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인간의 아름다운 만남

숲리 주는 감수성
김기원/국민대 교수,교회녹화위원

세상에서 가장 몸집이 큰 것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생물은? 답은 거의 나무와 관련이 있다.

단일 생명체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몸집을 가진 것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세쿼이아 국립공원에 있는 삼나무로서 나이는 약 3천년이며 키가 84m나 되고 지름은 11m, 둘레는 31m나 된다. 껍질 두께만도 61cm나 된다. 뿌리를 포함한 무게는 무려 약 2천톤이며, 약 50억개의 성냥개비를 만들 수 있는 부피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키가 제일 큰 것도 역시 나무이다. 역사적으로 알려진 키가 가장 컸던 나무는 1885년 호주의 바우바우산에 있던 유칼리나무로서 143m 였다고 한다. 현재 살아있는 나무로서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의 삼나무이며 약 111m 정도이다.

제일 오래 산 것은 무엇일까. 캘리포니아에 있는 붉은 해안나무라 불리우는 에온나무는 1977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지는데 약 6천2백년을 살았으며 당시의 키는 76m 정도였다고 한다. 평면적이 가장 넓은 나무는 인도의 캘커타 식물관에 있는 반얀나무이다. 이 나무의 나이는 약 210년인데 1만2천㎡의 땅을 덮고 있다. 한편, 가장 넓은 숲은 북위 55도에서부터 북극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거대한 산림지대인데 면적은 11억ha에 달한다. 아마존 밀림은 약 3억 3천ha에 이른다.

이밖에 둘레가 가장 긴 나무는 약 58m의 길이를 가지고 있는 유럽밤나무로서 이탈리아 에트나산에 있다.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는 열대우림에 있는 나무로서 13개월 동안 약 10.7m(1년에 약 82cm)를 자랐는데, 이 나무는 말레지아에 있는 팔커타라는 나무이다. 가장 더디게 자라는 멕시코의 디운 에듈이란 나무는 연평균 0.76mm를 자라는데 10cm를 자라려면 130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지구상에서 최고 최대의 것들이 모두 나무이며 숲은 그것들로 이뤄진 집합체이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보는 숲은 언제부터 존재하였을까? 바다의 식물들이 육지로 상륙하고 땅에 적응한 식물들이 나무로 무리를 지어 숲의 형태를 이루게 되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흘렀다.

지질학적 연대에서는 약 4억 3천만년 전의 일이었으며 창조사역에 나타난 숲의 모습은 제 3일째이다. 성경에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면서 에덴 동산에 살게 하였다. 왜 동산에 살게 하였는가? 동산은 숲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그가 세상 것 중에서 먼저 만드신 무한한 궁창도 아니고, 저 깊고 푸른 바다도 아니고, 강도 아니고, 저 끝없이 드넓은 들판도 아닌 동산, 숲에 살도록 하셨을까?

한 줌의 흙 속에는 많게는 수 억 마리의 박테리아가 들어있고 또 크고 작은 소동물들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살아가면서 흙 속의 유기체와 무기체를 분해하게 되면 그 결과, 땅 속에 뿌리를 박고 사는 풀들과 나무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영양물질을 잘 흡수하여 1년, 10년, 100년, 수백년, 수천년을 견디며 때로는 수만년, 수천만년, 수억년을 이어 내려오면서 울창하고도 거대한 숲을 이루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처럼 숲은 세상에서 가장 많은 생명들로 이루어진 완벽한 생명 집합체요, 가장 큰 유기체이다. 또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데 완벽한 삶의 공간이자, 생명 삶의 알파요 오메가이다. 또한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식물들이 구비되어 있는 곳이다. 숲은 창조주의 위대하고도 심오한 인간의 삶에 대한 지혜와 철학이 숨쉬는 곳이다.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숲에서 살라고 하신 것이다.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에덴동산 숲은 인간의 모든 행복과 질곡의 요람이었다. 인간은 그 숲으로부터 삶의 기쁨을 맛보았고 그 숲으로부터 삶의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 인간은 값없이 받은 엄청난 은혜를 소홀히 여기고, 세상의 유혹과 인간의 판단에 의지해서, 영원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멸망의 길로 쫓겨나 버렸다.

다시 숲을 보자. 아직도 숲은 아름답다. 숲의 생동성 때문이다. 나뭇잎이 떨어진 늦가을부터 숲은 동면의 세계로 들어간다. 북풍으로 살을 에이는 혹한에도 숲은 죽은 듯이 고요하지만 살아 숨쉬고 있다. 이윽고 봄이 되면, 지난 가을에 떨어진 씨앗도, 가녀린 일년생 어린 나무도, 100살이 넘은 고목도 어김없이 새 생명의 눈을 뜬다. 가장 혹독한 추위를 당했을 천년이 넘은 은행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 끝에 달린 정수리 눈도 얼어죽지 않고 당당히 생명의 잎을 내보인다. 엄동설한을 이겨내고 피우는 잎과 꽃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가슴은 금방 거룩함과 신기함과 아름다운 감동으로 고동친다.

숲의 아름다움은 연출성에도 있다. 일 년 네 계절동안 나무는 자기 생명을 바쳐 온 몸으로 다양한 각색을 통하여 자신을 연출한다. 때로는 벌거벗은 몸으로, 때로는 연둣빛 적삼으로, 신록과 색동옷으로, 그리고 때로는 하얀 소복차림으로 숲에 등장하곤 한다.

또한 숲은 수억년, 수백만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숲은 자신의 본래의 모습을 많이 잃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우리의 곁에 있다. 장구한 영겁의 세월 속에서 찰나에 불과한 인간의 역사를 비웃으며 끈질긴 생명의 영속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 숲이다.

또한 열매, 향기, (새)소리, 아름다운 풍경, 신선한 바람과 물로 우리의 오감을 한꺼번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곳은 숲 이외에는 어느 곳도 없다. 오감의 만족으로 정신적인 아름다운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예술미보다도 더욱 미적인 감흥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숲이다. 한 그루 한 그루의 나무는 자연의 예술품이며, 숲은 그들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로 정갈하게 진열되어 있는 산 박물관이다.

숲은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독특한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 숲의 빛(색), 향기, 소리, 공기 등이 그것이다. 숲 속에 들어서면 내 몸에 있는 모든 감각기관이 안테나를 뽑아 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형형색색, 식물이 나타내는 수천 수만 가지의 빛깔, 나무와 잎과 꽃이 보여주는 절묘하고 기묘한 오만가지 모양새들. 새, 바람소리, 물소리, 자연의 소리. 코를 마비시키고 정신을 황홀케 하는 숲의 향기. 쓴 맛, 단 맛, 신 맛, 짠 맛 등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모든 입맛을 제공하는 갖가지 열매와 산나물. 숲 속의 시원한 공기, 계곡 물에서 느끼는 기분. 이러한 무궁 무진하고 변화 무쌍한 숲의 세계가 눈을 통해서, 귓가로, 혀끝에서, 코끝으로, 또 손끝에 전달되어 미로의 신경조직을 타고 뇌 속에 전달되는 쾌감을 느껴보아야 한다. 그것이 숲을 찾는 묘미가 되지 않을까?(지난해 열린 '생태감수성 회복을 위한 강좌'에서 하신 말씀 중 일부로 책자로 발간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