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교회 환경주일 공동설교문



생명의 쌀, 거룩한 밥상

창세기 1장 29 - 30절


어떤 사람이 과일을 먹다가 갑자기 몸이 뒤틀리고 호흡이 곤란해서 급히 응급실로 옮겼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하고 치료를 하자 병이 가라앉고 몸이 회복되었습니다. 가족들이 의사에게 물었습니다. “식중독이지요?” 의사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농약중독입니다.” “? ! ?”


참된 생명의 먹거리가 귀하다

어릴 적에 밥그릇의 밥을 가지고 장난을 치면 ‘먹을 것을 가지고 장난친다.’고 혼났습니다. 먹을 것은 소중한 것이며, 신성한 것인데, 그 먹을 것으로 장난치면 혼날 일이었습니다. 요즘 먹을 것으로 장난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얼마 전, 중국에서 가짜 분유가 만들어졌습니다. 아무 영양가도 없는 분유가 신생아에게 먹여졌습니다. 60명의 아가들이 영양실조로 죽었고, 200명의 아가들은 몸은 자라지 않고 머리만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병에 걸렸습니다. 믿고 먹인 분유였는데 엄청난 불행이 닥친 것입니다.

믿고 먹는 음식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괴롭히고 병을 일으킵니다.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빨갛고 노란 과일들이나, 벌레 하나 안 먹고 밭에서 금방 따온 듯 싱싱하게 보이는 채소들은 400여 가지의 농약과 화학비료의 공로 때문입니다. 

더욱이 밥상에 오르는 먹거리의 70%가 수입 농산물인데, 수입농산물은 수확 전뿐만 아니라 수확 이후에도 오랜 기간 상하지 않도록 살균제나 살충제를 뿌립니다. 왜냐하면 외국에서 우리 밥상에 오르기까지 한달 이상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살균제의 90%,와 살충제의 30%가 발암성입니다.

유전자가 조작된 식품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약 10% 정도의 곡물이 유전자 조작 품종입니다. 학자들은 자연 질서를 무시한 이 농산물들이 선천성 기형 등 여러 가지 부작용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광우병과 조류독감으로 축산물에 대한 공포가 온 나라를 휩쓴 적이 있었습니다. 식물만 먹고 자라도록 창조된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임으로 광우병이 생겼습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를 먹으면 먹은 사람에게 광우병 증세가 옮겨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재앙입니다.

축산물의 사료는 대부분 외국에서 수입되는데, 운송과정에서 변질을 막기 위해 수십 종의 농약이 살포되고, 사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성장 호르몬제, 항생제, 신경안정제를 투여합니다. 이것이 가축의 몸에 잔류하였다가 고기를 먹는 사람에게 축적되어 몸에 이상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70%가 가공식품입니다. 과자, 청량음료, 햄, 소시지, 라면 등 각종 인스턴트 식품에는 방부제, 산화방지제, 살균제, 착색제, 화학조미료, 인공감미료, 탈색제 등 370여 종의 화공약품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정말 알고 보면 무엇을 먹을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요엘 선지자의 탄식이 이 시대의 불행을 예고합니다.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식물이 우리 목전에 끊어지지 아니 하였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전에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냐? 씨가 흙덩이 아래서 썩어졌고 창고가 비었고 곳간이 무너졌으니 이는 곡식이 시들었음이로다. 생축이 탄식하고 소 떼가 민망해하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요엘1:15-18)

    


양식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창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1:29)

먹거리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선물은 특별한 것이며, 소중한 것입니다. 선물은 함부로 다루면 노여움을 받게 됩니다.

자녀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쌀, 생명의 양식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래서 자녀처럼, 먹을 양식도 귀하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귀하게 여기면 복을 받습니다. 자식을 소중하게 여기며 사랑하고 축복하며 키우면 복이 되고 기쁨이 되어 돌아옵니다. 먹을 양식도 귀하게 여기고 정성을 다 하면 무병장수의 복으로 내게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함부로 하면, 그것이 재앙이 되고 저주가 됩니다. 생명의 양식에 농약이 들어가고, 화공약품이 들어가면 몸에 재앙이 찾아옵니다. 환경호르몬으로 기형아가 속출하고, 아토피성 질환, 천식, 암, 성인병 등 몸에 재앙이 찾아옵니다.

농경문화 속에서 쌀을 주식으로 삼으며 살아온 우리 민족은 쌀을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쌀 한톨에도 우주가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하늘(天) 땅(地) 사람(人)을 우주를 구성하는 3요소로 본다면, 쌀 한톨에는 하늘의 햇볕과 땅의 자양분과 사람의 정성이 담겨서 밥상에 오르기 때문입니다.

