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 시대의 폭력을 극복하자

          - 평화로운 지구 공동체를 위하여 -

        박경조 / 대학로교회 신부, 본회 이사, 녹색연합 공동대표    

1998년 12월 아프리카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 제8차 총회는 폭력극복 10년(Decade to Overcome Violence) 캠페인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총회는 "WCC는 모든 교회들과 함께 비폭력과 화해를 위해 일하고 비폭력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계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특히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한반도는 오랜 세월동안 폭력에 의해 깊은 상처를 받았고 수많은 생명들이 희생을 당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가까운 역사를 살펴보더라도 일본의 식민지 강점, 해방정국의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 남북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 5.16 군사 혁명과 군부독재 정권의 등장, 광주 민주항쟁 사건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아픈 역사를 우리는 겪어 왔다.

폭력은 주로 힘이 있는 자가 힘이 없는 자에게 행사하는 물리적인 힘뿐만 아니라 언어적 , 심리적 , 정신적 폭력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간이라면 이러한 폭력의 힘 앞에서 저항할 수 있어야 한다. 더우기 하느님을 믿는 신앙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하느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의 존엄성이 파괴되는 현실을 보고도 분노하지 않고, 그러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어찌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모든 교회가 부활의 절기를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십자가 없는 부활을 생각할 수가 없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에 참여함으로써만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고난은 인간의 폭력에 의한 희생이요,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리는 숭고한 희생이며, 동시에 십자가는 폭력에 대한 저항이다. "오른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왼뺨도 돌려대라"(마5,39)는 말씀은 결코 폭력 앞에 주저앉으란 말씀이 아니다. 그 말씀은 폭력에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는 말씀이지 결코 저항을 하지 말라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바을은 로마서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하였는데 이 말씀도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고 선으로 저항하라는 뜻이다. 주님은 당시의 정치권력이나 종교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던 가난한 자들에 대한 폭력 앞에 결코 무릎을 끓으신 적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따른다고 하는 것은 단순히 현실의 체제에 잘 적응하고 성공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되고 불의로 가득한 이 세상의 체제를 비판하고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피조세계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 즉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세워나가는 일에 헌신하는 사람인 것이다.

오늘날 인간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폭력 가운데 하나가 자연과 환경에 대한 파괴이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인간 개인의 구원에만 관심을 가져왔다. 그리하여 구원을 사사로운 영역으로 후퇴시켜왔다. 그러나 구원은 한 개인의 영혼의 구원만으로는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인간은 한 개인으로 절대로 존재할 수가 없다. 인간의 존재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만이 파악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더욱이 오늘에 와서는 인간은 인간만으로 존재할 수가 없고 그를 둘러싸고 있는 주위 환경과 더불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더욱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안녕에만 관심을 두고, 인간의 구원에만 관여하는 하나님을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온 세상, 온 우주를 사랑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이다.우리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파괴할 권리가 없다.

새만금 개간 사업의 문제점은 그것이 가져다 줄 경제적인 혹은 정치적인 이득이나 논리보다는 수 없는 세월동안 질서 지워져온 하나님의 창조와 무수한 생명체들의 어울림을 어떻게 그렇게 단순하게 파괴할 수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러한 권리가 없다. 그러한 파괴는 엄청난 폭력의 악순환을 불러올 것이며 그 결과는 우리들에게 엄청난 재앙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무자비한 인간 중심적인 폭력 앞에서 그 부당성을 폭로하고 저항함으로써 모든 생명체들이 함께 먹고 먹히며 살아가는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 자연세계는 결코 인간에게 속한 사유물이 아니며 오히려 우리 인간이야말로 이 자연에 속한 한 생명으로 자연에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많은 생명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좀 더 잘 인식해야 할 시점에 우리는 살고 있다.

앞으로 교회는 치열한 경쟁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약한 자들에 대한 폭력의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않된다. 교회는 생명을 사랑하는 선한 세력들과 연대하여 모든 생명체들을 보듬고 보살피면서 우리 모두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지구공동체를 지향해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