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전망에서 성서읽기

가을걷이 절기가 하나님의 명절인 까닭

왕대일 / 감신대 교수                 

구약성서 오경에는 가을걷이에 대한 규정이 여러 번 수록되어 있다(출 23:14-17; 34:18-24; 레 23:9-22; 민 28:16-31; 신 16:1-17). 창세기를 뺀 오경의 나머지 책들에 가을걷이 이야기는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반복되는 구절마다 의미의 색깔은 약간씩 다르다. 그러나 그 모든 구절들은 다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이 들어가 살 때 지켜야 될 종교절기로 묘사되고 있다.

   가령 레위기 23:9-22의 규정을 들여다보자. 이 구절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야웨 하나님의 추수 이야기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대대로 지켜라”(14절, 21절)고 규정하신 추수 이야기이다. 좁게는 성결법전(레 17-26장)에, 넓게는 시내산 법령집(출 19:1-민 10:10)에 삽입되어 있다. 단순히 가을걷이만을 털어놓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이야기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반드시 지키라고 말씀하신, 그래야 이스라엘이 길이 길이 살게 될 것이라고 규정하신 하나님의 처방(prescription)속에 수록되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레위기 23:9-22의 앞뒤 맥락에서도 밝히 드러난다. 곧 안식일(레23:3-4), 유월절(레 23:4-8), 새해맞이(레 23:23-24), 속죄일(레 23:26-32), 초막절(레 23:33-36)에 관한 규정 사이에 햇곡식을 바치는 절기(레 23:9-14)와 추수절기(레 23:15-22)에 관한 가르침이 들어가 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먹거리를 거두어들이는 일은 야웨 하나님이 명절로 정한 절기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곧, 이스라엘 사회에서 절기란 사람들이 즐기는 축제이기 이전에 먼저 야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명절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야하는,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 드려야하는 절기인 것이다.

   이스라엘의 추수 이야기가 야웨 하나님의 명절로 명시되어 있다는 것은 추수 이야기가 단순히 인간들의 세상살이가 아님을 암시한다. 추수란 세속적인 절기가 아닌 거룩한 절기, 곧 거룩한 사건이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절기요, 하나님의 때에 관한 이야기이다. 땅에서 나는 곡물을 수확하는 행위를, 그래서 사람들이 하는 짓거리를, 하나님의 때로 규정해 놓고 있다는 것은 구약성서의 추수 이야기가 하나님의 세상 다스리심과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런 점에서 레위기 23장의 전체 서론을 다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라.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일러라. 너희가 거룩한 모임을 열어야 할 주의 절기들, 곧 내가 정한 절기들은 다음과 같다.(레 23:1-2).

추수절기란 때(occasion)에 관한 가르침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추수 이야기는 어떤 때에 관한 이야기로 머물지 않는다. 그것이 본래 하나님의 땅에 관한 이야기인 까닭이다(레 23:10). 이스라엘의 추수 이야기는 초실절, 곧 햇곡식을 거두는 때에 관한 규정으로 출발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추수 때의 이야기가 땅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되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추수 이야기가 시간과 관련된 이야기로 그치지 않고, 땅의 이야기로 채색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추수절기는 야웨가 이스라엘에게 들어가 살라고 주신 땅에 들어가 살 때의 일로 규정되어 있다. 단순히 곡물을 거두어드리는 절기가 아니다. 먹거리를 수확, 저장하기 위한 절기가 아니다. 추수절기 이야기가 땅에 관한 가르침 속에 들어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로 이스라엘이 되게 하기 위한 어떤 제도적 장치가 그 속에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레위기 23:10의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이란 표현이 그것을 분명하게 한다.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의 땅이 아닌, 하나님의 땅이라고 부르고 있음에 주목하자. 추수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이 주신 땅에 들어가 살 때 감당해야 될 인간의 책임을 규정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땅이란 단순한 물질이나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야웨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 결코 인간들이 노력해서 차지하는 부동산이 아니다. 땅은 야웨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 땅에서 인간은 언제나 나그네요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레 25:23). 이스라엘의 추수 이야기는 하나님의 땅에서 생긴 일이다. 이것은 곧 추수란, 적어도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추수란, 무엇을 거둔다는 수확이기 전에 먼저, 또는 자연의 생산력이 얼마나 알찬 것인지를 드러내는 이야기이기 전에,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관리한다는 청지기 차원의 이야기임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그 땅에 들어가 추수를 하게 되거든, 하나님께 첫 곡식단을 드리기 전까지 이스라엘은 그 어떤 것이라도 먹을 수가 없다는 가르침으로 이어진다(레 23:10-14).

