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멈춘 시간 속에서 찾아야 할 희망

작성일
2020-06-20 23:04
조회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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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춘 시간 속에서 찾아야 할 희망


강민주 집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 동숭교회)

속도
- 유자효

속도를 늦추었다.
세상이 넓어졌다.
속도를 더 늦추었다.
세상이 더 넓어졌다.
아예 서 버렸다.
세상이 환해졌다.

세상이 멈춰 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휩쓸고 아직도 그 실체를 모두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한순간에 전 세계가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지켜 본 사람들은 이 바이러스가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인식했다. 코로나는 사스에서부터 17년간 진화하며 인류가 바이러스를 완전히 통제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앞으로의 세상을 넓고 구체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서구 선진국들에 비해 방역과 의료시스템과 정부의 환상적인 콜라보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낙관하고 방심하기 보다 우리가 간과 해서는 안 될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한국은 코로나19에 있어 대처 능력이나 의료 시스템은 1위이지만 기후위기 대응은 후진국이라는 점이 우리의 현 주소이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이다. ‘경제발전으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자연재해 문제를 어떻게 다루고 있고 대처해 나가는가?’는 미래 사회 생존에 가장 큰 과제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자연재해이다. 사람들이 ‘발전’을 위해 숲을 훼손하고 이로 인한 야생동물의 접촉이 불러온 재앙이다. 산업발전=경제발전=지구온난화=자연재해로 이어진다. 바이러스 하나가 현대 문명 곳곳의 구조적 결함까지 드러내며 인명을 희생 시키고 경제를 마비 시켰다. 그런데 여기서 더 무서운 일은 이상기온, 홍수, 쓰나미,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는 생존에 가장 기본인 식량부족으로 이어져서 전염병으로 죽는 사람보다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전 세계를 혼란과 무서운 전쟁으로 몰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조천호 교수는 “감염병과 기후위기는 차원이 다르다. 감염병 이후 일상으로 회복해 나가는 것처럼 기후위기를 다뤄서는 안 된다.”라고 말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코로나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혼란스럽고 경제활동이 멈추어선 어두운 지금이 어찌할 수 없었던 세계 경제 시스템을 바꾸고 기후위기를 개선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희망의 시기 일수 있다. 물론 인류의 이런 어려움은 과거에도 있었다. 닥친 어려움을 극복하고 위기상황을 전환 시키며 진화된 문명을 이어나가고 발전해 왔다 그런데 이 ‘발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말의 뉘앙스가 혼란을 주고 있다.

도대체 무슨 발전, 어떤 발전을 말 하는가? ‘발전’은 곧 ‘환경파괴’인 것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출산율을 높이고 인구증가를 기본으로 한 ‘발전’은 곧 개체의 멸종과 인류의 멸망을 예고한다. 세계 인구는 매년 1억 명씩 증가하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인구는 77억 명이다.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식량과 생필품 생산을 위한 경제 활성화와 경제 발전은 어마 어마한 쓰레기와 이산화탄소의 축적을 야기하고 환경파괴를 당연시 하고 있다. 지금 인류는 선택 앞에 놓여 져 있다. 멈췄을 때 돌아보고 잘 못된 것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면 인류에겐 희망이 있다. 그러기 위해선 완전한 인식의 전환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유일한 인류 생존의 희망이 될 것이다.
그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과 단체와 매체에서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성토해 왔고 경각심을 주려 노력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고 수레바퀴를 한 마리 사마귀가 막고 있는 형국이었다. 코로나19는 기후변화로 닥칠 창조 세계의 대 참사를 막기 위해 인류에게 주는 마지막 경고 이자, 배려(?)인지도 모른다.

코로나로 인해 알게 된 낮의 그 맑고 파란하늘과 밤에 선명하게 쏟아지는 별을 계속 볼 수 있도록 멈춰선 이 시간이 유일한 ‘에덴’ 지구를 위해 지혜를 모으는 쉼이 되길 간절히 바라며 희망을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