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마당/ 생태학적 신학자들 - 17

생태학적 성서해석의 길을 닦은 성서신학자
클라우스 베스터만(C. Westermann)

이정배 / 부설연구소 소장, 감신대 교수

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세계기독교 신학계가 생태학이란 학문을 자신의 주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던 것은 1975년 나이로비에서 열린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모임에서부터였다. 이미 60년대부터 로마클럽에 의한 비관적 미래 전망이 있었지만 다소 늦게 신학계는 그 현실과 조우했던 것이다. 당시 나이로비대회에서 생태학적 윤리, 환경신학 그리고 과학과 종교간의 대화의 주제들을 다룰 수 있게 된 데에는 베스터만의 창세기주석서의 신선한 내용 때문이었다.

베스터만은 구속사를 신학의 핵심주제로 삼은 폰 라드(Von Rad)의 제자이다. 스승 폰라드는 구약성서 전반을 구속사의 시각에서 체계화하였으나 그 스스로 시편, 잠언 등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자연 경험과 구속사가 서로 일치될 수 없는 것임을 통찰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점을 붙들고 베스터만은 자신의 논지를 발전시켜 나갔는데 그는 지혜서 등에 나타나는 자연경험을 역사서와 별개의, 그보다 앞선 근본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1972년 쓰여진 그의 대저 '창세기주석서(Genesis 1-11)'가 생태학적 성서해석의 길잡이가 되었던 것이다. 이에 앞서 3권으로 된 자신의 주석서의 신학내용을 소책자로 1971년 출판한 것이 있는데 '창조(Sch pfung)'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되어 읽히고 있는 중이다.

그의 창세기주석서를 보면 지금까지 신학과 교회가 지나치게 이스라엘 민족 중심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창조를 이해했던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에 의하면 창세기 1장으로부터 11장에 이르는 창조본문은 이스라엘 민족의 구속신앙으로부터 비롯한 것이 아니라 그 고백에 앞서 있는 것으로서 모든 민족들에게 공통된 보편적인 우주사적인 것으로서 근본 사건, 원 사건으로 이해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근본사건으로서의 창조, 삶이 있고 죽음, 생성, 소멸, 타락 그리고 구원 등의 내용이 담겨있는 창세기 본문은 유대 민족의 점유물이 아니라 지구상의 상이한 문화 범주들 속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일종의 탄생신화(Geburts-mytus)와 같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로써 베스터만은 자연이란 인간 삶의 근거로서 그것이 없으면 구원 사건 자체도 성립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종래의 구속사 입장과는 전도된 의견인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창세기 1장 26절의 하느님 형상(Imago Dei)에 대한 해석을 종래와는 전혀 다르게 시도한다. 구약성서 전반에 걸쳐 하느님의 구원 행위 만큼이나 중요하게 부각되는 축복행위의 빛에서 하느님 형상을 역동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구원행위가 유일회적이고 반복불가능한 특성을 지녔다면 그 분의 세계를 향한 축복행위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동적인 성질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느님 형상이란 신(神)께서 당신이 지은 피조물들에 대해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축복하는 그 행위에 상응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이는 곧 피조물들에 대한 하느님의 반복된 축복행위가 자연과의 사귐에 있어서 인간이 늘 책임적이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자연에 대한 책임성은 하느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원 경험이 되며, 이런 경험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그 분의 모상이라고 불리울 수 있게 된다.

이상과 같이 창조사건을 구속사보다 우선 시킴으로서 자연의 독자성을 확보하였으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개념의 빛에서 하느님 형상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성서신학자 베스터만은 기독교신학이 자연을 자신의 주제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았던 것이다. 특히 원 경험으로서의 창조사건은 최근 자연과학과의 대화를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의미로 부각되고 있으며 생태신학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도 크나큰 공헌이 되고 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