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며 생 각 하 며 이사하면서 싹 바꿨어요 문선경 / 권사, 창천교회, 본회 이사 얼마 전 우리 이웃집은 새로 지은 빌라로 평수를 늘려서 이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를 집들이에 초대했다. 저녁식사 후 그 집주인은 우리에게 새 집 구경을 시켜준다며 안방으로 안내했다. 안방에는 새로 산 고급 장롱과 화장대, 침대, 침구, 커튼이 있었는데 여느 신혼부부의 방보다 훨씬 화려해 보였다. 주인은 넓은 거실에 있는 대형 TV와 오디오 등 모든 가전제품이 첨단기능이라며 기술과 편리함을 설명하기에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었다. "새 집에 이사오면서 전에 쓰던 살림살이는 미련 없이 싹 버리고, 모든 걸 새 것으로 바꿨어요. 사람만 헌 사람이지 모든 것이 새것이에요." 자랑 끝에 겸연쩍게 웃었다. 난 이것저것 새로 산 살림살이 자랑이 늘어질 때마다 속으로 '그 많은 게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또 어떻게 처리되었을까?' 하고 궁금해서 집 구경의 재미보단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런 생각도 해보았다. 집주인이 '내가 버린 살림살이들이 많은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건 아닐까?' 하고 한번쯤이라도 생각했다면 모든 걸 버리고 새 살림살이를 장만하진 않았을 테고, 새 살림살이가 자랑거리이기보단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이웃에 피해를 주는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 민망해 할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이사를 자주 한다. 이 집뿐만 아니라 이사하는 집들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하면서 그 동안 쓰던 멀쩡한 가구나 가전제품들을 버리고 새 살림살이를 들여놓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의 사치스러운 집 꾸미기 방식은 쓰레기를 양산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원을 낭비하니 국가적 손실이요, 이 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서울시 1년 4천 5백 억원, 전국 1조 8천 억원)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여기서 발생되는 환경오염 문제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데 더 문제가 심각하다. 게다가 요즈음 이런 대형 쓰레기들은 동네 후미진 곳이나 아파트 뒷골목에 마구 버려진다. 침대 매트리스, 소파, 가구, 냉장고 등이 볼쌍 사나운 모습을 하고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게다가 어떤 양심 없는 사람은 새 물건을 사면서 아파트의 이용하지 않는 계단에 이런 가구 쓰레기를 방치해 며칠씩 '임자를 찾는다'라는 꼬리표가 붙어있게 만든다. 이런 것을 볼 때면 이웃은 생각 안하고 '나만 좋으면 되지'하는 그들의 이기심에 심사가 뒤틀리기까지 한다. 우리가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는 잘 아는 것과 같이 매립과 소각, 두 가지가 있다. 서울은 난지도 쓰레기장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1992년 김포 매립지(627만평)로 옮겼다. 25년이면 그 수명을 다한다니 다시 또 쓰레기 매립지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상식 선에서 누구나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또 문제는 쓰레기 매립지 땅만 구하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쓰레기 매립지에서 발생되는 악취, 유독가스, 병원체 오염, 침출수문제는 지역주민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삶의 질을 저하시킬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면 쉽게 그 쓰레기를 '소각장에서 태우면 될 것 아니냐?'하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소각은 더 문제다. 소각할 때 '다이옥신'이 발생하는데, 이는 귀지보다 적은 양으로도 수만명을 암으로 죽일 수 있는 독성이 강한 물질이다. 또 태워도 20% 정도가 재로 남아 쓰레기장에 버려지는데, 이 물질도 독성이 강해 물과 땅을 더럽혀 채소, 가축을 오염시키고 결국은 인간의 생명을 병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헌 살림살이를 버리고 새 것을 장만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새 살림살이를 장만하면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조금만 생각한다면 '새 것으로 싹 바꾸는 일'은 좀 더 신중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먼저 '싹 바꾸기 전'에 '신제품을 사는 것이 꼭 필요한가? 내가 버릴 물건은 재활용해서 쓸 사람이 있는가? 이 쓰레기를 버렸을 때 얼마나 많은 환경오염이 발생할까?'를 먼저 생각해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옛날엔 자기가 쓰던 물건을 쉽게 버리지 않았다. '궁핍의 시대'였기도 했겠지만 가구 등 살림살이를 가족이나 자식처럼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롱, 반닫이, 뒤주 등을 항상 먼지 털고 걸레질하여 세월의 '분치장'으로 나뭇결이 살아나고, 옻칠이 자연스런 '신비의 비색'을 발하여 가구만 보고도 주인의 알뜰함과 부지런함까지 엿보이게 하며, 자연스레 대물림하여 가정의 보물로 전해지지 않았던가? 이런 생활들은 자연스럽게 자원을 아끼고, 쓰레기를 줄여 환경오염을 줄이고, 사람을 살리는 '살림의 문화'를 이루는 지혜로운 삶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얼마 전 결혼 인사차 우리집을 방문한 조카 사위는 "큰 어머니 집을 보니 상당히 알뜰하신가 봐요. 이 책상을 보니 제가 어렸을 때 쓰던 책상인데 아직도 쓰시고 계시니 이런 것 아직 있는 집 첨 봤어요."라고 한다. 옆에 있던 남편은 흐뭇한 미소를 나에게 보낸다. 이렇게도 나에겐 자랑스런 옛것들이 있다. 결혼 할 때 마련해온 호마이카 장롱, 아들이 중학교 때 쓰던 만화영화 스티커가 다닥다닥 붙은 책상, 이런 가구도 있었나 싶은 서랍장, 나와 오랜 세월을 같이 한 물건들이다. 나도 주변에서 '장롱 좀 바꿔'라는 소리를 귀가 아프게 들었다. 그러나 이것들을 쓰레기장에 버린다면 '호마이카 칠이 타는 독한 냄새를 누가 맡을까?' 하는 생각이 나 선뜻 바꿀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중에 영화 제작사에 기증해 옛날 이야기를 영화로 찍을 때 쓰게 해야지." 말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이것 외에도 나에게는 쓰레기에서 장만한 살림살이가 더러 있다. 의자, 서랍장, 전기난로, 찜솥 심지어 행주까지(어린아이 속옷 버린 것) 주어다 쓰곤 한다. 난 환경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새 계명을 묵상한다. "우리가 살림살이를 아끼고 유행따라 바꾸지않고 오래 써 쓰레기를 덜 버리면 하나님의 동산을 지키는 것이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환경오염을 줄여 모든 사람의 삶의 질을 높이니 이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