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심의 환경교육 김재일 도심 속의 자연환경 도시화와 환경문제 도시화 현상이란 현대 산업사회의 필연적 산물로, 도시와 인접지역이 지니고 있던 고유한 사회구조, 기능, 자연생태계가 분해 변질되어가는 것을 말한다. 도시는 산업사회가 만들어낸 거대한 집단 거주지로, 현대 산업문명의 특징인 대량 생산, 대량 소비, 대량 폐기의 주무대이다. 도시의 발달은 자연의 파괴를 전제로 한다. 도시의 구조와 기능, 도시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은 원래의 자연환경을 변질·파괴시켜 나간다. 대기와 토양의 오염, 지하수의 변질, 토양의 척박, 온난화 현상, 생태계 교란·파괴 등등이 거기서 비롯된다. 서울은 이 나라의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중심지로, 예나 지금이나 많은 작은 도시를 거느린 한 나라의 수도이다. 개발 일변도 정책으로 해서 서울의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었듯이 지방의 크고 작은 도시들도 서울이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따라서 서울의 환경문제는 그대로 지방 도시의 환경문제가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이 나라의 환경지표 도시라 할 수 있다. 서울의 자연환경 서울은 세계의 여러 수도 가운데 선사유적을 가진 몇 안 되는 고도(古都)이다. 한성백제시대를 제외하더라도 정도(정도) 6백년이 넘는 역사의 땅이다. 경제 발전과 국력의 신장으로 올림픽을 치룬 국제적인 도시이다. 뿐만 아니라 서울은 미래의 민족통일시대에도 우리 겨례의 심장부가 될 땅이다. 조선 중기의 유명한 화가였던 겸재 정선은 실경산수화의 대가였다. 그의 작품 가운데 북악에서 서울(장안)을 내려다보고 그린 '장안도'라는 그림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림 안에는 사람도 거리도 집도 없다. 온통 산과 숲만이 화폭에 그득하다. 겸재의 그림은 미학적인 과장이 아니라 당시 서울의 실제 모습이 그랬던 것이다. 세계 어느 도시도 견줄 수 없는 숲속의 미도(美都)였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초 서구문물의 유입 이후, 가까이로는 1960년대 개발정책 이후 서울의 자연환경은 크게 나빠졌다. 지금 서울은 세계 5대 '환경이 나쁜 도시'로 전락하고, 시민들의 삶의 질은 크게 떨어졌다. 비단띠처럼 이어져 있던 산들은 산산조각이 났고, 도심을 덮었던 숲은 오간 데 없어졌고, 푸르던 한강은 악취가 날 정도로 썩어버렸다. 과도하고 급격한 인구 집중, 양적 성장주의 경제활동, 편의 위주의 생활양식 지향으로 자연 생태계와 생활환경이 악화되어 삶의 질이 날로 떨어져가고 있다. 서울의 자연환경 진단 산, 도시녹지 - 원래 서울은 외사산과 내사산이 두 겹의 푸른 띠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불과 3,40년 사이에 산으로 대표되던 도시녹지들이 크게 파괴되었고, 그나마 서로 이어져 있던 녹지들이 북한산과 관악산만 빼고 모두 토막이 나버렸다. 공중에서 보면 마치 깨진 그릇 조각처럼 흩어져 있다. 그나마 시나브로 사라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에 따라 기후 조절, 대기오염물질 흡수, 물 순환체계 관리, 생물종 다양성 유지, 쾌적한 환경 조성 등등의 녹지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들 - 서울 면목동 일대는 구석기인들이 살던 곳이며, 한강변 암사동은 신석기인들이 살던 유적이다. 이들 선사인들이 서울에 정착한 것은 넓은 들과 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오늘의 서울은 어디에도 맨땅이 없다. 도로와 주차장 등등 온통 시멘트 바닥이다. 시멘트는 지하수 체계 교란, 토양 척박, 수자원 낭비, 도심의 열섬현상, 동식물의 멸종을 가속화시킨다. 자연 초지를 대신해서 대부분의 공원을 뒤덮고 있는 잔디밭 역시 생태적 가치가 없는 제 2의 시멘트 바닥이다. 잔디를 가꾸기 위해 온갖 살충·살균·소독 약제와 비료 살포로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는 점에서는 시멘트보다 더 나쁘다. 서울의 외래동식물 - 도시의 발달은 외래동식물의 유입을 불러와 고유한 동식물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여 고유 생물종의 다양성을 저하시키고, 생태계 구조가 단순화시켰다. 미국자리공과 가막살이 등등의 많은 귀화식물들이 고유 풀꽃들을 몰아내고, 배스, 블루길,청거북(붉은귀거북),황소개구리 등등의 외래종들이 샛강에까지 올라와 고유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있다. 