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와 목회

작성일
2021-03-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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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의 교회와 목회
- 기후위기 시대, 탈탄소교회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A집사는 새해가 들어 직업을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닌지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A집사의 직업은 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는 목수입니다. 그런데 작년 여름 두 달 가까이 이어진 장마로 일을 쉬어서 생계가 곤란해진 데다, 곧바로 이어진 폭염으로 무더위 속에서 무리하게 일을 하다 몸이 상했기 때문입니다. A집사의 현장 동료들도 작년 여름을 기억하면서 적어도 여름 한 철만이라도 실내에서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A집사도 실내 인테리어 목공 일은 그래도 한여름 땡볕은 쬐지 않으니 그나마 좀 낮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B권사는 이번 혹독한 한파에도 전기장판에 이불만 덮어쓰고 겨울을 보내고 있습니다. B권사는 가족들과의 연락이 끊겨 마을 모퉁이 낡은 집에서 혼자 지내신지가 꽤 되었습니다.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보조금으로는 기름을 채워야하는 보일러를 제대로 가동할 수도 없을뿐더러, 워낙 낡은 집이라 단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보일러를 켜두어도 온기는 그때 뿐, 금방 냉골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년 같으면 마을회관에 비슷한 처지의 노인들이 따뜻한 바닥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겠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마을회관 문을 열 수 없다고 합니다. B권사는 어서 겨울이 지나가 집안에 봄볕이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유독 올해 겨울은 춥고 길게만 느껴집니다.

C씨는 평일에는 공장에서, 주말에는 이삿짐센터에서 일을 합니다. C씨는 몽골 사람입니다. C씨의 고향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차로 꼬박 사흘을 가야 하는 시골 마을입니다. C씨의 가족들은 제법 많은 소와 양을 키우는 편이어서 C씨가 울란바타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생님이 되는데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지금 고향을 떠나 울란바타르 외곽에서 게르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고향 마을에 가뭄이 계속되어 가축들에게 풀을 먹일 초원이 없어진 데다, 수시로 전염병이 돌아 더 이상 가축을 기를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나마 신분이 확실한 C씨가 돈을 주고 연수 비자를 받아 한국에 들어와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C씨는 조만간 가족들이 다시 초원에서 가축들을 기를 수 있게 되기를, 그도 몽골로 돌아가 다시 교사가 되는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서로 다른 고민을 하는 듯이 보이는 A집사, B권사, C씨는 기후변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이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후위기의 시각에서 A집사는 기후변화로 더욱 힘들게 일을 해도 소득이 감소하고 있는 ‘기후 약자’, B권사는 기후변화로 열악해진 생활환경 속에서 삶의 질이 저하된 ‘기후 취약계층’, C씨는 기후변화로 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생활을 하는 ‘기후 난민’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먼 미래의 일이 아닙니다. 기후변화는 북극의 얼음 위에서 살고 있는 북극곰이나 바닷물이 차오르는 태평양의 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후위기는 우리의 이웃들에게, 그리고 지금 우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인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 교회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코로나19로 교회의 예배조차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금 우리의 현실 역시 기후위기로 인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은 기후변화가 세계적인 바이러스 확산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해왔습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지구 생태계의 변화가 다른 생물을 매개로 하는 바이러스와 인간의 접촉을 확대시키고 있고, 이로 인해 코로나19와 같은 인수공통 감염병의 확산이 일상화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후위기로 인한 팬데믹의 예측은 우리 교회의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교회가 기후위기에 대한 교회적, 목회적 적응과 대응을 준비해야 하지 않는다면 더욱 심화되는 기후위기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앞으로 어떻게든 지구 생태계와 우리 사회의 모습을 따른 낯선 모습으로 만들 것입니다. 과학자들은 최근 ‘기후 생태계 변화 예측 통합평가모형’(IAMs)을 통해 기후위기로 인한 지구 생태계와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를 예측하였습니다. 과학자들은 기후위기의 원인인 온실가스 배출을 얼마나 감소시키고, 저탄소 구조로 사회 구조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모두 여러 시나리오를 도출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이 붕괴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경쟁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계속해서 증가시시고, 지금과 같은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 구조도 바꾸지 않는다는 가정을 할 때, 2050년경에 지구 평균기온 상승은 2도 이상 오르게 되어, 기후 적응력이 약한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되고, 식량생산의 감소와 안보 위기 상승으로 세계경제 체제가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반면 희망적인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세계 각국이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통해 협력을 이루어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더 이상 없는 넷제로(Net-zero)를 이루게 된다면 지구 생태계와 사회의 위기는 여전히 남아있어도 붕괴를 피하고 지속가능사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에너지를 집약적으로 사용하는 경제 시스템을 저성장 순환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가정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붕괴의 시나리오가 더 현실적입니다. 세계는 아직 국제적 협력보다는 경쟁을, 체제의 전환보다는 체제 유지에 골몰해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창조의 세계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함께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참 좋은 모습으로 창조하신 세상을 사람들의 끝없는 탐욕으로부터 지켜내야 하는 거룩한 청지기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업문명의 이윤추구라는 탐욕으로부터 비롯된 기후변화는 지금 하나님의 창조세계의 온전성(Integrity of Creation)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기입니다. 교회는 그동안 이천여 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회경제적인, 생태환경적인 위기를 경험해왔습니다. 교회는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신뢰를 받기도 했고, 낡은 포도주 부대처럼 버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교회가 직면한 기후위기의 불안 가운데에서 사람들의 안전한 삶과 우리 사회의 생태적인 전환의 희망을 보여준다면, 기후위기는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의 일차적인 과제는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들은 지난 200여 년의 화석연료에 기반한 산업문명 속에서 살아오면서 지독한 탄소중독에 빠져있어 탄소배출을 저감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산업 활동을 위한 에너지 생산, 산업 공정, 수송 과정에서만이 아니라 개인의 생활과 교회의 여러 활동에서도 상당한 양의 탄소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탄소 발생을 최대한 저감하여 탄소배출이 없는 ‘탈탄소교회’를 빠른 시기 안에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기후위기 시대의 교회의 일차적인 과제입니다.

