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낮아지고 느려지면 더 잘 보입니다.

작성일
2020-06-04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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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아지고 느려지면 더 잘 보입니다.

김신형 목사(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집행위원, 자연드림교회)


오늘도 눈을 뜨며 해야 할 일을 생각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에 파묻혀 살기도 합니다.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 그리고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살면 좋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첫 번째 일(사명)을 주시는데,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창세기 1:28)

우리는 어릴 때부터 동물과 식물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은 사람뿐이며 사람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게 됩니다.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볼 때, 이 세상의 주인처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는 올바른 모습일까요?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것을 잘 관리하라는 위탁의 말씀이며, 사람은 세상의 주인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서 세상을 관리해야 할 책임을 맡은 존재임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책임을 잘 감당하고 있을까요? 요즘, 기후변화로 인해 봄을 만끽하기도 전에 여름철의 무더위를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봄을 좋아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꽃들이 활짝 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식물이 꽃을 피우는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종류마다 다르지만, 개량종이 아닌 경우 2주일에서 한 달 정도입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라도 세게 불면 더 짧기도 합니다. 이렇게 꽃이 지면 사람들은 그 식물에게 더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초록색 잎만 달려있는 식물이 화려하지 않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되면 곤충 중에서도 목소리 크기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매미가 울어댑니다. 우리는 매미를 보면서 측은한 마음을 가집니다. 땅속에서 6~7년을 지내야 땅 위에서 겨우 2~4주를 살 수 있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식물과 동물들을 어떻게 바라보실까요?
과연 식물의 생애 중 하이라이트는 꽃이 필 때뿐일까요?
과연 매미의 생애 중 하이라이트는 한 여름 나무에 붙어서 소리를 내는 한 달 정도의 기간일까요?

식물이 꽃을 피우는 것, 매미나 나비가 성충이 되어 날아다니는 것은 모두 번식을 위한 것입니다. 특히, 씨앗이 멀리 날아가고 매미가 땅속에서 나와 날아다니는 것은 근친교배를 방지하고 땅에 충만하기 위한 자연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식물이 겨울 동안 쉬고 봄에는 싹을 틔우고 여름에는 열심히 광합성 작용을 하는 것은 단지 꽃을 위해 존재하는 과정이 아닌 모든 과정이 식물의 삶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꽃만 봅니다.

매미에겐 애벌래의 모습으로 땅속에 사는 6년이라는 시간이 날기 위해 준비하는 지루한 시간이 아닌 그들의 삶 자체입니다. 그런데 사람은 날아다니는 매미만 매미로 인정하지요.

사람에겐 땅과 모든 생명들을 잘 관리해야 할 일(사명)이 있습니다. 이 일은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닙니다. 매우 즐겁고 행복한 일입니다. 숲에서 곤충이나 물고기 한 마리만 있어도 하루종일 신나게 지내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즐겁고 의미있는 일(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웃 생명들의 삶, 생태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하게 되며, 오해가 쌓이면 갈등으로 인해 평화가 깨지고 맙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 사람을 잘 모르셔서 좀 알아보시고자 오셨을까? 기독교에서 생명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는 사랑이며 사랑의 첫 걸음은 상대방과 눈 높이를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기를 비워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다.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끝없이 높아지려는 일에서 이제는 이웃 생명들과 눈 높이를 맞추기 위해서 낮아지고 속도를 줄이는 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