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마당                               기독교 사상가, 폰 바이제커
                                            
      (JPIC: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

              이정배/감신대 교수 부설 연구소 소장

1912년 독일 킬에서 출생한 바이제커(Carl Freidrich von Weiszacker)는 물리학을 공부하였고 1933년 유명한 베르너 하이젠베르그 교수에게서 박사학위를 받는다. 이후 괴팅겐대학과 함부르그대학에서 각기 물리학과 철학교수직을 수행하다가 1970년~80년 과학기술세계 내에서의 삶의 조건을 연구하는 막스 프랭크(Max Planck)연구소 소장으로도 활동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1990년 3월 세계교회협의회(WCC) 주관으로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JPIC대회의 산파역할을 하였고, 그 공로로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부에서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주요저서로는 '자연의 역사(1948)', '과학의 한계(1964)', '인간의 정원(1977)', 그리고 JPIC 기독교공의회를 기초한 '시간이 촉박하다(1986)' 등이 있고 최근에 가장 주목받는 책으로서 '시간과 앎(1992)'이 있다.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는 자리에서 그가 행한 강연 제목은 '기독교정신은 구현되고 있는가'였다. 그는 본래 기독교를 '미완의 종교'라고 불렀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는 기독교는 언제든 의식전환을 요청받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로 오늘의 인류를 위협하는 인류공동의 죄악, 분배문제의 불균형, 동서간의 핵무기경쟁, 그리고 하나밖에 없는 지구공간의 파괴 등에 직면하여 기독교가 다시한번 의식변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묻고자 했던 것이다. 또한 그는 인류의 공통과제를 위하여, 세계종교들간의 만남이 급선무라는 사실도 깊게 인식하였다. 자기 신앙의 수호만을 위해 존재하는 종교로서는 오늘의 세계재앙에 대해 책임적일 수 없다는 판단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그는 현대 종교들이 자연과학에 대한 깊은 조망을 지녀야 한다고 역설한다. 즉 기독교의 의식변화 및 제종교들의 세계책임을 위해서도 자연과학이 지닌 신학적 종교적 의미를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였던 것이다. 지금껏 코페르티쿠스를 통하여 우리는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고, 다윈을 통해 인간이 창조주가 아니라 자연의 아들임을 배우게 되었으며, 또 최근 정신분석학은 의식이 인간의 주인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양자역학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반성이야말로 사실적 종말로 치닫고 있는 세계적 위기상황을 치유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그가 자연과의 화해, 평화 없이는 인류간의 평화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양자이론의 철학적 분석을 통하여 바이제커는 정신과 물질, 주체와 객체를 분리하는 이원론은 더 이상 지탱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자연은 더 이상 인과적, 결정론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비결정론적으로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성질을 지녔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관찰자로부터 독립해있는 객관적인 실재로서의 자연관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상보성, 불확정성이란 개념이 자연을 설명하는 기본어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로부터 바이제커는 주체와 객체, 물질과 정신의 하나됨을 통찰하였고 이들에 대한 통일적 사유를 추구하려고 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물질이란 오로지 정신으로 되어가는 물질일 뿐 죽어있는 고정된 실체가 더 이상 아니었던 것이다. 바이제커의 다음 말을 들어 보도록 하자. "우리 모두가 존재하는 것이 하나라는 종교적 신비체험을 하게 되면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 우주 삼라만상에 이르기까지 그들 모두에 대해 우주적, 보편적 책임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그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다음처럼 변동하여 자신의 생명외경사상의 준칙으로 삼았다. "너는 모든 생명체를 단지 수단으로만 이용하지 말고 목적으로 보며 또한 그들의 지속성을 공고히 하도록 행동하라."

그는 보편책임의 근거가 되는 통일성의 경험을 위해 종교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였다. 신비(종교)로부터 윤리가 출원된다고 믿었기에, 그는 홀로 깊히 사색하며 신비적 사고에 빠져들기도 하였다. 신비주의야말로 '존재하는 것이 하나'임을 잘 설명하는 방식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를 일컬어 일명 정신일원적 사유라고 부른다. 이런 신비적, 정신일원적 사유는 전체를 인식하려는 인간이성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잘 조화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기도 하다. 이런 물리학적, 철학적 원리로부터 보편적 책임의식을 갖고 세계평화를 위한 공의회 성격의 JPIC대회를 연 그의 공헌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후 WCC신학은 JPIC논의를 빼놓고서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향후 JPIC신학이 기독교생명운동을 위해 더 많이 논의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