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전망에서 성서 읽기

호세아

노영상/본회 집행위원, 장신대 교수

고대 근동지역의 신들은 일종의 풍요를 약속하는 풍요신들(fertile gods)이었다. 바알은 농경신이었으며, 아세라는 생산신이었다. 이 신들은 모두 잘 사는 것과 다산을 보장하는 신들이다. 이러한 신들의 숭배는 풍요제의로 이어지며, 그 풍요제의 중 거룩한 결혼(성혼, 히에로스 가모스)의 의식이 포함되었다. 바알과 아세라는 이 땅을 비옥하게 하여 우리에게 풍요로움과 부유함을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세아서는 이런 거짓된 우상숭배가 오히려, 이 땅을 황폐하게 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우리에게 참다운 풍요로움과 행복을 주시는 분은 이 땅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으로서, 여타의 어떤 것도 우리에게 풍요를 향한 약속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호세아 11장 2절은 그러한 우상숭배를 일종의 간음행위라고 말하면서, 그러한 간음의 죄악은 우리의 땅을 황무하게 한다고 하였다. "그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거칠게 하여 수풀이 되게 하며 들짐승들로 먹게 하리라"(2:12). "들짐승과 공중에 나는 새가 다 쇠잔할 것이요 바다의 고기도 없어지리라"(4:3). "타작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요 새 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9:2). "동풍이 오리니 곧 광야에서 일어나는 여호와의 바람이라 그 근원이 마르며 그 샘이 마르고 그 적축한 모든 보배의 그릇이 약탈되리로다"(13:15). 이상의 말씀들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 심판하실 것임을 언급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만 자연의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못되면, 여타의 모든 관계가 그릇되기 마련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다스릴 뿐만 아니라, 온 우주를 다스리는 분으로 모든 만물이 다 그의 명령 하에 있다. 이에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언약을 맺으심과 동시, 우주 전체와도 언약적인 관계를 맺고 계신다. "그 날에는 내가 저희를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2:18) 호세아는 이 본문에서 하나의 우주적 언약의 입장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들짐승과 새와 곤충과도 언약의 관계를 맺는 분이라는 것이다.

정말로 농사를 잘 되게 하는 분은 바알이 아니라, 야웨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비옥함과 참다운 풍요로움을 주시는 분은 아세라 목상이 아니며 천지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자기를 잘 섬기는 사람들을 위해, 풍요함을 주는 하늘과 땅을 예비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응하리라 나는 하늘에 응하고 하늘은 땅에 응하고 땅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에 응하고 또 이것들은 이스라엘에 응하리라."(2:21-22) 하나님-하늘-땅-인간(천지인)이 서로 관련되어 있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있음을 이 본문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야웨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6:3) 이렇게 하나님-자연-인간이 서로 교호하는 것임을 아는 자가 될 필요가 있음을 위 본문은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타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분이시다. 믿는 자에게 뿐 아니라, 예수를 안 믿는 자에게도 동일한 자연의 혜택을 하나님은 베푸신다. 죽어 마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땅을 주시고 먹을 것을 내리신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낀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들의 죄를 참으시며, 자연의 은총을 베푸시고 계신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발하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이라."(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