거의가 외래종인 집고양이들이 집을 뛰쳐나가 야생화되면서 숲속의 다람쥐·청솔모·비둘기와 같은 야생동물들의 개체수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서울의 논 - 한강 유역은 원래 전형적인 농경지역이었다. 그러나, 현재 서울의 논은 방화동·가양동·상암동 일부지역에만 손바닥만 넓이로 남아있다. 해마다 줄어들어 가까운 장래에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자연생태계와 도시생태계를 이어주는 전이공간인 논이 사라짐으로해서 도시생태계는 크게 파괴되고, 논이 맡아왔던 대기 정화·열(熱)섬 현상 완화·대류와 습도 조절 등등의 기능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특히 향수와 같은 농경적 정서를 도시인에게 채워줄 수 없게 되었다. 도시의 공원 - 도시인들이 그리워하는 자연은 이미 '도시화된 자연'이다. 뱀이 나오고 독충이 날아다니고, 으쓱하도록 울창한 그런 자연이 아니다. 각종 편의시설이 있고, 위험하지 않으며, 말끔하게 정비된 인공으로 조성된 자연이다. 그래서 도시공원은 향기 없는 꽃, 곤충이 없는 잔디밭, 새와 야생동물이 없는 숲으로 이루어진 '죽은 공원'이 대부분이다. 잔디밭과 키 큰 나무와 나무의자와 산책로가 잘 다듬어진, 달력 사진에나 나오는, 이미 한 세기가 지나버린 유럽식 공원에 익숙해져 있다. 그나마 도심의 공원과 가로수들은 자동차 배기가스와 타이어 가루가 주성분인 분진에 뒤덮혀 있다. 최근 서구로부터 '비오톱', '생태조경', '생태도시', '생태공원' 등의 개념이 들어오면서 도시화된 자연이 아닌, 인간과 생물이 공존할 수 있는 생태적 자연을 도심에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서울을 시작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는 생태공원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원래 영역의 축소·조급한 개발·인간 중심의 관리 등으로 인한 서식종의 멸종과 단순화를 앞당겨 결국은 공원의 생태적 수명을 단축하여 결국 나중에는 생물종은 사라지고 공원 팻말만 남는 비극도 예상된다. 생활환경 - 하늘은 스모그와 오염된 대기로 뿌옇게 채색되어 있다. 대기오염 물질의 80%를 넘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비롯하여 공장 굴뚝의 연기, 공사장의 먼지, 안개 등으로 인해 북악이나 남산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은 1년 치고 1개월에 불과하다. 게다가 오염된 대기의 화학물질이 햇빛과 광화학반응을 일으켜 생성되는 오존(O3)으로 해서 호흡기 질환과 눈병을 앓는 시민들이 날로 늘고 있는 추세다. 제한된 공간 안에 많은 인구들이 날로 밀집되다보니 아파트와 같은 대형 주택들이 들어설 수 밖에 없다. 대지에서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비율(용적율)은 날로 높아지고, 녹지율은 날로 떨어진다. 더욱 늘어나는 고층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넓은 주차장을 요구하게 되어 녹지율을 더욱 떨어뜨린다. 특히 최근 경쟁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한강변의 아파트 숲은 교통난 유발, 한강의 하수화, 인구집중 등으로 그 지속성에 문제가 생기고 있다. 강변의 아파트와 빌딩 숲은 강바람이 도심을 드나드는 것을 막아 도심 대기의 질을 크게 악화시키고 있다. 도시의 팽창 속도만큼이나 쓰레기 배출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쓰레기의 질도 자연분해가 거의 불가능한 화학물이 증가하고 있다. 땅에 묻으면 토양과 수질을 떨어뜨리고, 태우면 다이옥신과 같은 유해물질을 양산하게 되고…. 그나마 이제는 버릴 데도 없고, 태워 묻을 데도 없는 실정이다. 한강의 자연생태 - 지난 1980년대의 한강 개발은 통수(通水)와 둔치 활용에만 중점을 둔 개발이었다. 그 결과로 한강은 운하화 되었고, 강변은 부둣가처럼 획일화되어 습생식물 군락·자연초지·숲·모래와 자갈밭 등등이 함께 자리하고 있던 강변의 자연생태계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그 어느 곳에서도 옛날처럼 바지 걷고 첨벙첨벙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 많은 지천들이 건천화되고 복개화되어 지천은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들를 실어나르는 거대한 하수로로 변해버렸다. 한강의 둑 위에다 올림픽도로를 비롯한 여러 겹겹의 강변도로들을 건설하여 제방의 자연생태적 기능도 아예 없어졌다. 다리의 증가와 교폭의 확대는 물흐름과 공기의 흐름에 장애가 되고, 오가는 철새들에게도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한강은 숲 하나 없는 누드강이다. 