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

작성일
2020-06-12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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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

임준형 간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2018년 6월 도로 확장을 명목으로 수많은 나무들이 베어졌다. 많은 이들이 그 광경을 사진으로 접하고는 크게 슬퍼했다. 특히 몇 명의 사람들은 더 많은 나무들이 죽어나가기 전에 지키겠다며 온몸으로 포크레인과 전기톱날을 끌어안고 버티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비자림로라고 부르던 삼나무 숲 길이었다. 어떤 이는 그 곳에 나무 움막을 가지고 들어가 그곳에서 살기 시작했다. 매일의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사랑하는 숲이에요"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아직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작은 나무들을 옮기는 일도 했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천연기념물이라고 불리는 희귀종, 멸종위기종들이 존재하면 공사를 멈출 수 있다는 말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새소리를 녹음하고, 희귀한 동물을 찾아 다녔다.

제주도가 이 도로를 확장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였을 때, 제주의 환경단체들은 반발했다. 도로를 확장해서 얻을 수 있는 효과가 고작 '28초'였기 때문이다. 그 28초를 위해 30년 동안 아름드리로 자라난 나무 수 백 그루를 순식간에 베어버렸고, 그 나무 그늘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가던 수많은 생명들을 내쫓고 짓밟아버린 것이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도로는 금백조로라는 아름다운 들판을 지나 제2공항 예정지라는 성산읍으로 향한다.

애초에 제주에 두 개의 공항이 필요한지에 대한 깊은 토론은 없었다. 지역주민들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도 없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이 공항 부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언론 보도를 통해 접했다. 날벼락 같은 소식에 주민들은 급히 대책위를 꾸려 지금까지도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도청 앞에 농성장을 차렸고, 단식과 상경 투쟁, 환경부 앞 노숙 농성, 광화문 세종로공원 농성장까지 지겹도록 오래 이 싸움을 이어오고 있다. 처음엔 그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소소한 삶을 지키려는 노력이었으나 시간이 지나고 의미를 알아갈수록 이 싸움은 더욱더 포기하기 힘든 싸움이 되었다.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과 그것을 떠받치기 위한 과도한 개발사업들로 인해 제주의 아름답던 자연은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관광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는 산을 이루었다. 호텔과 식당들이 흘리는 오폐수는 바다를 오염시키고, 주변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이들의 삶을 위협했고, 리조트 등에서 마구 퍼 올린 지하수는 제주 사람들의 일상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제주의 허파라는 곶자왈은 개발로 인해 파괴되었다. 땅값은 폭증하고, 높은 땅값으로 인해 농사로는 감당하기 힘든 세금이 부과되었다. 농민들이 자신들의 생계터전인 땅을 팔아넘길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 것이다. 지금의 상황만으로도 이미 제주는 지속 가능한 섬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섬에 두 개의 공항과 더 많은 관광객이 필요할까?

작년 5월, 기독교사회선교단체 실무자들과 현장을 보기 위해 제주를 찾았다. 비자림로 삼나무 숲 곁 천미천 바위 위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청하고 있던 뱀 한 마리를 보았고, 천미천 곁에는 삼나무 숲 사이로 100년을 넘게 살아온 팽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숲을 걷는 동안 수십 종의 새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지키던 숲지기는 우리에게 100년 된 팽나무를 끌어안고 기도해주기를 요청했다. 우리의 기도가 사랑하는 숲을 지켜주기를 바라는 듯 했다. 다행히 우리가 다녀간지 며칠 지나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팔색조와 아기뿔쇠똥구리를 발견한 덕에 비자림로 공사는 잠시 멈추어 있다(4월 21일 제주도의회에서 원희룡 지사가 5월부터 공사를 재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숲에서 100년을 살아온 나무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명들이 삶의 작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세상을 우리는 정의롭다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하는 숲'을 창조하신 분의 손길이 친히 숲을 지켜주시길 기도해야겠다.

*이 글은 한국기독공보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