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시대 텀블러 사용법

작성일
2021-02-01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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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시대 텀블러 사용법

<기후위기와 자본주의 : 체제를 바꿔야 기후변화를 멈춘다 (조너선 닐 저, 김종환 역, 책갈피, 2019년) > 서평

마스크와 핸드폰 말고, 직업상 집을 나설 때 마다 꼭 챙기는 물건이 하나 있다. 스테인리스 텀블러. 텀블러를 손에 들고 오늘 하루 한 번 쓰고 버리는 컵을 쓰지 않음으로 소중한 지구를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진다. 텀블러 하나 쓰면서 무슨 굳은 결의씩이나 필요한가 하겠지만 이미 이 세상은 일회용 컵에 점령되어버린 세상, 여차하는 순간 종이컵에 담긴 커피와 플라스틱 물병에 담긴 생수가 빈틈을 파고든다. 나의 굳은 결의는 너무나 쉽게 허물어지기 일쑤. 그리고 밀려오는 열패감. 나는 오늘도 실패했구나. 실패가 만성화되면 두려움이 되고 만다. 어느 순간부터 텀블러를 손에서 멀리 하게 된다. 내가 고분고분 맞서지 않는 한, 참 아름다운 세상이니까.

기후위기와 자본주의는 기후위기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의 방향을 어떤 곳으로 정해야 할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 조너선 닐은 사회운동과 환경운동이 힘을 모아 세계 자본주의 산업 체제를 바꾸는 기후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조너선 닐은 이미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탄소배출을 저감할 수 있는 기술은 충분하지만 기업과 정부가 만들어낸 자본주의 산업 체제가 이윤추구와 패권쟁탈을 포기하지 않음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한다. 세계의 불평등과 부정의를 바로잡아 생태적인 경제체제로 변화시킴으로써 기후위기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것. 북극곰이 얼음을 찾아 헤엄치는 것도, 산불로 코알라가 타죽는 것도, 남태평양 섬나라 사람들이 집을 잃고 떠돌게 된 것도, 몽골 유목민이 소를 먹일 풀들이 사라진 것도, 이산화탄소를 뿜어대는 화석연료 산업과 여기에 엄청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는 정부가 책임을 져야할 일이지 아등바등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조너선 닐은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이 개인적인 의무감, 혹은 죄책감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위한 시민들의 연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즉, 이제 우리는 아침마다 부담감과 두려움을 가지고 텀블러의 눈치를 볼 것이 아니라, 텀블러를 당당히 손에 들고 나가서 기후정의를 위해 탄소배출로 남들이야 어찌되는 말든 이윤을 추구하려는 이들에게 집어던져야 한다. 그렇다고 매일 텀블러를 집어던질 수는 없는 노릇. 대신 텀블러는 다시 나의 굳은 결의를 다지는 상징으로 활용을 하자. 이 텀블러에 나의 분노를 가득 담아서 세상의 기후악당들에게 오늘 하루 기후정의의 참교육을 실천하겠노라고. 그래도 세상을 바로잡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이글은 1월 30일 바이블25 오늘의 책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