그 때문에 수온이 높고 수질도 불량하며 생태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하다. 한강 둔치의 시민공원화로 인해 한강 남단과 북단에 생태띠로 이어져 있던 거대한 둔치들이 토막나버렸다. 도심의 생활하수와 오염된 대기, 근교의 공장폐수와 축산폐수 등은 한강의 수질을 크게 악화시켰다. 그에 따라 서식하는 물고기의 종들이 줄어들었다. 행정의 반생태적 구조와 관료들의 반생태적 환경마인드도 지속가능한 생태도시를 조성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한강관리사업소가 아직도 건설국에 속해 있고, 밤섬처럼 자연상태로 돌려주어야 할 선유도를 엄청난 돈을 투입하여 다시 공원으로 조성하고 있고 …. 제 2의 한강개발이라고 하는 '새 서울 우리 한강 사업'이 3개월만에 졸속 수립되어 시행에 들어가고, 한강 가운데 분수를 세우고, 난지도에 골프장을 만들고 …. 환경운동과 환경교육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우리의 자연은 불치의 중병을 앓고 곳곳에 드러누웠다. 물은 마시기조차 꺼려지고, 공기는 숨쉬기조차 두려워지고, 강과 산은 더 이상 퍼다버릴 데도 없는 거대한 쓰레기로 가득차 있다. 자연에게 자정(自淨)과 재생(再生)의 능력을 더는 기다릴 수 없는 상황에서 도시는 날로 황폐화되고 있다. 우주 만물은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서로 고리져 있다. 이는 환경문제가 어느 특정분야 또는 특정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사회구조와 고리져 있다. 다행히 근래들어 환경에 대한 의식이 다소 높아지고는 있지만, 환경운동은 단순한 경각심 고취나 시위적 대응 등 평면적인 운동방식을 좀더 극복해야 하고, 입시위주와 이론위주의 환경교육도 교실 안에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와야 할 때이다. 필자가 이 지면에서 논하고자 하는 '체험학습·생태기행'은 근래 와서 새롭게 모색되고 있는 환경교육의 한 방평인이다. 탐구적 생태사랑에 바탕을 둔 '운동+교육'의 형태로, 이를 통해 시민과 학생들이 현장에서 직접 우리의 자연생태를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도시의 파괴되고 변질된 자연환경의 상처를 보듬고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도심 속의 환경교육 최근들어 '생태맹(生態盲 : ecological illiteracy)'이라는 용어가 널리 유포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올에 의해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이 용어는 '생태학적 지식의 결핍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나, '문맹'이나 '컴맹'이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와는 달리, 동식물에 대한 단순한 지식 결핍만을 의미하지 않고, '자연과 교감하고 자연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나 또는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감수성의 결핍'을 의미한다. 물질문명과 소비문화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은 생태맹의 문명이다. 자연생태 파괴와 자원 고갈이라는 인류 초유의 환경문제는 생태맹의 결과물이다. 과거 대자연 속에서 더불어 살았던 시대의 조상들은 생태맹이 없었으며, 따라서 환경문제도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구적 자연관으로 철저하게 무장되어진 생태맹들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결과인 인공적 환경을 당연시하고 있다. 그들은 집과 직장·학교, 컴퓨터, 탈 것, 입을 것... 등등 물질적인 것만 있으면 삶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들은 도시의 인공 환경을 당연시 여길 뿐만 아니라 자연과 화합하면서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 정서, 교감의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 그들은 나와 동식물을 별개의 관계로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꽃이 없어도, 나비가 없어도, 물고기와 새가 없어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것이다. 환경문제가 처음 대두되었을 때만 해도 환경교육의 주제는 '어떻게 하면 인류가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살 수 있을까'였다. 