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물

                도종환

    맑은 물은 있는 그대로를 되비쳐 준다
     만산에 꽃이 피는 날 산의 모습은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보여 주고

     잎 하나 남지 않고 모조리 산을 등지는 가을날은
     쓸쓸한 모습 그대로를 보여 준다

     푸른 잎들이 다시 돌아오는 날은
    돌아오는 모습 그대로

     새들이 떠나는 날은
     떠나는 모습 그대로

     더 화려하지도 않게 더 쓸쓸하지도 않게 보여 준다
     더 많이 들뜨지 않고 구태여 더 미워하지도 않는다

     당신도 그런 맑은 물 고이는 날 있었는가
    가을 오고 겨울 가는 수많은 밤이 간 뒤
     오히려 더욱 맑게 고이는
    그대 모습 만나지 않았는가

  *도종환 / 시집 '접시꽃 당신','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진다'와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