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작물 이야기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쌀로 배를 채운다는 걸 상상도 못하던 시절, 굶주린 배를 보리밥으로 겨우 채웠다. 그래서 보리는 어려웠던 시절 서민의 애환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이대로라면 밀처럼 자취를 감출 날이 머지 않았다. 밀, 벼, 옥수수에 이어 엄연히 세계 4대 작물인데 말이다.

봄 들녘을 가장 먼저 물들이는 게 보리다. 봄 기운에 잔뜩 부푼 가슴을 싸안고 보리밭 사잇길을 걷는다. 삭막하기만 했던 들판이 파래지면서 생기가 되살아난다. 보기만 해도 마구 뒹굴고 싶은 자운영밭은 누군가 방금 전 불을 붙인 듯하다. 자운영은 대표적인 녹비작물로 꽃이 피면 제주도 유채밭보다 화사하다. 보리처럼 가을에 씨를 뿌리면 월동을 해 이듬해 봄이면 어린애 무릎 높이로 자라 붉은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

늦어도 11월 초까지는 씨뿌리기를 마쳐야 한다. 벼를 베어 낸 논에 대충대충 뿌림골을 켠다. 씨뿌리기가 너무 늦으면 겨울 넘기기가 어렵다. 본잎이 서너 장인 상태로 겨울을 넘기는 게 가장 좋다. 이보다 어리거나 웃자라면 겨울에 한해(寒害)를 입는다. 명이 질겨 겨울을 넘기는 작물이라지만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재배가 곤란하다.

쟁기로 뿌림골을 켜고 씨를 줄뿌림하든지 배수가 문제되는 논은 서너 자 폭 두둑을 만들고 그 위에 흩뿌림하면 된다. 퇴비로 이불을 덮으면 아무래도 겨울 넘기기가 쉽고 거름도 된다. 씨뿌림하고 나면 흙을 덮고 보리띠도 깬다.

'보리띠'는 보리를 씨뿌리고 나서 주위에 돌출되어 있는 거친 흙덩이나 벼의 그루터기를 말한다. 보리띠를 때려 깨뜨리는 자루가 긴 나무 망치를 곰방메라 한다. 보리띠를 깨고 나면 한동안 보리밭으로 가는 발길이 뜸해지며 이듬해 초봄까지 농한기에 들어간다.

해동하는 것 같다하면 보리가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들녘 색깔이 차츰 달라진다. 쥐꼬리만큼 남은 겨울이 땅을 얼었다 녹였다 한다. 아침에 보리밭에 나가 보면 껍질 흙이 얼어 수북하게 부풀어 올라 있다. 이걸 서릿발이라 하는데 부풀어오를 때 보리 뿌리가 끊어지고 그대로 두면 보리가 말라죽는다. 이 때쯤이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보리밭에 나가 부풀어오른 흙을 발로 밟아 가라앉힌다. 밟아주면 고르게 자라고 포기가 많이 나온다. 보리 밟기가 끝나고 두어 번 김매기를 하면 사람 손길 없이 저절로 자란다. 농약은 뿌릴 필요가 없다. 벼에 비하면 무공해작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들이 너도나도 보리피리를 만들어 불기 시작하면 보리가 익어간다는 신호다. 6월 중순부터 보리베기가 시작된다. 타작은 구동 탈곡기로 하고 까락도 없어 재미나지만 보리 타작은 도리깨로 두들겨야 한다. 수확 전 사나흘 정도 비가 오면 그 해 보리 농사는 낭패다. 익은 보리는 귀가 얼마나 여린지 며칠 비가 내리면 금세 싹이 튼다. 이러면 헛농사가 되는 거다.

아이와 노인이 굼뜬 걸음으로 보리를 거둔 논밭을 거닌다. 하나같이 자루를 하나씩 들고 있다. 보리 이삭을 줍는거다. 어른들은 식량에 보태고 아이들은 용돈을 벌었다. 더러는 반 전체가 이삭줍기 운동을 펴 수학여행 경비에 보태기도 했다. 보리 타작이 끝난 논이 불길에 휩싸인다. 보릿대 태우는 연기가 온 들녘을 뒤덮는다. 연기가 태양을 삼킬 정도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였는지 보릿대를 귀찮아했다. 보릿대에 인분을 뿌려가며 켜켜이 쌓아두면 질 좋은 퇴비가 되는데, 귀찮다며 그냥 태워버린다. 퇴비를 만들어 논밭을 살찌워야 할텐데.

