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사업’ 원점에서 돌아보기를

작성일
2020-09-06 21:44
조회
1153

KakaoTalk_20200810_130732087.jpg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 사업’ 원점에서 돌아보기를


신 보 경 포도원감리교회


한 달이 넘게 장마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중국 양쯔강 일대가 모두 물에 잠겼다는 뉴스가 한참이었는데, 이제는 그 비구름이 우리나라를 덮쳤습니다. 어쩌면 기후위기가 원인이 되어 내렸을 큰비는 코로나19로 지친 우리의 삶을 더 힘겹게 합니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인간의 생태계 파괴로 서식지를 빼앗긴 야생동물들이 인간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듯이 말이 없고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자연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방법으로 인간을 응징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생명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이라도 균형이 깨지면 지구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는 사실을 코로나19로 인해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심각한 현상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면 이제는 삶을 질을 고민하고 미래지향적이고 지속가능한 경제를 화두에 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함양과 구례, 산청과 남원에 이어 하동군에서는 지리산 개발로 돈을 벌어들일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하동군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이 사업은 지리산을 시작으로 전국의 산을 파헤치는 시발점이 될 뿐 아니라 주민들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켜 상처만 남길 것입니다. 이 사업의 시작은 전경련이 제안한 '산악관광 활성화를 위한 3대 분야 건의'(2014)였습니다. 전경련 등 기업들은 더 이상 개발할 곳이 남아있지 않자 전국의 산을 돈 되는 땅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경련에서 제안한 산악관광 활성화 방안은 자연공원(국립공원) 정상 부근에 친환경 휴양림 허용, 자연공원 내 케이블카, 산악열차 확대, 급경사 산지에 관광숙박시설 허가, 산지 내 승마장 건립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이후 정부와 지자체들에서 쏟아낸 법률안은 기본계획부터 전경련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하동군에서 산악관광을 논하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으로, 처음에는 ‘지리산 무지개 프로젝트’라는 이름이었으나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 다시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로 이름이 바뀌면서 그 이름에 걸맞게 개발의 규모 점점 커집니다.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는 하동 지리산 형제봉을 중심으로 악양면, 화개면, 청암면 일대에 산악열차 15km, 모노레일 2.2km, 케이블카 3.6km와 호텔, 미술관 등을 설치 운영할 것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악양 형제봉은 지리산 국립공원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온 마지막 봉우리로 자연환경 보전법이 규정하는 ‘생태자연도 1등급’ 권역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이곳은 지리산 국립공원과 지리적, 생태적으로 이어져 있어 지역적으로 보존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또 이 일대는 정부가 20년에 걸쳐 복원한 멸종 위기 종 1급인 반달곰의 주요 서식처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산악관광개발에 번번이 실패한 세력들의 눈에는 이곳이 국립공원을 비껴간, 개발하기에 조금 더 손쉬운 지역으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특별법으로 국유림법과 산지관리법을 무력화하면 자그마치 15만 평에 이르는 숲을 자기들 마음대로 개발하고 경제적 이득을 얻는 곳으로 셈한 것입니다. 그리고 산림훼손을 막기 위한 규제를 무력화해서 산지를 개발하는 방법으로 기획재정부의 ‘한걸음 모델’이 내세워졌습니다. 한걸음 모델은 신사업 도입으로 인한 갈등 당사자끼리 한걸음씩 양보해서 더 크게 전진하자는 모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걸음 모델을 통해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면, 어떠한 법적인 규제도 다 풀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산지 관련 규제법을 제정한 이유는 개발에 따른 산림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인데 한걸음 모델이라는 이름으로 이 규제를 풀면 우리 모두가 함께 향유하고, 미래세대와 공유해야 하는 산림자원을 일부 자본의 이익에 독점적으로 귀속시키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산지라는 환경 공공재가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사익재로 전환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한걸음 모델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사업이 ‘ICT 융복합 신기술을 활용한 신사업’이어야 하고, 명확한 이해 관계자끼리 갈등이 발생해야 한다는 조건 둘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하동 알프스 프로젝트’는 철지난 토건사업일 뿐 신기술이랄 것도 없고, 규제의 완화로 신구사업자끼리 이해가 갈릴 때 생기는 명확한 이해관계자란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식적 조정으로 개발 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기획재정부의 의도는 이해당사자가 아닌 지역민 사이에 갈등만 불러오고 있으니, 하동알프스 프로젝트는 한걸음 모델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한걸음 모델이 기획재정부의 작품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사업의 주체는 역시 하동군입니다. 지리산과 섬진강 그리고 남해바다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하동군이 처음 민간투자 사업을 실시한 곳은 바다였습니다. ‘갈사만 조선산업단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옆의 아름다운 바다를 매립한 땅의 이름이고 ‘대송산단’은 갈사만 조선산업단지의 배후 단지로 조성되었습니다. 민간자본을 유치하여 1조5천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자본을 쏟아 부은 대규모 토목공사였습니다. 하동의 미래 먹거리를 위하여 자연을 훼손해도 된다는 논리로 행정의 지휘 아래 법까지 어기면서 진행되었습니다. 결과는 완벽한 실패! 연 100억의 이자를 물어주고 있는 것이 하동군의 현실입니다.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는 민간자본은 빚을 대신 갚아주지도, 하동군의 미래를 걱정해 주지도 않습니다. 하동알프스 프로젝트에 투여될 민간자본 1500억이 어떤 식으로 군민의 목을 조르게 될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합니다. 하동의 100년이 암울해 지는 건 순식간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동군이 이 사업을 다시 원점에서 논의하길 제안합니다.

진정 하동이 가진 가치가 무엇이며, 그 가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한가, 하동의 미래를 위해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누가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실패했을 때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미래를 위해 남겨놓을 여백을 고려했는가, 그리고 코로나19와 기후위기 시대에 따른 올바른 대응인가, 등등...

아직 삽을 뜨지 않은 지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삽이 떠지고, 숲이 파괴되고 나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상처가 깊어지면 회복이 어려워지는 건 자연이나 사람들 마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늦지 않았습니다. 아직은 시간이 있습니다.

(이 글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소식지 녹색은총 2020년 하반기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