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속의 식물 (13)

뽕나무
최영전

성경이 우리말로 번역될 때, 오역된 것 중 뽕나무도 그 하나다. 뽕나무라 하면, 우리는 흔히 뽕잎으로 누에를 쳐서 명주실을 얻는 중국이나 우리나라 원산인 낙엽수인 뽕나무를 생각하게 되며, 누구나 달고 새까만 '오디'를 따먹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낯익은 나무로 알고 있다.

그러나 눅 19:4에 키작은 삭개오가 올라간 뽕나무나, 암 7:14에 아모스가 예언자로 부름받기 전 자기 직업을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라고 한 그 뽕나무는 그와 전혀 다른 식물이다.

여기서 말한 뽕나무는 팔레스틴과 수리아 등의 동부 아프리카에 자생하는 상록교목인 돌무화과이다. 잎과 수피는 뽕나무를 닮았으나, 열매는 오히려 무화과를 닮았으므로 '돌'무화과라고 한다. 공동번역에는 올바로 돌무화과로 번역되어 있다.

시 78:47에 하나님이 애굽에 재앙을 내리셨던, 즉 '저의 뽕나무를 서리로 죽이셨으며' 한 것은, 이 나무가 그들의 중요한 식량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열대식물이어서 추위에 약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또 왕상 10:27과 대하 1:15에 보면,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서, 돌무화과가 가나안이나 여리고에 아주 흔한 나무였음을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대하 27:28에, 다윗왕이 평야으 감람나무와 뽕나무를 맡아서 감독하게 한 것으로 짐작해 볼 때, 중요한 식량자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팔레스틴에도 누에를 치는 뽕나무가 들어가 있다.

여기서는 돌무화나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 나무는 높이가 10~13m씩 자라는 상록수이다. 줄기 밑둥의 둘레가 7m나 되며, 사방으로 무성하게 넓게 퍼진 수관이 지름 40m에 이를 만큼 큰나무로 자란다. 흔히 길가에 심어서 좋은 그늘을 만들어주는 녹음수이면서 열매를 식량으로 삼는 과수였다. 가지는 밑쪽 낮은 데서부터 퍼져 있으므로, 키작은 삭개오가 쉽게 올라갈 수 있었던 듯하다.

잎은 타원형-하트형으로 앞면은 매끄럽고 뒷면은 털이 있으며 향기가 있다. 꽃은 무화과처럼 열매 속에 있어서 볼 수 없는 은두(隱頭) 꽃차례이다. 열매는 무화과를 닮았으나 더 작고, 이삭져 열리므로 숫자는 훨씬 많다. 또 나무의 여러 곳에서 열리는데 어린가지나 묵은가지, 심지어는 굵은 줄기에서도 달리고 1년에 여러 번이나 열매를 맺는다. 맛은 무화과만은 못하지만, 단맛이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식량이 될 만했다.

이 열매는 고대 애굽인들에게나 유대인들에게 귀중한 식량이었으며, 지금도 카이로에서는 길가에서 행상들이 팔고 있을 정도로 그들에게는 귀중한 식품이다.

돌무화과의 열매도 무화과처럼 등애(곤충)에 의해 수분되어 맺혀서 익는다. 그러므로 충영(蟲 )으로 변하는 벌레먹는 열매를 방지하기 위하여, 옛날의 유대인들은 무화과나 돌무화과가 덜익은 열매일 때, 열매 중앙부의 일부를 손톱이나 예리한 칼로 깍아내던가 구멍을 내었다. 이는, 다 자란 벌레(등애)가 씨방에 알을 낳기 전에 이 구멍을 통하여 밖으로 도망가게 하는 작업을 했던 것이다. 아모스가 '돌무화과를 배양하던 자'라고 한 것은, 이 작업에 종사하던 사람이란 뜻이다. 이 방법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 애굽이나 카프리 등지에서 쓰이고 있다.

돌무화과는 잎이나 나무에 상처를 내면 흰 즙이 나온다. 이것은 무화과나무와 공통된 성질이지만, 잎과 열매로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목재(줄기)는 우리나라 오동나무처럼 연하고 가벼우며 가공이 쉽다. 얼핏 보아서는 스폰지처럼 다공질이면서도 젖음과 썩음에 견디는 힘이 있어서, 고대 애굽인들은 미이라의 관을 만드는 데 사용했다. 또 가구, 문짝, 상자 등으로 널리 쓰였으며, 가벼워서 천장재(天井材)로도 이용했다.

수명이 긴 나무이기도 하다. 이것을 입증하는 전설로, 카이로 근처의 마타리아에는 돌무화과의 노목이 한 그루 있다. 이 나무는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헤롯와의 박해를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을 때, 성가족이 이 나무 그늘에서 쉼을 얻고는 원기를 회복했다 하여 성스러운 나무로 전해온다는 것이다.

사막에서는 그늘이 어느 자원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곳의 유목민은 그늘을 위해, 또는 식량을 얻기 위해, 지표식물로서 돌무화과를 즐겨 심었다 한다. 그리고 신성하게 여겨, 고대 애굽에서는 생명의 나무로 받들기도 했다. 즉 다산과 풍요를 주는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무화나무 밑에 과일, 곡식, 채소, 꽃, 물 등을 바치고서 빌었다고 한다. 이것은 우상숭배의 의식이었으므로, 유대인 예언자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돌무화과나무는 주로 계곡이나 낮은 지대의 평지에서 더위나 건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잘 자라지만, 산악지대의 추운기후에는 견디지 못한다(출처 : 최영전의 '성서의식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