봄볕으로 보리가 파래지기 시작하면 곡식 뒤주는 바닥을 드러낸다. 보리가 누렇게 익는 철인 보리누름은 아직 멀었는데 어쩌나. 파릇파릇 돋는 보리를 한 소쿠리 뜯어다 죽에 넣어 함께 끓이고 나물을 만들어 배를 채운다. 봄부터 보리누름까지는 배를 쫄쫄 곯는다. 이 시기를 넘기기가 얼마나 힘든지 얼굴에 부황기가 들 정도였다. 굶기를 부잣집 밥먹듯하던 이 때를 보릿고개라 했다.

보리쌀은 거칠어 물이 잘 스며들지 않아 익는 데 오래 걸리므로 하루 세끼분 보리쌀을 미리 삶아 두었다. 부엌 살강 위에는 항상 곱삶이가 가득한 소쿠리가 있었다. '곱삶이'는 한 번 삶아 낸 보리쌀을 말하는데 한 번 더 삶아야 먹을 수 있다고 곱삶이라 한다. 꽁보리밥을 두고 곱삶이라 하기도 한다.

'보리밥을 많이 먹으면 각기병에 걸리지 않는다' 했다. 각기병이 어떤 병인 줄 모르지만 그 병에 걸리더라도 쌀밥을 실컷 먹어 보는 게 소원이었다. 훗날 실은 왜놈이 쌀 소비를 줄어 제 나라로 실어 가려고 한 말이란 걸 알았다.

이런 보리가 식혜가 되어 손님상에 오르고 조청이 되어 각종 요리 맛을 내며 엿이 되어 아이를 달랜다. 엿을 만들려면 우선 엿기름을 준비해야 하다. 엿기름은 싹 틔운 겉보리를 말한다. 잘 씻은 보리를 물에 하루 정도 담갔다가 소쿠리에 건져 밥 수건을 덮고 방에다 며칠 두면 싹이 튼다. 보리가 제 싹을 키우려고 씨알 속 녹말을 엿당으로 변화시킨다. 싹이 손톱 길이만큼 자라면 햇살 좋은 날 멍석을 깔고 엿기름 소쿠리를 툴툴 떨어 말린다. 그러면 생명활동이 멈춰 더 이상 엿당이 소모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려 두면 두고두고 쓸 수 있다.

엿기름을 거칠게 빻아 미지근한 물로 씻는다. 이 물에다 고두밥을 넣어 삭히면 식혜가 된다. 식혜는 여름철에 차갑게 겨울에는 따뜻하게 마시는 발효 음료다. 식혜 동이를 아랫목에 앉히고 하루 정도면 발효가 끝난다.

엿물을 짜낸 찌꺼기를 엿밥이라 하는데 이걸로 우선 애들 입을 달랜다. 짜낸 엿물을 여린 불에서 고면 차츰 걸쭉해지면서 황갈색 조총이 된다. 덜 달인 조청으로 고추장을 담으면 나중에 꽃가지(흰곰팡이)가 하얗게 피어 맛이 떨어지므로 잘 달인다. 꿀처럼 걸쭉하게 해놓고 고추장, 무말랭이, 각종 조림할 때 넣는다. 요즘 사람은 설탕으로 조청을 대신한다.

명절에는 엿을 만든다. 둘이 마주 앉아 조청을 켠다. 양끝을 잡고 죽 늘였다가 다시 모으기를 거듭한다. 날이 추워 조청이 쉬 굳으면 끓는 물을 담은 양푼을 둘 사이에 놓고 김을 쐬어 가며 한다. 차츰 결이 보드라워지며 자잘한 숨구멍이 박히고 하얘진다. 잘 켠 엿은 깨무면 파삭하는 소리가 나며 잘게 부스러지고 이빨에는 전혀 붙지 않는다. 이게 제일 좋은 엿이다.

엿치기는 가래엿으로 한다. 여름에는 엿치기를 못한다. 겨울이어야 한 번 만에 뚝 부러진다. 엿을 잘라 구명이 크면 이기는 거다. 몇 번만 해보면 구멍을 찾을 수가 있다. 결이 잘 서 있는 건 가볍고 겉보기에도 표가 난다. 손에 올려 저울질해서 가벼운 것을 찾는다. 뚝 부러뜨리면 입으로 훅 분다. 상대 것을 먼저 확인하려고 고개를 뽑아 이리저리 흔든다. 엿 값은 구멍이 작은 사람 몫이 된다. 꾀죄죄한 모습의 엿장수가 고향처럼 그립다.(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농작물 백가지(이철수 글, 현암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