다툼하듯 반짝이고 있었다.

일행에 뒤처지며 내 작은 화첩에 담은 식물과 꽃은 알알이 영근 다홍빛의 금낭화, 흐드러지게 무리 지어 피어난 흰꽃의 귀룽나무, 종 모양으로 처진 자줏빛꽃의 '붉은병꽃나무', 가장 흔한 제비꽃인 보라색 호제비꽃과 이슬이 자라 종이 된 모양으로 한 줄에 알알이 달린 흰색의 은방울꽃이었다. 나무로는 새순이 오른 박달나무와 다릅나무, 신갈나무, 물푸레나무 들이었다. 특히 큰앵초의 군락지를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계곡을 끼고 열 지어 피어난 진홍빛의 큰 앵초 군락은 진동계곡의 백미였다.

한편 노오란 동의나물과 피나물의 군락지도 눈에 띄고 철쭉도 눈에 들어 왔으며 '홀아비바람꽃'도 드물지 않게 눈길을 잡아끈다. 둥글레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으나 얼레지는 이미 꽃이 져서 새삼 봄이 지나감을 실감하는데 누군가 불법으로 얼레지 군락을 싹쓸이한 듯 약초로 말려둔 현장이 일행의 가슴을 저미게 했다.

노루엉뎅이를 닮았다는 버섯과 조리를 만들 때 쓰이는 키 낮은 조릿대로 지천이고 참나무 가지 위로 꿈틀거리며 올라간 등칡의 기상도 볼 만했다.

별처럼 반짝이는 흰꽃의 참개별꽃, 노란빛을 띤 노랑제비꽃, 세 꽃잎이 희고 잎의 모양이 부채처럼 넓은 연령초, 길쭉한 보라색 주머니가 총총이 꿰어진 현호색이며 연보랏빛이 무더기로 눈처럼 쌓인 쥐오줌풀도 이채롭다.

순수 우리 토양의 토종 민들레는 주변에 흰민들레와 함께 자라고 있었고 옥색바탕에 노란 꽃술을 지닌 참꽃마리, 이른 봄꽃의 대표격인 노오란 양지꽃은 아지껏 숲속을 수놓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곳 점봉산의 특산이라 할 수 있는 한계령풀은 보통 산에서는 만나기 힘든 꽃인데 이미 꽃이 지고 열매만이 달렸으나 화첩에 담을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그밖에 미처 화첩에 옮기지 못했지만 눈에 띈 식물로는 쇠뜨기, 야광나무, 줄딸기, 여우버들, 애기앉은부처, 벌깨덩굴, 박새, 노루귀, 서어나무, 산목련, 당단풍, 관중, 산괴불주머니, 대사초, 검종덩굴, 금강제비꽃, 도깨비부채, 갈퀴현호색, 나도제비란, 금강애기나리, 나도양지꽃, 삿갓나물, 붉은참반디 등이었다.

특히 표피가 희고 아름다운 거제수나무 군락과 겨우살이의 기생 모습도 볼 수 있었고, 한 겨울이면 마치 어린 대처럼 무수한 속새가 장관을 이룬 계곡의 모습은 이 다음에 눈 오는 날 찾아와서 수묵담채로 그려보라고 조상희 위원장이 적극 권해준다.

점봉산은 원시림의 보고답게 수명이 다한 나무가 곳곳에 뿌리를 드러내는데 그 등걸에 새순이 꽃을 피우는 생명의 순환을 보여주니, 우리는 진정한 자연의 운행을 느끼고 감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쇠나드리(바람맞이 언덕)를 내려서서 맑은 계곡을 따라 내려가다가 남빛 하늘이 시야를 환히 밝혀주는 곳에서 투명한 대지의 영혼에 온 가슴을 적시며 무상한 세월에 멀미를 느껴야 했다.

오! 저것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대지의 풍광이, 잡을 수 없는 천상의 신비가 출렁이던 저 유년의 아득한 피안이, 끝없이 흘러가는 뭉게구름에게 이름을 지어주며 시간을 까먹었던 그날의 환영이 비로소 되살아오르는 것이었다. 연두빛에서 진초록까지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채색이 파스텔 톤으로 천지에 뿌려지고 온종일 푸르름에 지친 벽공엔 상현의 낮달이 걸렸는데 계곡의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가 너울지니 초목이 일어서고 온갖 꽃들이 빛을 발하는 대합주의 판타지아가 펼쳐진 것이다.

다시 뭇 생명의 구원을, 자연의 소생을 느끼며 비로소 진정으로 우리가 무엇을 지켜내고 희복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절절한 바람이 싹트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 아름다움의 소중함을 무엇으로 가르치고 교육하여 일깨울 수 있을까. 보고 느끼지 않은 다음에야 ……

일행 모두는 기꺼운 마음으로 꽃님이 집으로 돌아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시 어제의 비로 장길을 돌아나가는데 잠시 전의 감회가 다만 꿈이었을까. 10여 분도 채 못 되어 진동계곡에서 흘러내린 물이 저급수로 전락하고 마는 현장을 차창으로 바라보아야만 했다. 바로 인근 양양의 양수발전소 댐 건설에 의한 오염의 심각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노동절 휴무에다 주말과 사월 초파일이 겹친 탓에 상경길은 겹겹이 차의 띠를 이루어 새벽 2시가 되어서야 대문 초인종을 누를 수 있었다. 나는 이 파리한 문명의 불빛에 지친 육신을 내맡기면서도 의식 속으로는 무시로 진동계곡의 하늘을 떠올리며 그 봄빛을 잊지 않으려 무진 애를 썼다.

동행한 어느 시인이 점봉산을 통째로 화첩에 담아간다고 나를 추켜올렸으나 나는 내 영혼의 쉼터를 이 문명의 어둠 속에서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 뿐이다. 아, 이 우울한 세기말의 길목에서 어쩌다가 나는 이 비련의 아름다움을 그려야만 하는가. (1998. 5. 4 -  '숲을 그리는 마음', 학고재)

[발제자 소개]
 이호신 :
한국화가로서, 숲과 그 안에 사는 모든 것들에서 '생명의 숨결'을 느끼고 끊임없이 찾아다니며 그린다. 그에게 숲은 '삶의 순리'를 일깨워 성찰하게 하는 대상이며, 상생의 법칙을 보여주는 소우주이다. 저서로 '숲을 그리는 마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