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농작물 이야기(1)

          올망졸망 매달리는 감자이야기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봄감자를 심을 밭을 준비해야 한다. 감자는 생육기간이 아주 짧아 대부분 밑거름으로 준다. 자라는 도중에 주는 덧거름은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 남부평야에서는 3월 중순경 잘 썩은 거름을 고루 주고 흙을 깊고 부드럽게 갈아엎는다. 그런 다음 두자 정도 간격으로 골을 켜면서 이랑을 만들어 심는다.

감자는 덩이줄기로 영양번식을 하기 때문에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듬해 쓸 씨감자는 남겨 둬야 한다. 아비가 좋아야 자식이 좋은 걸 뻔히 알면서도 골방 감자는 굵은 것부터 손이 간다. 이렇게 차근차근 먹다 보면 씨감자를 챙겨야 할 즈음에는 잘고 못생긴 놈만 남는다. 굵은 것으로 씨를 해야 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굵은 것부터 먹는 것은 당연히 배고픔 때문. 잔 것이나마 통째로 심으면 좋으련만 눈 하나만 달랑 따 내어 심으니 소출이 뻔하다. 눈을 따 내고 남는 깡태기를 먹는다.

따낸 씨감자 조각을 재에 버무려 그늘에서 말린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자른면에 피딱지가 생기는데 이때 심는다. 자른 면이 아래쪽을 향하게 하고 5cm 정도 깊이로 심는다. 며칠이 지나면 추위를 뚫고 싹이 나온다. 뾰족하게 머리를 내미는 게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싹은 씨감자에 붙어 있는 눈 숫자만큼 나오는데 그대로 두면 수량은 많아지지만 씨알이 너무 잘아진다.

싹이 한 뼘 정도 자라면 두어번 북주기를 한다. 포기 주위 흙을 긁어 줄기를 좀더 깊이 파묻는 걸 북주기라 한다. 이렇게 해주면 수량이 늘어난다. 고구마는 덩이 뿌리이고 감자는 덩이줄기이다. 즉 우리가 먹는 감자는 뿌리가 아니고 줄기가 굵어진 거다. 씨감자가 싹이 터 흙을 뚫기 전까지를 땅속줄기라 한다. 이 땅속줄기 옆구리에서 뿌리가 나오고 복지라는 줄기도 생기면서 끝이 굵어지는데 이게 감자다. 북주기를 하면 복지가 많아진다.심은 지 두달 남짓 지나면 주렁주렁 알이 매달린다. 싹이 터 나올 때 늦서리만 피한다면 일찍 심을수록 소출이 많다. 남부지방에서는 3월 중하순쯤일 거다. 어지간한 늦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탐스럽게 자란다.

다른 농사보다 감자 농사는 비교적 손쉽다. 다만 고추, 가지, 토마토를 심었던 땅을 피하는 게 병충해 방제나 자라는 데 유리하다. 일반 농가에서는 무농약 재배를 할 수 있지만 포기 전체가 시들면서 차츰 말라죽는 역병으로 간혹 피해를 입는다. 해충으로는 잎을 갉는 딱정벌레 종류인 왕됫박벌레가 있는데 보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엄지벌레는 팥알 크기 반구형으로 적갈색이며 한껏 멋을 부릴 땐 오렌지색 잔등에 스물여덟 개 검은 점이 박혀 제법 화사하다. 토마토 재배농가는 감자밭을 멀리한다. 역병이 토마토에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감자를 '마령서(馬鈴薯)'라 하는 걸 보면 알수 있듯 줄기를 잡고 쑥 뽑아 올리면 주저리 매달려 나온다. 그 기분에 농사는 힘들지만 쉬 팽개치지 못한다. 논에 심은 봄감자는 모내기 때문에 6월 초에 캐고 밭감자는 이보다 늦게 캔다. 그래서 밭감자가 저장력이 더 강하다. 감자 캐는 날은 숫제 솥단지를 들고 나가 먼저 캔 감자를 삶아서 새참한다.