옛날 우리 아낙네들은 귀신을 노엽게 하지 않아야 집안이 평안하다고 믿었습니다. 귀신 중에 ‘성주’(成造)라 불리는 집지킴이 귀신을 제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 귀신에게 바칠 쌀을 넣을 항아리를 ‘성주 단지’, 혹은 ‘신주 단지’라 했습니다. 아낙네들은 매 끼니 식사를 준비하면서 먼저 식구 수대로 쌀 한 숟갈씩 항아리에 넣으면서 가족의 건강과 출세를 위해 ‘성주님’께 빌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이 된 아낙네들은 더 이상 귀신을 섬길 수 없었고 ‘성주 단지’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전에 ‘성주 단지’라 부르던 항아리 바깥에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 단지’(Lord's Pot)라고 불렀습니다. ‘성주’ 귀신을 위해 모았던 쌀을 이제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쌀을 모았던 것입니다.

성주에게 가족들의 건강을 빌던 것을 이제는 예수님에게 가족들의 건강을 빌었습니다. 식구 수대로 쌀 한 공기 뜰 때마다 한 숟갈씩 쌀을 뜨면서, “이 밥을 먹는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하시고, 오늘도 아무 사고나 어려움 없게 해 주소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한 주간 모은 쌀을 주일날 예배드리러 오면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것이 성미입니다. 이 성미 운동은 100년 전에 시작 되었고, 오늘날까지 신앙의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성미는 거룩한 쌀(聖米)이라는 뜻이 아니라 정성이 담긴 쌀(誠米)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에 쌀 한톨 함부로 하지 않는 정성이 담긴 것이라는 뜻이며, 가족의 건강을 좌우하는 것이기에 정성을 다해 밥을 짓고 먹을 양식을 삼는다는 뜻입니다.

어떤 빼빼 마른 목사가 친구 목사들을 만났습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 목사들이 물었습니다. “어디 아파? 점점 더 말라가는 것 같아.” 그러자 이렇게 말을 받았습니다. “친구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생각하면 밥이 목으로 넘어가나?” 몸이 좋은 친구 목사들이 황당해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이렇게 조크를 했습니다. “여보게, 자네 성미를 먹지? 교인들이 정성스레 기도로 떠오는 성미를 먹고도 살이 안 붙으면 그건 교인들에게 죄가 되는 것이야!” “?!”


거룩한 밥상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오래된 전통이 있습니다. 밥상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반드시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지 않고 식사를 하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만큼 모두 식사기도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기도합니까? 우리는 대체로 일용할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이 양식이 밥상에 오르기까지 땀 흘린 농부의 손길과 정성껏 요리를 한 손길에 이르기까지 축복과 감사로 어우러진 식사기도를 드립니다.

기도하고 먹는데도 식사 후에 남아서 버리게 되는 음식물 쓰레기가 넘쳐납니다. 한해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를 돈으로 계산하면 15조원이나 됩니다. 이것은 북한 주민의 주식비보다도 더 많습니다.

예전의 어른들은 아이들이 밥을 한 톨이라도 소홀히 하면 주의를 주었습니다. “애야, 이 쌀 한톨이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농부들의 손길이 얼마나 많이 가야 하는지 아니?” 쌀 한톨이 소중한 것은 정성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먹는 양식 중에 다른 생물의 생명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식물의 생명이던지, 동물의 생명이던지 우리는 남의 생명을 먹고 나의 생명을 살립니다. 내 생명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의 생명이 희생됩니다. 양식은 생명입니다. 식물의 생명이요 동물의 생명입니다. 희생이 되어 밥상에 오르는 것도 미안한데, 음식물 쓰레기가 되어 버림까지 받으면 얼마나 미안한 일이겠습니까?

성만찬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예수님의 희생을 기억하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는 거룩한 식탁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다른 생명의 희생으로 나의 생명이 살아가는 밥상은 거룩한 성찬입니다. 날마다 받는 밥상은 그대로 성찬입니다.

이현주 목사님은 ‘밥먹는 자식에게’ 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습니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봄부터 여름 지나 가을까지/ 그 여러 날들을/ 비바람 땡볕 속에 익어온 쌀인데/ 그렇게 허겁지겁 먹어서야/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운 줄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거여 ”


생명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고, 싹이 나고, 잎이 피고, 꽃이 피고, 열매가 익기까지는 정성도 필요하고 시간도 필요합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탐스런 열매가 생명의 축복으로 얻어집니다.

그러나 패스트 푸드(Fast Food)를 먹고 자란 현대인들은 기다림을 모릅니다. “빨리, 빨리” 재촉하며 살아갑니다. 충동에 사로잡혀 살아갑니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합니다. 인생을 재촉하면서 인생의 참된 맛을 음미하지 못한 채, 하나님이 주신 삶의 멋을 맛보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패스트푸드에 맞서서 슬로우프드(Slow-Food)운동을 해야 합니다.

모든 양식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것으로 믿는 그리스도인은, 가능한대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하며,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 식품이 아닌, 어머니의 정성이 들어간 소박한 음식을 천천히, 감사하며, 깨끗이 먹는 생명의 밥상을 회복해야 합니다. 모든 가족과 교회가 이렇게 거룩한 밥상을 회복하면 그곳이 바로 천국 잔치 자리입니다.


“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식구가/ 한상에 둘러서 먹고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찬송가 30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