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새만금 갯벌은 왜 지켜야 하는가?

 목사, 김영락 본회 사무총장

새만금 사업이 2년 동안 사업을 중단하고 논쟁을 벌여오다가 최근 강행하기로 결정되었다. 정부는 새만금 갯벌을 매립하여 농지를 만들고 식량을 생산하겠다고 한다. 새만금은 세계 5대 갯벌의 하나로서 강에서 내려오는 오염물질을 정화하고 해양 생물에게 영양분을 제공함으로 수많은 조개, 게 등이 살아가고, 그런 생명체를 근거로 수만 마리의 철새가 이곳에서 먹이를 먹으며 쉬었다 가는 곳이다. 또 많은 물고기들의 산란장이기도 하다. 어민들도 이곳에서 조개를 캐고, 고기를 잡아 살아가고 있다.

갯벌을 지켜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서 육지와 바다를 잇는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을 지으신 뜻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짧은 생각으로 갯벌을 매립해서 농지를 만들면 쌀이 얼마가 생산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갯벌을 젖줄로 삼아 사는 어패류의 가치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새만금 갯벌에는 호주에서 날아오는 도요새가 쉬었다 가는 곳이어서 먼 거리를 날아오는 철새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래서 해양수산부에서도 해양생태계의 파괴를 염려하여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였었다. 환경 오염은 한마디로 인간의 끝없는 물질적인 욕심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6:24)고 하셨지만 인간들은 재물을 사랑하였기에 이 시대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와졌지만 신앙적으로는 피폐해졌다.

새만금을 개발하면 안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려 33 km의 방조제를 쌓아서 담수호를 만들려고 하고 있지만 그 수질이 너무나 나빠서 농업용수로도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부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우려를 표시했었다. 이 사업을 추진하는 농림부는 수질 보전이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전주시 일대에서는 농축산업에서 나오는 오폐수를 강력히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에 많은 지장을 받을 것이다. 전북에서는 새만금을 개발하면 수 조원의 돈이 그 지역에 투입이 되어 경제가 활성화 될 것이라고 하여 큰 기대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오염된 자연환경에서 고통을 당하고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을 것이다.

새만금 개발이 경제성이 있느냐 하는 것이 세 번째 문제이다. 6조원의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들여 농지를 만들었을 때 그 농지의 가치가 그에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전라북도에서는 새만금 지역을 공단으로 만들 계획을 내부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나라 곳곳에 완공된 공단에 입주하는 공장이 없어서 놀리고 있는 곳이 많다. 이렇게 세가지 측면에서 새만금 사업에는 문제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민의 뜻을 수렴하지 않고 서둘러서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은 현 정권의 정책 중에 가장 잘못된 것이다. 2년 동안이나 민관공동조사단이 조사를 하고, 토론회를 하였으나 국론이 모여지지 않았었다. 특히 전북지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계속하라고 요구하였으나, 환경단체나 중앙언론들은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또 최근 한국 갤럽과 MBC과 공동으로 새만금 사업에 대한 여론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66.3%의 국민들이 간척을 반대한다고 하였으며, 83%는 정부의 강행 결정에 반대한다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국민간의 충분한 토론을 통해서 민주적인 합의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금이라도 정부는 사업을 강행하지 말고 의견을 모아 합리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새만금사업의 강행으로 인한 환경파괴보다도 더 큰 문제는 국가 중요 정책의 비민주적인 결정과정이다. 더욱이 정부가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이 집권당이 전북에서 표를 잃지 않기 위한 정치적인 이유라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지역주의와 정치적 이해관계에 매여 대자연을 희생시키는 것은 지탄을 받아 마땅하다.

새만금사업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발견되는 문제는 환경파괴는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한다는 사실이다. 물질적 욕심, 지역이기주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의해서 환경이 희생되고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죄인 탐욕과 교만이 환경을 파괴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은 생명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환경에도 적용된다고 하겠다. 그런 점에서 환경보전과 창조보전은 경건과 절제운동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고 예수님과 같이 자기 희생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이다. 십자가 뒤에 부활이 있는 것처럼 자기 희생 뒤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기억하며 개인이나 사회적으로 창조보전에 힘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새만금을 지키기 위해서는 각자의 욕심을 버리고 미래세대와 창조세계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