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넘어서

작성일
2022-09-0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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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넘어서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 사이토고헤이, 김영현, 다다서재, 2021

얼마 전 유럽에서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라는 것을 만들었다. 핵발전과 가스발전을 포함시키느냐의 문제가 시끄럽기도 했으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이 분류체계가 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다. 막대한 자금을 투여해 이른바 ‘녹색산업’을 육성하여 기존 탄소배출이 심각한 산업들을 대체하겠다는 구상이고, 이를 통해 신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른바 ‘그린딜’을 위한 막대한 자금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기준점을 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 미국에선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상원을 통과했다. 기업의 법인세를 올려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친환경 에너지 부문 지원, 전기차 전환을 위한 지원을 한다는 구상이다. 한국 역시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형 뉴딜을 이야기하면서 디지털과 녹색산업을 이야기 했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과제 앞에서 세계 대부분의 국가가 내놓은 해법은 결국 ‘경제성장’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국가적 차원의 지원과 투자를 통해 기업들의 전환을 이룩하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정책 방향은 결국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경제성장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부분의 국가에서 절대적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끝없는 성장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엔트로피의 법칙 같은 어려운 이야기를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지구가 한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랜 기간동안 인류가 자연과 맺어오던 관계, 즉 자연의 순환 그대로를 지켜 살았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지구를 한계까지 착취했고, 그 결과는 기후위기라는 방식으로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오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성장’이라는 목표, 그리고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이 위기를 불러오는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이라는 망령과 결별하지 못했고, ‘자본주의’라는 악령에게 사로잡혀 녹색산업의 성장을 통해 인플레이션도 극복하고, 기후위기도 넘어서보겠다고 앞다투어 경쟁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의 저자 사이토 고헤이는 기후위기의 원인을 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빚어낸 제국적 생활방식의 문제로 인식하고, 수탈과 부정의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첫머리를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인간 뿐 아니라 자연을 약탈하면서 ‘성장’해왔고, 이미 한계 이상으로 수탈하여 지금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위기를 해결한답시고 내놓은 해법이란 것이 결국 토머스 프리드먼과 제러미 리프킨 등이 주장하는 ‘그린 뉴딜’이다. 저자는 그런 생각들을 일컬어 ‘기후 케인스주의’라고 명명한다. 그들은 기후변화 극복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 체제를 대안처럼 말한다. 하지만 저자의 눈에 그들의 이론은 ‘지구 한계’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는 반쪽짜리일 뿐이다. 기술의 진보를 통해 ‘디커플링’, 즉 성장은 하지만 오염도는 줄이는 상황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성장’을 벗어나 이제는 ‘탈성장’을 이야기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저 ‘탈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간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탈성장’인지가 중요하다. 지금의 체제를 그대로 둔 채로 ‘성장’을 멈추는 것은 지금 우리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보듯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는 일에 다름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런 측면에서 다시 맑스를 주목한다. 최초 생산력 지상주의자였던 맑스가 아닌 <자본>을 집필할 당시 농학자와 화학자들이 문제제기한 생태학적 측면에 주목했던 맑스 말이다. 저자는 맑스가 생산력 지상주의자에서 생태사회주의로의 이행도 신기할 노릇인데 이후 심지어 더 나아가 ‘탈성장 코뮤니즘’에 이르는 인식의 변화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맑스를 통해 ‘탈성장’론을 재구성하는 기획을 제시한다.

사이토 고헤이는 기후위기 시대에 필요한 것은 코뮤니즘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또 단순히 그것이 기술의 발전을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선을 긋는다. 영국의 젊은 저널리스트 애런 바스티니는 이런 가속주의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 하나다. ‘생태근대주의’라고도 불리는 이 생각은 자연과의 공존이 아닌 관리를 통해 인간의 생활을 지키려는 목적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단순히 코뮤니즘의 사회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6장부터 저자는 맑스의 생각을 토대로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자본주의가 사유화하고 파괴한 ‘커먼즈’의 회복이다. 커먼즈의 상실 혹은 사유화가 생태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기도 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공공의 것을 누군가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킬 때 결국 그것은 모두에게 피해가 되는 법이다. 이를 제어하고 공공의 것으로 되돌릴 때 그것은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일일 뿐 아니라 기후위기를 극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어 저자는 탈성장 코뮤니즘이 세계를 구한다고 이야기 한다. 저자는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나아가기 위한 주춧돌로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생산력을 벗어나 ‘사용가치’를 중시하는 경제로의 전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삶의 질 향상, 획일적인 분업을 폐지하고 노동의 창조성 회복, 생산과정에서의 민주화를 통한 경제의 감속, 인간의 힘으로 할 수 밖에 없는 필수 노동(돌봄노동 등)을 중시 하는 등의 다섯 가지 방향의 전환을 통해 주춧돌을 놓고 이를 통해 탈성장 코뮤니즘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를 이루는데 있어서 수단이자 지랫대로 쓸 수 있는 것을 저자는 ‘기후 정의’라고 이야기 한다. 누구도 뒤쳐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 기후위기로 인해 고통받을 사회적 약자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사회가 함께 애쓰는 일을 통해서 우리는 ‘탈성장’이 고통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구하는 일이 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유럽의 농민들은 수 십 일 동안 지속되는 가뭄과 폭염에 시름하고 있고, 파키스탄에서는 1,000명이 넘는 사람이 폭우와 홍수에 죽어간다. 이 글이 게시되는 즈음에 엄청나게 강력한 태풍이 한반도에 들이닥친다고 경고하고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식량의 문제다. 가뭄이 지속된 동네에서 농사가 제대로 이뤄졌을리 없고, 폭우로 인한 홍수가 지난 자리에서 항상 농부들은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태풍 힌남노가 지난 이후 농부들은 쓰러진 볏단을 일으켜 세우면서 슬픔에 잠길 것이다. 그때 우리는 어떤 세상을 보게될까? 이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불러온 심각한 물가상승에 보태어 기후재난이 불러온 식량생산감소로 인해 가난한 나라들에선 굶어 죽는 이들이 속출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토론자리에선가 ‘탈성장’을 말했다가 그럼 다 굶어 죽자는 말이냐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오히려 성장에 몰두하다가 다 굶어 죽는 일이 멀지 않았다고 그때는 말하지 못했으나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속 불가능한 자본주의를 지키려고 애쓰는 동안 우리의 삶이 백척간두에 놓였으니 이젠 우리 사회가 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가치를 재점검하고 되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일에 어쩌면 이 책이 논쟁의 단초를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국장)
  • 바이블 25와 당당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