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이제는 녹색은총으로!

작성일
2021-05-26 11:13
조회
1102

landscape-4765322_1920.jpg

이제는 녹색은총으로!
푸른 계절이 왔다. 나무는 가지마다 초록빛 반짝이는 이파리를 풍성히 내고, 논에는 파릇파릇한 어린 모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밭에는 어린 채소들이 자라고, 산과 들에는 온갖 풀꽃이 핀다. 겨울의 황량함을 이겨내고 가지각색의 꽃들로 물든 봄의 찬연함과는 다른 초록 생명력의 계절이다.
우리는 대가 없이 받는 선물을 ‘은총’이라고 부른다. 우리 기독교인이 값없이 받은 은총, 은혜라고 부르는 것은 주로 십자가의 은총, 즉 구원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은총을 일컫는다. 속죄를 통한 구원의 과정에서 베푸신 희생과 은총 말이다. 그런데 그 은총을 강조하다 보니 우리에게서 잊혀진 은총이 있다고 생태신학자들은 이야기한다. 바로 창조 세계를 통해 내려지는 은총이다. 숲과 산, 들판과 강, 바다까지, 그리고 그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과 우리를 둘러싼 대기와 불어오는 바람, 내리는 비 마저도 우리는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았으나 우리에게 이미 주어진 것들이다. 이런 은총을 생태신학자 제이 맥다니엘은 “녹색은총”이라 명명한다.
유엔환경계획(UNEP,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은 2021년 세계 환경의 날의 주제를 생태계 복원(Ecosystem Restoration)으로 정했다. 우리는 여기서 생태계(Ecosystem)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지구는 사실상 기나긴 진화의 과정과 상호작용을 통해 조화를 이루는 체계를 만들어왔다. 인류를 포함하여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지구를 떠나서는 살 수 없고, 이 생태계가 아니라면 태어날 수도 없었던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인류 역시 이 생태계에 속해있는 존재라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 인류는 지금의 생태계, 온화한 기후와 그로 인한 자연의 풍성한 선물을 통해 지금의 문명을 이룩했다. 하지만 이 생태계가 지금은 인류로 인해 심각한 파괴를 경험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이 환경의 날의 주제로 복원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바로 인류로 인해 생겨난 이 파괴를 어떻게든 되돌려놓지 못하면 인류 자체가 멸종의 위기에 처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생태계(Ecosystem)’는 ‘녹색은총’으로 바꾸어 말해도 손색이 없다. 그리고 인류는 이 은총을 깊이 감사하고 지키며 살아왔다. 많은 이들이 인류가 처음부터 생태계 시스템을 망가뜨리며 살아온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은 특정한 몇몇 문명(가부장적이고 전체주의적이고, 폭력적이고, 권위주의적인)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인류는 은총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지키고 있었다. 땅을 착취하지 않는 농사를 지었고, 바다를 훼손하지 않는 어업을 했다. 강과 산을 파괴하는 일도 없었다. 초원과 사막에서 사는 이들도 나름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갔다. 물론 은총을 누리는 삶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고, 책무를 충실하게 따랐을 때 은총이 우리의 삶을 지켜준다는 사실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은총에 대한 감사를 잊은 지금의 문명이 등장한 것은 기나긴 인류 역사에서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찰나의 순간에 인류는 어마어마한 변화(멸종에 이를지도 모를)를 일으키고 있다.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에 맞추어 한국교회는 6월 첫 주를 ‘환경주일’로 지킨다(감리교는 6월 둘째 주 환경선교주일로 지킨다). 2021년 환경주일의 주제는 “이제는 녹색은총으로!”, ‘기후위기 시대, 생태적 전환을 이루는 교회’이다. 바울 사도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당부한다.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 새번역) 하나님의 백성이 제국 로마의 법도를 따라 살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도 당면한 기후위기 시대 하나님의 백성답게 “이제는 녹색은총으로” 돌아가야 한다.
- 임준형(기독교환경운동연대 간사)

* 월간 새가정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