이스라엘의 추수절기는 땅의 소유주가 누구인지를 인정케 하는 사건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땅에서 얻는 것을 은총으로, 하나님의 선물로 인식케 하는 이야기이다. 땅 주인이신 하나님으로 땅이 내는 소산물의 주인이심을 고백케 하는 행위이다. 거기에 이스라엘의 가을걷이 이야기가 드러내는 아름다움이 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레위기 23장 본문을 더 깊이 들어다보면 더 밝히 알게 된다. 레위기 23장에서 이스라엘의 추수 이야기는 세 가지 본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는 "날을 세는" 행위이고(15-16절), 두 번째는 곡식 예물을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이며(17-20절), 세 번째는  거룩한 모임을 선포하는 행위(21절)이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의 추수절기가 "오십일을 세는" 절기로 표현되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레위기 23:15-22는 "칠칠절" 규례라고 불린다. "칠칠"이란 숫자는 보리의 첫번 수확에서 시작해서 밀 추수가 끝나는 곡식거두기의 전기간 - 대략 7주간이 걸린다 - 을 지칭하는 숫자이다. "49일을 세라"는 말은, 그리고 "50일이 되는 날 새로운 곡식예물을 야웨 하나님께 바쳐라"는 규정(15-16절)은, 추수하는 전기간 동안 야웨 하나님이 비와 거름과 풍성한 수확의 근원이심을 기억하고 세는 기간임을 드러낸다. 그러한 셈의 클라이막스가 야웨 하나님께 드리는 거대한 제사요(17-20절), 거룩한 모임의 선포이다(21절). 그런 점에서 이 절기는 "칠칠절"이 아니라 "추수절기" 규례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스라엘의 가을걷이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서 절정에 달한다(레 23:11-13, 17-21). 이 때의 예배란 땅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그 땅이 낸 소출을 되돌려 드림을 상징한다. 그런 까닭에 본문의 분위기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공동식사로서의 예배이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제단 앞에서 모두(제사장, 백성, 하나님)가 함께 먹는 친교에 이 예배의 초점이 있다. 사실, 구약에서 말하는 축제절기란 이스라엘의 삼대 순례절기인 유월절, 칠칠절(추수절), 그리고 초막절을 일컫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때의 절기가 순례절기, 곧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손에 나뭇가지를 들고 제단까지 춤을 추며 행진하는" 축제라는 점이다(시 118:27). 이런 순례 절기의 클라이막스가 바로 축제적 성격의 제사(festival sacrifice)이며, 이 제사의 초점이 곧 공동의 친교(communal meal)이다. 제단 앞에서 갖는 하나님과 백성사이의 친교이다.

추수 때 곡식을 거둔 사람들이 제단 앞에서 드리는 모든 봉헌과 예배란 단순히 하나님께 내는 의무적인 세금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었던 언약을 새롭게 갱신하는 축제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언약의 끈으로 다시 묶는 축제이다. 이스라엘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되게 하는 축제이다. 이때 이스라엘만 언약의 조건 속에 묶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언약의 당사자로서 그 언약의 조건 속에 같이 묶이신다. 땅의 소산물을 거두어 그 주인에게 되돌려 드린다는 상징에서 야웨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 갱신된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가을걷이란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땅과 더불어 살게 하는 의도를 지닌 말씀이다(본회 20주년 기념도서로 발간한 '녹색의 눈으로 읽는 성서'에서 옮겨왔습니다)

 녹색크리스챤의 필독서

"녹색의 눈으로 읽는 성서"

'환경', '생명'을 성서해석의 지렛대로 활용하여 성서를 새롭게 바라봅니다. 창조신앙이 하나님의 생태학이라면, 이러한 노력은 성서적 신앙의 본래적 맥을 짚어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엮음, 대한기독교서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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