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네는 죽어야 하는가?

목포에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는 산을 깎아서 집을 지었는데 그 산이 돌이 많은 석산 입니다. 석산은 이상하게도 습기가 참 많아요. 물이 많고 돌이 많고 그러니까 지네가 많습니다. 자다 보면 가끔 나와서 허벅지도 깨물고 어깨도 깨물고 그럽니다. 자다가 따끔하면 지네가 있는 거예요. 한번은 신경 줄을 건드렸는지 한 두어 시간 동안 온 몸이 전기 통하는 것같이 찌릿 찌릿 한 고통을 느끼곤 했습니다. 저를 문 놈은 요만한 놈인데 뭐 순간 작살났죠. 단번에 처서 죽여 버렸죠. 죽였지만 내 몸은 계속 찌릿 거리고 아팠어요. 그렇게 거기는 늘 지네가 비상입니다.

아무리 방비를 해도 어디로 들어오는지 방으로 들어옵니다. 장마철에는 정말 조심해야 돼요. 언제 이불 속에서 나올지 몰라요. 그래서 지네가 나오면 어떻게 하느냐. 거기 분들께 배운 방법은 이렇습니다. 우선 파리채로 때립니다. 너무 세게 때리면 터지니까 적당하게 때리면 기절을 합니다. 죽지는 않고요. 그럴 때 그 놈을 집게로 잡아서 유리병 속이나 페트병 속에 집어넣습니다. 그 안에서 정신을 차리면 말라죽거나 굶어 죽습니다. 이것이 댓마리가 되면 그걸 잘 말려서 허리 아픈 사람들에게 주기도 한답니다. 저도 이제 나타났다 하면 파리채로 잡아서 기절시켜 놓고 페트병에 넣고 … 하여튼 많이 죽였습니다.
제가 걸레질을 잘 안 하는 사람인데 그날 따라 걸레질을 하는데 볼펜 만한 큼직한 지네가 등장을 했죠. 기겁을 했죠. 나는 놀랐는데 이놈은 별로 안 놀래요. 슬슬 기어가지고 아주 천천히 바닥의 모서리에 들러붙는 겁니다. 제가 자동적으로 파리채를 찾아 때리려고 하는데 순간 이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이 참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 생각하는 것 보다 느낌이 빠르고 정확합니다. 생각을 따라 사는 것 보다 느낌을 따라 살면 좀 덜 속지요. 사람하고 이야기할 때도 말을 듣지 말고 어감을 들으면 비교적 안 속습니다. 어감은 말보다 비교적 거짓말을 덜 하니까요. 제 느낌에 확 때리려는 순간 그 지네가 나를 쓰윽 쳐다보는 것 같았어요. 쳐다보니까 내가 움찔할 수 밖에요. 대체적으로 딴전 필 때 때려야지 그 눈과 눈을 마주하면 못 때리는 거죠.
그런 느낌을 받으면서 이번에는 제가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건 소리를 들었다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들었냐고 궁금하시겠지만 그런 질문은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내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소리를 들었어요. 지네의 음성입니다. "왜 때려? 니가 날 왜 때리느냐?
니가 날 왜 죽이려고 하느냐"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야, 임마 넌 지네잖아" 그랬죠. 그런데 이렇게 상당히 긴 대화로 오고 가는데요, 이것이 시간으로 따지면 한 4, 5초밖에 안 걸린 겁니다. 순간적인 사고였죠. 그랬더니 그 지네가 하는 말이 "내가 지네이기 때문에 죽어야 되냐?" 내가 지네인 까닭에 죽어야 하냐 이거죠. 그래서 "그건 아니지만 내버려두면 넌 날 물을 것 아니냐?" 그랬습니다. "어, 그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죽인다는 거냐?" 이루어지지도 않은 가능성, 내가 널 물 수 있기 때문에는 아직 미래예요. 그러면서 "그러면 왜 너는 너를 안 죽이냐? 임마, 왜 내가 날 죽이냐? 니가 장차 무슨 못된 짓을 할 지 어떻게 알아? 니 몸 가지고 얼마나 기가 막힌 범죄를 저지를지 아무도 몰라. 그 가능성은 너한테도 있어. 내가 미래의 가능성 때문에 죽어야 한다면 너도 그런 가능성을 가진 존재니까 너도 죽어야 돼. 왜, 너는 안 죽이냐?" 그래서 "나는 절대 아무도 해코지 할 마음이 없어." 내가 그랬죠. 나는 그럴 가능성이 없다 이거죠.