감자찌개, 감자조림, 감자볶음, 감자부침, 김자밀푸러기, 감자전, 감자튀각 등 감자는 다양하게 변신한다. 가장 특이한 맛을 가진 먹을거리는 뭐니 해도 감자떡이다. 제대로 빚은 감자떡은 특이한 맛이 난다. 요즘 사람은 곰삭은 듯한 맛을 싫어하겠지만 몇 번 먹으면 이내 정을 붙일 것이다. 반쯤 썩은 감자로 만드는데 고구마는 썩으면 버려야 하지만 감자떡은 썩은 감자여야 제맛이 난다. 약간 썩은 감자는 녹말이 잘 분리된다. 감자를 맷돌에 갈아 거친 것을 걸러낸다. 부유물을 다시 거르면 녹말가루 성분이 가라앉는다. 윗물을 따르고 가라앉은 걸 건져 쌀가루를 적당히 섞어서 반죽해 떡을 만드는데 소를 넣어 송편을 빚어 놓으면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맛이 난다.

민간에선 약으로도 쓴다. 화상을 입었을 때 생감자를 강판에 갈아서 붙이면 화기가 빠진다. 어느 정도 견딜 만해지면 앏게 썰어 프라이팬에다 숯이 될 때까지 태운다. 이걸 가루 내어 참기름과 버무려 상처에 붙이면 상처가 잘 아문다. 위궤양에는 생녹말이 좋다고 한다. 껍질 깍은 생감자를 보드랍게 짓찧거나 강판에 갈아 물에 푼다. 가만히 두면 흰 앙금이 가라앉는데 이게 감자 생녹말이다. 아침마다 보통 굵기 감자 한 개를 생녹말로 만들어 빈 속에 먹으면 치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낭만적으로 감자 맛을 즐기는 방법도 있다. 바로 감자삼굿이다. 그 옛날 삼(大麻)을 쪄 내던 곳을 삼굿이라 했는데 감자삼굿이란 삼굿에서 삼을 찌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감자를 찌는 것을 말한다. 먼저 흙구덩이를 약간 파고 둘레에 적당한 굵기 돌을 붙여 놓는다. 굵은 자갈부터 어깨걸이를 시켜가며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원뿔형으로 쌓아올리는데 위로 갈수록 자갈이 작아진다. 자칫하면 무너지기 십상이라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아궁이에서 불을 지핀다. 나무는 자잘한 물거리나무가 좋다. 자갈에 침을 뱉어 튀는 소리로 달구어진 정도를 확인하다. '튀'하는 소리를 내며 침이 튀기면 잘 달구어진 거다. 이러면 자갈 돔을 무너뜨리고 그 위에 감자를 넣고 흙으로 두껍게 덮는다. 꼬챙이를 준비해서 서너 곳에다 구멍을 뚫고 고무신에 떠다 놓은 물을 붓고 구멍을 막는다. 물이 자갈에 닿아 뜨거운 김이 생기면서 감자가 익는다. 이렇게 해 놓고는 한바탕 뛰논다.

차츰 감자 냄새가 짙게 풍긴다. 조심스레 한쪽을 후벼 감자 하나를 꺼내 익었는지 확인한다. 수증기로 감자가 익으면서 자갈에 닿은 부분은 구워진다. 굽는 냄새가 진동하면 흙을 헤쳐 감자를 꺼낸다. 노릇하게 익은 껍질이 잘도 벗겨진다. 감자를 이 이상 더 맛있게 먹을 수는 없을 거다. 얼마나 서정적인가. 요즘 아이들에게 가르친다면 맛뿐 아니라 재미도 느끼고 인내심도 길러 줄 텐데. 지금 생각하면 돔 쌓기가 무척 힘들었을텐데도 그저 신났던 기억뿐이다. 먹는 재미와 맛 때문이었겠지(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농작물 백가지(이철수 글, 현암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