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천년에는 실천합시다.

유엔이 정한 2000년의 세계환경의 날의 주제는 "새천년-실천할 때"(New Millenium-Time to Act)입니다. 환경보전에 있어서 실천이 중요함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천하지 않는 환경운동은 환경보전이 아니라 또 다른 환경오염입니다. 말로만 하는 환경보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환경오염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만듦으로서 역효과만 낳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새 천년은 더 큰 의미를 갖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지 벌써 2000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껏 교회나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이 탐욕과 교만 가운데 살아왔기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세계가 이렇게까지 파괴되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은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환경보전은 한마디로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산상수훈에서도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마7:13)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환경도 지키면서 풍요롭고 편안하게 살 수는 없을까하고 궁리를 합니다. 그것은 마치 생명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생명을 구하려면 오로지 좁은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이미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이 진리를 몸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생명을 주시기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합니다. 몸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제는 환경운동가는 필요 없는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각자 자기가 처해 있는 곳에서 묵묵히 주님을 따라 좁은문으로 가는 사람만이 필요한 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마7:21에서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씀하시기를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2:17)

그러나 실천에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리 의지력을 발휘하여 실천하려 해도 주변 상황이 허락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또 내가 혼자서 실천한다고 해서 환경이 개선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좁은문으로 가면 산다"는 말씀을 믿고 불편하더라도 환경보전을 실천하는 삶을 살면 주님께서 살리실 것입니다. 불편함을 불평하면서 넓은 길로 가는 사람은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한 것(요3:19)이므로 스스로 하나님의 구원을 포기한 것(요3:17)입니다. 좁은문을 가다가 실망할 필요도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고 하신 말씀처럼 누구도 완전하게 실천할 수는 없습니다. 믿기로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서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성실하게 실천하려고 노력하다가 주님을 향하여 엎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롬3:28)

한국 교회는 새천년에 환경보전 이외에 평화통일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선교적 과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통일의 날은 가까워 오는 듯 하지만 가슴이 메어지도록 답답한 것은 북한동포들의 굶주림과 헐벗음입니다. 북한의 극한적인 물질의 궁핍은 이미 도를 넘어서 인간성이 파괴될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아픔이 남한에 있습니다. 그것은 상업주의와 퇴폐문화로 병들고 죽어가는 남한의 동포들입니다. 기독교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교회가 병들고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이 둘은 사실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남한에서 소비를 줄여 북한을 도우면 남한은 영혼이 살게되고, 북한은 육신이 살게 됩니다. 소비를 줄이며 절제하면 환경도 저절로 보전됩니다. 그러면 환경보전과 평화통일은 이루어지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200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우리 그리스도인이 실천을 통하여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김영락 /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