이런 이야기는 하면 할수록 인간이 비참해지는 겁니다. 지네가 엄숙하게, 단호합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도 누구도 해코지 할 마음이 없다." 그래서 이걸 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걸 내버려 둘 수도 없고 난감하죠. "그렇지만 넌 지난번에 날 물었잖아?" 그랬더니 "난 널 문적 없어""너같은 지네가 물었단 말이야, 임마." "그러니까,나 같은 지네가 과거에 널 물었으니까, 그래서 내가 죽어야 한단 말이냐? 그러면 너는 왜 너를 안 죽이냐?" "내가 왜 날 죽이냐?"
"너같은 인간이 과거에 얼마나 못된 짓을 했냐? 사람만 무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숨통을 끊어버린 것이 얼마나 많냐? 너같은 인간이 한 못된 짓을 생각해 봐라. 그러면 너도 죽어야 되는 거 아니냐?" 제가 할말이 없죠. 참 난감했어요. 그냥 무지하게 죽일 순 없잖아요?
 그래서 "야, 니 말이 맞긴 맞는데 난 아무래도 니가 겁나. 니가 좀 나가 주었으면 좋겠다. 여긴 내 집이잖아?"  그랬더니 지네가 하는 말이 "누가 정했냐? 여기가 니집이라고." 누가 정했냐는 거예요.  "내가 정했다." 그러니까 지네가 하는 말이 "나도 여기가 내 집이다. 너희 인간들이 여기 와서 터를 잡고 집을 세우기 전에 오래 전부터 여긴 우리 땅이여, 우리가 대대로 물려 수백 대째 여기서 사는데 나중에 온 놈이 왜 이렇게 큰소리냔 말이야. 정말 임자를 따지려면은 그 사실부터 좀 생각하고 따져 봐라." 제가 논리적으로 완전히 졌습니다.
"도저히 나는 너하고 같은 방을 쓸 수가 없어. 니가 스스로 안 나간다면 내가 내버려야겠다." 그랬더니, "아 그건 니 맘대로 해. 니가 나를 강제할 수 없듯이 나도 너를 강제할 수 없어." 그래서 제가 걸레로 잘 쌌습니다.
맨 손으로 잡으면 물 것 아니에요? 잘 싸가지고 뒤꼍 풀 속에 가서 털어 주었죠. 한 두어 바퀴 돌더니 풀 속으로 싹 사라졌지요. 그게 제가 지네를 내 눈으로 보고 안 죽인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못 죽인 거죠. 다음날 비슷한 장소에 고만한 크기의 지네를 또 봤습니다. 이번에는 뭐 대화를 나누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어제처럼 그냥 바로 걸레에 싸가지고 던져 주는 순간, 이게 어제 그놈하고 부부였던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고 나서도 몇 번인가 지네를 발견했죠. 그럴 때마다 저는 그냥 걸레로 싸서 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사건 이후에 저와 식구들은 한 사람도 지네한테 안 물렸습니다. 어떻게 보면 지네하고 사이좋게 그런 대로 살다가 떠난다고 볼 수도 있죠. 몇 번 그러고 보니까 나중에는 제가 손으로 지네를 잡아서 밖에 놓을 수도 있겠다는 착각이 들더라구요. 흉물스럽고 겁나는 지네를 맨 손으로 이렇게 만질 수만 있다면 저로서는 꽤 괜찮은 삶을 연습해 왔다고 결론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좀 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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