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핵과 기후위기를 넘어 생명과 평화의 세상으로

작성일
2024-07-15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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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부신 햇빛 아래, 야트막한 산에 둘러싸인 작은 항구 마을이 있었다. 대항이라고 불리는 항구 앞으로 잔잔한 바다에 햇볕이 부서지고 있었다. 6월 햇살은 뜨거워도 그 여유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해치진 못했다. 풍경에 취해 연신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와중에 가덕도 신공항반대대책위에서 일하는 김현욱 활동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산들은 깎여나가고, 바다는 매립되어서 이곳이 공항의 활주로가 됩니다.”

종교환경회의는 2024년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생명 평화 순례를 했다. 10일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향하는 길에 먼저 밀양을 방문하여 기도회를 했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를 오랫동안 밀양에서 송전탑 반대 싸움을 이어온 남어진 활동가가 맞이했다. 남어진 활동가가 우리를 안내한 곳은 보라마을. 이치우 어르신이 765kV 송전탑 문제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곳이다. 이치우 어르신의 논 한가운데로 지나는 송전탑 앞에서 천주교 주관의 기도회를 진행했다. 남어진 활동가는 송전탑 건설 이후 주민들이 겪은 고통을 증언했다. 마을 공동체는 파괴되고, 송전탑 반대 주민들은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다. 치유되지 못한 채 상처는 깊어져 가고 있다. 남어진 활동가는 이 상흔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 상흔은 그가 오래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현재 동해안-신가평 송전선로를 비롯해 밀양과 같은 방식으로 주민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나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핵발전소의 추가건설을 말하는 상황에서 어쩌면 다른 지역까지도 송전탑의 문제가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은 깊은 고민을 안겨주는 지점이었다.

밀양을 떠나 순례단이 향한 곳은 가덕도였다. 대항전망대에서 둥글게 모여 선 순례단은 기독교의 주관으로 기도회를 가졌다. 양재성 목사는 멸망으로 가는 넓은 문에 대비되는 좁은 문을 향해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가덕도 신공항반대대책위에서 활동하는 김현욱 활동가는 가덕도 신공항의 문제를 설명했다. 산을 깎고 바다를 메우는 대규모 토목공사이지만 실은 들이는 비용에 비해 경제성은 미미한 공항, 그리고 바다를 메꾸어 활주로를 만들지만 기존 육지이던 지역과 부등침하가 예상되어 안전성도 확보가 힘든 공항. 대규모 토목공사를 5년 만에 하겠다는 현재 국토부의 계획은 사실상 불가능함에도 특별법까지 만들어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추진되고 있었다. 주민들을 내쫓아 삶을 망가뜨리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할 것이 뻔한 공항이 정말 필요한지 아름다운 가덕도의 바다와 산이 묻고 있었다. 순례단은 대항을 지나 외양포로 향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의 포진지로 사용되던 곳을 강점기 이후 주민들의 삶의 터전으로 내어준 곳이었다. 국가 소유지이기에 이곳 주민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반딧불이가 살고 있고, 오래된 동백군락지는 생태적 가치를 가진 곳이지만 개발만을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순례단은 11일 오후 2시경 고리 핵발전소 앞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부산과 울산의 활동가들과 함께 고리 2·3·4호기 수명연장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어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 하나 없는 도로를 걸어 울산에 있는 새울핵발전소까지 갔다. 부산과 울산의 접경지역, 도시와 도시가 만나는 곳, 다른 말로는 도심을 벗어나 있는 외곽지역에 핵발전소는 존재한다. 새울핵발전소 입구에서 원불교 기도회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다시 고리핵발전소가 보이는 있는 기장군의 카페로 이동한 순례단은 정수희 활동가의 이야기를 들었다. 고리핵발전소 싸움의 역사와 주민들의 이야기다. 핵발전 이면에는 지역주민들의 강제 이주와 어업 피해, 보상을 둘러싼 갈등 등이 점철돼 있었다.

마지막 날인 12일 순례단은 부산 서면에서부터 부산시청까지 마지막 순례를 시작했다. 3일 내내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던 부산은 낮 기온이 30도에 육박했고, 3일의 여정에 지친 몸이었으나 순례단은 선전전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시청 앞뒤로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반대하는 농성장과 가덕도 신공항을 반대하는 농성장이 있었다. 순례단은 시청 앞에서 부산의 활동가들과 함께 순례의 주제였던 가덕도 신공항과 핵발전소 문제에 대한 기자회견을 했다.

가덕도 신공항이든 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이든 사실 지방자치단체가 막아선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는 시민들의 안전이나 공간의 생태적 가치보다는 ‘개발’과 ‘성장’에 골몰하고 있다. 종교인들의 2박 3일 생명과 평화를 위한 걸음은 그런 이들을 향해 경종을 울리고 변화를 촉구하는 걸음이었다.

임준형 편집위원(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출처 : 탈핵신문(http://www.nonukes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