교회가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릴 때도, 수련회와 같은 교육을 위해 모임을 할 때도, 친교를 위한 식사를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해외의 선교지를 방문하기 위해 장거리를 이동할 때도 탄소는 발생합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빠른 시간 안에 줄이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탈탄소교회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이미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오래 전부터 ‘RE100’이라는 캠페인을 통해 사용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여 탄소배출이 없는 기업이 되기 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또 해외 국가들 가운데에서는 재생에너지 정책을 통해 일시적으로나마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를 통해서 충당한 국가들도 있습니다. 문제는 기술적, 정책적 가능성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의지입니다.

우선 현재 우리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만 꼽아보아도, 교회가 사용하는 전기를 탄소배출이 없는 깨끗한 전기로 만들기 위해 예배당의 지붕과 주차장에 햇빛발전소를 설치하여 재생에너지를 직접 생산하고, 에너지 소비가 큰 냉난방 기기와 조명 기기를 에너지 효율이 높은 기기로 대체하면서 단열과 시스템 개선을 통해 에너지가 낭비되는 여러 요인들을 제거하는 에너지 효율화로도 탄소배출 저감 효과는 상당할 것입니다. 또한 교회가 공동체 식사를 나눌 때에 탄소발생이 많은 육류대신 탄소발생이 적은 지역 농산물, 유기농 농산물을 사용하고, 교회의 공용 차량을 탄소배출이 적은 친환경 차량으로 구입하며,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탄소배출이 가장 높은 교통수단인 비행기 대신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도 상당량의 탄소배출을 저감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탈탄소교회는 단지 교회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저감하는 일 뿐만이 아니라, 기후위기를 야기한 산업문명을 넘어서서 정의, 평화, 생명의 경제를 향한 우리 사회의 생태적 전환을 이끌어가는 ‘민회’(民會), ‘에클레시아’(Ecclesia)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선교 초창기에 선교사들이 교육을 통해 한국사회에 근대시민의식을 고취시켰던 것처럼, 기후위기 시대에 교회가 ‘기후학교’를 열어 기후교육, 환경교육, 생태교육 등의 시민교육을 위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는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살펴온 교회의 구제의 정신을 바탕으로 기후약자, 기후난민들을 위한 기후기금을 마련하여 위기에 처한 이들을 긴급 지원하는 기후복지를 통해 우리 사회의 기후책임의식을 고취시키고, 나아가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가 약자에게 집중되고 혜택은 부자에게 돌아가는 불평등한 사회경제 시스템을 바로잡아 기후정의를 실현하는 일에도 교회의 역할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세계 선교를 향한 열심을 가지고 있는 한국교회는 세계 각국의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와 고통의 현장 속에서 ‘기후선교’를 모색함으로써 생태적 선교의 모델을 만드는 일에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여러 교회와 단체의 후원으로 지난 2010년부터 기후위기로 사막화의 피해를 겪고 있는 기후재난국가 몽골에 10여 년 동안 나무를 심어 숲을 조성하는 일을 계속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오랜 시간 이어져온 몽골의 유목문화전통 속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들이 현지 사람들에게 낯선 일로 여겨졌지만, 10여 년 동안 숲을 조성하는 과정 가운데서 주변 지역 주민들이 숲의 복원에 차차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해 판매하여 소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되자 지방 정부와 지역 사회에서 더욱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먼 곳에 있는 여러 한국교회들이 힘을 모아 몽골의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것도 주변에 자연스럽게 알려져 한국교회의 몽골 선교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적잖은 기여를 했습니다. 즉 지역 생태계 복원 사업은 해외 선교를 통해 교회를 세우고, 학교, 병원을 짓는 것처럼 의미 있는 선교 활동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태적 선교는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중요한 선교의 모델로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잔치로 비유하셨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은 잔치가 벌어져야 할 하나님의 창조 세계인 이 땅이 기후위기로 인해 지속가능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즉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중단될 위기의 상황입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에서 생명의 잔치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는 일, 하나님의 계획대로 더욱 풍성한 잔치가 계속되도록 하는 일이 지금 우리 교회에게 주어진 엄중한 선교적 과제 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께서는 두려움과 걱정이 아닌 희망과 즐거움으로 이 일을 감당할 교회를 찾고 계시지 않을까요?


(이 글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 발행하는 활천 803권 3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