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와 밥

이 밥은 내 몸이고, 이 포도주는 내 피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을 먹어야 산다. 생명세계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 얽혀 있다. 내가 살기 위해 남을 먹는 것은 삶의 조건이며 원죄다. 이런 생명세계는 서로 잡아먹는 상극(相剋)의 세계이면서 서로 먹이가 되는 상생조화(相生調和)의 세계이기도 하다. 양은 풀을 먹고 늑대는 양을 먹고 사자는 늑대를 먹고 사자는 죽어서 풀의 먹이가 된다.

먹이는 밥이다. 밥은 다른 생명의 생존을 위한 한 생명의 희생(犧牲)이다. 인간은 사회적으로도 남을 희생시키면서 또 남에게 희생당하면서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깊은 죄로 물들어 있다. 깊은 죄의식을 지녔던 이스라엘 백성은 죄에서 벗어나 깨끗하고 힘찬 삶을 살기 위해서 양과 소와 비둘기를 희생제물로 제사 드렸다. 이것이 성서적 신앙의 밑뿌리를 이룬다. 개인도 민족사회도 희생양이 있어서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

우리는 흔히 만만한 사람을 보고 “너는 내 밥이다”고 한다. 우리는 남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면서 성공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 서로가 남을 먹으려고만 들면 그 사회는 망할 수밖에 없다. 죄로 망해가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스스로 희생양이 되었고 스스로 밥이 되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의 밥으로 주었다. 희생양, 밥이 우리의 구원자다. 밥은 우리의 먹이이면서 구원자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이 밥은 내 몸이고 이 포도주는 내 피다.”라고 선언했다. 예수님은 우리가 날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예수님의 삶의 정신을 기억하고 실현할 것을 당부했다. 성서에서 하나님 나라는 흔히 잔치로 비유된다. 예수님 자신도 흔히 자기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 초대 교회는 함께 먹고 마시는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였다. 그래서 가난한 자와 부자가 따로 없었다.

밥 한 그릇에 우주 자연의 조화와 섭리가 들어 있다. 햇빛과 바람과 물과 흙이 함께 어우러져 쌀이 되었다. 이 쌀에는 농부의 피와 땀, 눈물과 한숨, 정성과 기도가 담겨 있다. 오늘 내가 먹는 밥 한 그릇 속에는 예수님의 살과 피가, 하나님 나라의 힘과 비밀이 들어 있다. 함께 밥을 나누어 먹을 때 사랑과 평화와 정의가 깃들 것이고, 하늘의 힘이 주어질 것이다.

                                          박재순(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