그 결과 실천덕목으로 등장한 것이 '쓰레기 줍기'나 '거리 청소' '환경미화' 등등 '인간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였다. 환경문제를 지구상에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공존'에 대해 눈뜨기 시작한 것은 근래의 일이다. 환경교육은 모든 생명체와 함께 살기 위한 교육이다. 당면한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푸는 데 교육은 생태맹 극복이 첫번째 관건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만물은 서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면서도 조화롭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깨닫는 방법은 오로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교육 밖에 없다. 환경교육은 자연이 가진 무궁한 가치와 진정한 의미를 가르쳐주는 데 있다. 환경교육은 피교육자들에게 도구적 자연관이 아니라 생명적 자연관을 가르쳐주는 데 있다.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사회는 인간중심적 자연관을 자연생태 중심적 자연관으로 바꾸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 따라서 환경교육의 덕목은 생태윤리에 있다. 환경교육은 세 가지 범주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교육, 둘째는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교육, 셋째는 학교와 지역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지역연대 교육이 그것이다. 최근 사회단체들의 환경교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고, 이러한 환경교육 활동의 일환으로 생태기행이 활발해지고 있다. 환경교육과 환경보전·감시의 방편으로서 시작된 생태기행은 위의 세 가지를 두루 감싸 안을 수 있는 복합적 체험교육이다. 생태기행은 학교의 환경교육을 보완하고 청소년들을 위한 현장체험학습을 강화해주며, 일반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평생교육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한편 그러한 교육의 결과로 지역사회 환경개선에도 한 몫을 할 수 있다. 청소년 자연교육은 통과의례처럼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교육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제도교육의 현실은 그릇된 입시위주 교육과 자연교육 정책의 부재, 일선 교육자들의 안일한 보신주의 등등의 요인으로 뒷전에 밀려나 있다. 그 결과, 학생과 시민들의 자연생태에 대한 인식수준은 매우 뒤떨어져 있다. 꽃 이름과 새 이름조차 열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자연사랑은 그들의 이름 불러주기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동식물을 교과서의 사진이나 그림을 통해서만 접해온 학생들이다. 도룡룡은 어디에 알을 낳고 무엇을 먹고 사는지 조차 모른다. 그들이 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자연이 왜 필요한 지 생각할 겨를을 도시인들은 갖지 못한다. 근래 들어와 서구의 환경해법이 난관에 부딪치고 있다. 모든 발전에 대한 물신주의적(物神主義的) 관점이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한동안 신앙처럼 믿어온 과학이 환경의 영원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래서 근래들어 동양에 대해 귀를 기울이는 서구 환경학자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환경교육에도 우리의 눈으로 환경을 보고 우리 정서에 맞는 환경운동과 교육을 하자는 생각이다. 민족정서에 충실한 환경교육이 아쉽다. 우리는 선조들의 초기 자연숭배의식과 자연관에 대해 학생들에게 진지하게 가르친 적이 없다. 선조들은 갖가지 민속, 풍속, 관습 등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예의, 자원의 남벌과 과도한 사용 자제, 생태계 유지 등등 에 힘써 왔다. 이를 후세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환경교육의 장은 향토이다. 근래들어 초등학교의 역사교육이 향토사교육으로 바뀐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생각은 우주적으로, 운동은 지역적으로'라는 명제가 있듯이 환경교육도 향토 환경교육이 아니면 안 된다. 