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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반대하고 아시아 평화를 염원하는 한·일 사회단체 공동성명
미국의 보복 전쟁과 일본 군사대국화, 한국 정부의 전쟁 지원에 반대한다.

편집부

9월 11일의 테러로 죄 없이 희생된 수많은 미국 시민들을 애도하는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보복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국 테러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이 전쟁을 통한 보복을 선택함으로써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염원을 저버렸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보복전쟁은 미국 시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할 수 없으며 세계의 평화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미국은 새로운 세기를 또다시 유혈 충돌과 군사적 대립으로 몰고 간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며,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던 세계 모든 시민들의 분노와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번 공동성명에 참여하는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인권, 환경, 성, 빈곤, 민주주의 등의 문제와 관련하여 활동하고 있으며 아시아의 평화를 간절하게 염원하는 단체들이다. 평화를 향한 공동의 염원을 담아 테러 참사와 미국의 보복전쟁, 그리고 일본과 한국 정부의 전쟁지원에 관해 우리들의 입장을 밝히고자 한다.

우선 첫 번째로, 오늘 성명에 참여한 한·일 양국의 시민사회단체는 모든 종류의 테러와 전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백히 밝히고자 한다. 이번 테러에 희생된 미국 시민들과 미국의 보복공격에 의해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 속에서 희생되거나 기근과 공포에 떨어야할 죄 없는 아프가니스탄 민중들에 대하여 깊은 위로를 전하는 것은 물론, 지금까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서 벌어진 폭력과 전쟁, 빈곤과 차별로 희생당한, 그리고 지금도 희생당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같은 위로를 전한다.

두 번째로, 우리들은 미국 정부가 이번 테러 사태를 전쟁행위(Acts of War)로 규정하고 군사적 보복의 권리를 주장하며 실행한 8일 새벽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즉시 중지할 것을 촉구한다. 우리는 테러를 일으킨 집단이나 개인은 면밀한 조사를 통해 그 결과를 공개하는 가운데 국제법에 따라 각 국의 협력을 통해 처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미국과 그 동맹국에 의한 군사보복은 이번 테러 사건과 마찬가지로, 아니면 그 이상으로 죄 없는 시민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또한 군사보복은 세계적 차원의 걷잡을 수 없는 군사적 대립을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우리는 미국이 그동안 제 3세계 나라들의 내정에 부당하게 간섭하고, 미사일방어(MD) 등으로 군사적 패권주의를 추구하며, 미국식 세계화를 강요해온 자신의 일방적 정책을 변화시키는 것이 테러의 위협을 근본적으로 극복하는 길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로, 우리는 일본 정부가 미국의 군사행동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또 다시 군사대국화의 길을 가고자 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두 나라의 시민사회단체들이 오늘 긴급하게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은 무엇보다 아시아 평화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경계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미국 테러 사건을 빌미로 자위대의 군사력과 활동 범위를 확대하고, 미군지원법 등을 제정하며, 집단자위권을 확립하려 하고 있다. 이것은 아시아태평양전쟁 이후 자위대를 전쟁에 참가시키려 하는 최초의 시도이다. 일본의 전쟁 참가는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한다. 일본은 전쟁 참가가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전쟁에 대한 전쟁 책임을 확실하게 자각하고 종군위안부를 비롯해 전쟁 희생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국가 책임 하에 실시하는 것이 아시아의 평화에 공헌하는 일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자 한다.

네 번째로 우리 한·일 양국 시민사회단체들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군사보복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한 남북 간 협력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정당성이 의심스럽고 민간인 살상이 우려되는 전쟁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한국 국민들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한국 정부가 미국의 전쟁을 지원한다면 일본 정부가 같은 방법으로 군사대국화를 추구하는 것을 방조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한국 국민들의 안전과 아시아 평화에 기여하는 길은 남북한의 대화의 협력을 한층 진척시켜 마지막 남은 냉전의 현장인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여는 것이다.

오늘 공동성명에 참여한 우리는 한일 양국은 물론 아시아 시민들의 목소리를 모아 전쟁의 중단을 촉구하고,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저지하며, 한국 등 아시아 나라들의 전쟁 지원을 반대하는 행동을 조직할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기반으로, 테러리즘과 전쟁, 빈곤과 환경파괴 등 구조적 폭력을 없애기 위해 세계 시민들과 연대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우리는 10월 22일에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동티모르, 태국, 홍콩, 대만 등에서 아시아 시민들의 반전평화 공동행동을 전개하기 위해 준비에 착수했다는 점을 밝힌다.

2001년 10월 9일, 본회를 포함한 319개 국내단체와 28개의 일본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