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마당/ 생태학적 신학자들14

한스 요나스(H. Jonas) - 두려움의 재발견

이정배 / 부설연구소 소장, 감신대 교수

한스 요나스는 유대철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인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하이데거와 성서신학자 불트만의 지도 하에 영지주의에 대한 학위논문을 썼고 이후 미국 여러 대학에서 철학부 교수로 활동하였다. 현재 미국 신학부 내에서 한스 요나스의 윤리학에 관한 저작들이 많이 읽혀지고 있다. 영지주의에 대한 연구 이후 그는 줄곧 생명을 철학적 관점에서 탐구하였고 생명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맥락에서 책임원리를 윤리적 정언명령으로 선포하였다. 이런 학문적 과정 속에서 나온 책들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영지주의와 후기고대정신(Gnosis und Spatantiker Geist)'(1954), '생명의 원리(Das Prinzip Leben)'(1994), 그리고 '책임의 원리(Das Prinzip Verantwortung)'(1983).

한스 요나스는 먼저 오늘의 변화된 상황으로 인간의 기술적 간섭 그리고 환경오염 등에 의해 영구불변하다고 믿었던 자연 자체가 파괴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로인해 자연이 인간적 책임의 대상으로서 윤리학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인가가 "있다"(존재)는 사실이야말로 인간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즉 인간의 종교적 도덕적 경외심은 주관적 의지의 발로가 아니라 객관, 곧 자연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리하여 그는 오늘날 망가지고 있는 자연을 '갓 태어나 우리 앞에 놓여진 신생아의 존재'로 비유하여 설명하려 한다. 현실 세상에서 인간들은 상호 간에 주고받는 책임의식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갓 태어난 어린 아이의 현존 앞에서 인간은 자신에게 돌려질 책임을 생각할 여유도 없이 신생아의 존재 및 그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할 수밖에 없다. 요나스는 무제약적 책임을 요구하는 책임의 원형적 대상으로 어린 신생아를 말하였고 오늘날 망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해 인류는 이런 원형적인 책임감을 느끼며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나스는 신생아처럼 무한한 책임을 요구하는 망가져가는 자연을 보면서도 미래를 말하고, 진보를 말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일체의 종교 및 이데올로기를 배격한다. 이런 이념 및 종교들 속에는 아직도 자연을 인간을 위해 이용하려는 낙관주의적 신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명 오늘날의 인간과 자연의 상황은 더 이상의 희망과 진보(낙관)의 원리를 견디어낼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그는 오늘의 현실, 특별히 자연이 망가져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두려움을 발견하도록 요청한다. 오늘의 상황에서는 주어진 객관 곧 자연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이 으뜸가는 윤리적 준칙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요나스는 이러한 두려움의 발견술, 곧 자연에 대한 염려를 일회적인 사건으로서가 아니라 매순간의 일로서 이해한다. 갓 태어난 신생아에 대한 배려가 계속성을 요청하며 매순간의 일인 것처럼 말이다. 바로 이것이 요나스가 말하는 새로운 미래의 윤리로서 책임의 원리인 것이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윤리의 근거를 형이상학, 즉 창조주 하나님 신앙에서 찾으려 했다. 그러나 요나스는 지금 눈 앞에 놓여있는 한 아기의 존재를 책임감의 원형으로 제시하고 있다. 말을 바꾸자면 자연, 더욱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는 자연이 우리의 윤리적 행동의 확실한 객관적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기독교신앙인인 우리는 요나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과연 인간이 요나스가 생각한 대로 미약한 익명의 존재에 대해 무제약적으로 경외를 느끼고 책임을 질 만큼 성숙한 존재인가? 더구나 이와같은 일을 매순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한스 요나스의 책임원리는 자연을 책임감의 원형으로 보고 망가진 자연 속에서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종교인, 비종교인의 구분을 떠나 생태계를 살리려는 성숙한 지성인의 고뇌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