서울을 흔히 '회색도시'라고 하지만, 아직은 곳곳에 자연의 가냘픈 목숨들이 살아있다. 그 살아있는 목숨에 눈길을 주는 것으로 환경교육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심의 자연을 되살리고 환경문제를 효율적으로 풀어나가자는 것이다. 향토기행이라고 해서 누구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환경교육은 전문교육이기 때문이다. 환경교육의 질은 지도자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학교의 일선교사가 곧바로 환경교사가 될 수는 없다. 따로 교육을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프로그램의 개발과 평가에 노력해야 한다. 향토기행이라고 해서 주제가 단순한 것은 결코 아니다. '북한산의 식생', '광릉수목원의 나무와 숲', '한강하구 생태', '과천 청계산과 응봉산의 나무들', '한강의 민물고기', '샛강의 수서곤충', '한강둔치의 귀화식물', '쓰레기산 난지도의 생태', '한강의 철새', '팔당호의 수질', '두물머리의 수생식물', '서울의 논', '도심공원의 곤충과 식생' 등등 생태기행은 주제가 다양하다. 생태기행, 밖으로 나가 자연을 만난다. 조선시대 한 문인의 글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환경문제에 있어서도 유효하다. 자연생태를 모르면 자연생태를 지켜갈 수 없다. 단순한 경각심이나 현안대응만으로는 효과가 없다. 시민과 학생들이 자연생태에 대한 탐구적 이해를 갖지 않으면 안 된다. 그동안 학교교육에서의 자연은 소풍이나 수학여행이나 또는 다른 목적의 야외학습 등등의 공간 기능만 해왔다. 자연을 학습대상으로 삼아 교사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교문을 나서는 일은 거의 없다. 이제 밖으로 나가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한 인성과 감성교육에 실효 있는 여행이다. 생태기행은 흡인력이 있는 환경교육이다. 환경교육은 참으로 어렵다. 교실이라고 하는 닫힌 공간과 입시와 이론 위주의 교육에 학생들은 이력이 나 있다. 사회 환경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쾌8적하고 편리한 장소 번듯하게 마련해놓고, 내노라 하는 강사 줄줄이 불러다놓고, 많은 돈 쏟어부어 홍보를 하고, 먹꺼리 볼꺼리 수북하게 쌓아놓아도 시민들은 제 발로 환경교육에 참가하지 않는다. 불참하면 불이익이 돌아가는 관련 공무원 또는 기업체 담당자들이나 겨우 자리를 지킬 뿐이다. 그러나, 생태기행은 교육의 장이 한없이 열린 대자연이라는 점에서 우선 학생들과 시민들이 즐거워한다.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현장실습과 같은 쌍방적인 환경교육이라는 점, 이론 중심이 아니라 탐사 형식을 빌린 현장체험 중심, 실생활과 쉽게 연관시킬 수 있는 소프트한 주제, 강제주입식 일방적인 교육이 아니라 자기개발식이라는 점에서 성취도가 높다. 생태계가 잘 보존된 지역 뿐만 아니라 환경이 파괴된 현장 등도 찾아가서 관심사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다. 자연교육이 가능한 수도권 생태기행 지역 1. 도봉산/ 식물, 곤충/ 도봉서원 입구에서 난향원 입구까지 2. 아차산/ 식물, 곤충/ 중곡동에서 망우리까지 산행 3. 남한산/ 식물. 조류/ 성남시 소재 4. 한강 둔치/ 귀화식물, 곤충/ 강서구 방화동 5. 한강변/ 겨울철새/ 중랑천에서 자유로까지 6. 제부도/ 갯벌생물/ 경기도 화성시 소재 7. 북한산/ 식물, 곤충/ 구파발 북한산성 계곡 8. 여의도/ 생태공원, 식물, 곤충/ 여의도 한바퀴 9. 서울의 논/ 농작물, 곤충, 어류/ 강서구와 김포 일대 10. 한강둔치/ 수서곤충과 식물, 어류/ 당정동과 미사리 11. 양재천/ 생태공원, 도시하천, 철새/ 양재천에서 탄천까지 12. 양수리/ 철새, 수서곤충과 식물/ 팔당댐과 양수리 일대 13 관악산/ 식물/ 서울대 캠퍼스에서 연주암까지 14. 창덕궁/ 궁원의 생태적 조경 15. 광릉/ 식물, 곤충, 물고기, 조류/ 퇴계원-왕숙천-광릉 일대 16. 북한산/ 식물, 곤충/ 정릉계곡 일대 17. 북한산/ 식물, 곤충/ 우이동 일대 18. 검단산/ 식물, 조류, 포유류/ 하남시 소대 19. 남산/ 식물, 산새/ 야외식물원 20. 청계산/ 식물, 곤충, 산새/ 원지동에서 청계사까지 21. 홍릉/ 수목원의 식물 22. 조종천/ 민물고기, 곤충, 야생화 23. 창경궁/ 궁원의 생태적 조경 24. 융건능/ 능원의 생태적 조경, 조류/ 강남 선정릉 포함, 수원 25. 길동/ 식물, 곤충, 양서류/ 생태공원 [발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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