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마지막 세대, 혹은 최초의 세대

작성일
2020-05-1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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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대, 혹은 최초의 세대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아직 진행 중인 상황이지만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국가별로 대조적인 상황이 전개되었다. 일부 국가들에서는 느슨한 대응으로 감염이 급속도로 증가했지만 다른 국가들에서는 즉각적인 봉쇄조치와 철저한 방역, 감염경로의 추적으로 감염의 확산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남겨준 교훈 가운데 한 가지는 위기상황을 신속하게 정확하고 인식할 때 비로소 적절하고 실현가능한 위기대응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일 것이다.

기후변화가 위기상황으로 인식된 것은 비교적 오래 전의 일이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열린 ‘유엔환경회의’에서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기 전인 1980년대에 ‘세계기상회의’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조직이 되었었던 이유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에 지구적인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고 기후위기의 심각함을 인식한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제시한 수많은 과학적 연구 결과로 채워진 보고서와 무수한 기후변화의 사건을 경험하였지만 아직까지도 일부 국가의 정부, 기업, 시민들만이 기후변화의 위기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을 뿐이다. 기후위기에 있어서 신속한 상황인식과 적절한 대응의 단계는 이미 지나버린 것이 분명하다. 또한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정확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실현가능한 위기대응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다.

지난 2019년 9월에 뉴욕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를 앞두고 전 세계 185여 개의 도시에서 760여만 명의 시민들이 참여한 ‘기후파업’이 진행되어 세계 각국의 정부가 ‘기후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 환경, 노동, 종교, 보건, 과학, 청소년, 에너지, 정당 등 각 분야 380여 개의 단체가 함께하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결성되어 9월 21일에 13개 도시에서 7,500여 명의 시민들이 기후위기 비상행동 시위에 나섰다. 기독교계를 대표해서 기독교환경운동연대가 운영단체로 참여하여 있는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짧은 시간 동안에도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 기후학교 개설, 온실가스 배출기업 항의, 기후국회 총선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일은 우리나라의 정부와 국회, 지자체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일이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기후변화가 위기상황이며 비상사태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위기는 사회에 불안정하고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는 비정상적인 사건이다. 작금의 기후변화는 인간 사회의 경제, 정치, 문화를 넘어서 지구 생태계 전체의 불안정과 위험을 가져와 지구 생명 전체의 존재 기반을 뒤흔드는 비정상의 위기상황이다. 때문에 통상적인, 정상적인 상황대응으로는 위기의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후위기가 초유의 비상사태라는 인식 속에서 위기 대응에 전력을 다하여야 한다. 때문에 기업과 경제기구, 시민사회, 각 개인의 인식을 넘어서 가장 큰 권력이 집중되어있는 국가 권력기구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인식해야만 실현가능한 위기대응이 가능하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부와 국회는 국제사회에서 ‘기후깡패국가’라는 오명으로 불릴 정도로 그동안 탄소배출을 최소화하여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는 실망스러운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기후위기 비상행동에서는 지난 4월 선거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한 67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96%가 이에 동의한 결과를 바탕으로 새롭게 구성될 21대 국회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기후위기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정부 차원의 ‘기후위기 비상사태’ 선언과 함께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비상행동을 위한 ‘특별기구’를 조직하고 ‘특별법’을 만드는 일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요구가 지향하는 지점은 결국 기후위기에 원인인 온실가스의 발생을 최소화하여, 온실가스의 배출이 제로가 되도록 정책의 주된 방향을 기후위기의 대응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특별보고서에서는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10년 대비 2030년까지 45%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해야하며, 2050년까지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흡수가 서로 완전히 상쇄되는 이른바 ‘Net-Zero’가 달성해야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에너지를 시작으로 토지, 도시 및 기반시설, 산업 시스템 등등 전 분야에 걸쳐 ‘빠르고 광범위한 전환’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는 정부의 위기 대응정책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지자체, 시민사회, 산업계 모두의 대응이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미 작년 11월 28일 EU 의회는 ‘기후 환경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산업, 금융 등 관련 분야의 기후 환경 정책을 펼쳐나가고 있고, 독일 정부는 2038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을 중단하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특별보고서는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한 에너지 시스템의 투자가 2016년에서 2035년 사이에 연간 약 2조 4천억 달러가 들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이는 세계 GDP의 약 2.5%에 해당하는 금액일 뿐이다. 우리 정부와 사회가 코로나19 위기대응에 세계적인 모범적인 사례가 되었듯이 우리 정부와 사회 역시 기후위기 대응에도 선한 힘과 의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21대 국회가 지난 세기 한국사회 최우선의 가치였던 경제성장 대신 생명과 안전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드는 ‘전환 국회’가 되어서 기후위기에 맞선 정부, 기업, 시민들의 연대와 협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생명의 상호의존성과 공공성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기후위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기후위기를 넘어서서 새로운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최초의 세대가 될 수도 있다. 결과는 우리의 몫이다.


(이 글은 '성서와 문화'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