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지구 생태계에서 인간 종의 미래

작성일
2020-10-1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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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태계에서 인간 종의 미래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지구 생태계는 상호의존의 관계 속에서 생태적 균형을 긴밀히 유지하는 정교하고 거대한 생명 시스템이다. 지구 생태계는 외부 환경의 변화로 일시적, 국지적으로 생태계의 균형 상태가 무너질 때 일부 종의 개체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게 되거나 감소하게 되면서 다시 생태적 균형을 이루는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 지구 생태계는 이러한 탄력성을 바탕으로 생태계의 생명다양성을 유지하고 변화시키며 확대시켜 왔다. 하지만 지구의 오랜 역사 속에서 지구 생태계는 지구 환경의 큰 변화로 종의 구성이 크게 뒤바뀌는 대멸종의 순간들도 여러 차례 경험해왔다. 현재의 지구 생태계 역시 지구 생태계의 초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약 6,600만 년 전에 발생한 백악기-팔레오기 대멸종(Cretaceous–Paleogene extinction event) 이후에 이루어진 생태적 균형의 결과물이다.

코로나19는 인간의 위기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이 세계 곳곳에서 계속 확대되어 사망자들이 증가하고, 방역 시스템이 무력화되고, 경제사회적 불안이 증폭하는 팬데믹의 상황도 물론 위기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통해 분명이 드러난 보다 근본적이고 심각한 위기는, 지금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 생태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방식이 현재의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인간이라는 종이 만들고 있는 위기이다. 지금 인간은 이러한 지구 생태계의 역학을 무시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지구 생태계 전체의 균형을 뒤흔들어놓는 강력한 존재이다. 인간이 현재의 지구 생태계가 생태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공급, 조절, 문화, 지원 등의 생태계 서비스(Ecosystem Service)를 과도하게 사용함으로써 이전에 지구 생태계가 경험했던 대멸종의 사건을 넘어서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이미 지구 생태계에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중간숙주로 밝혀진 천산갑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심각한 위기(Critically Endangered)에 처한 멸종위기 야생생물이다. 특히 최근 20년 사이에 천산갑 야생 개체의 수가 20%로 급감하였는데, 과도한 개발로 인해 야생 천산갑의 서식지가 급격히 감소하기도 하였지만 인간의 건강에 좋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로 약재와 식재료, 장신구의 재료를 얻기 위해 엄청난 양의 야생 천산갑이 인간에게 포획되었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에 열린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회의에서 100개 이상의 국가가 천산갑 거래 금지안에 동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이후에만 100만 마리 이상의 천산갑이 주로 중국과 나이지리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에서 불법으로 포획, 거래되었다. 2016년에서 2019년까지 모두 206.4톤에 달하는 천산갑의 비늘이 불법거래 현장에서 압수되었는데, 실제 거래된 천산갑 비늘의 양은 압수된 양의 최소 10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세계자연기금(WWF)에 따르면 천산갑을 포함한 불법 야생생물의 거래 규모는 연간 약 200억 달러에 달한다. 야생생물 불법거래 시장은 마약, 밀입국, 위조에 이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규모의 불법거래 시장이다. 생물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머지않아 지구에서 살아가는 800만 종의 동식물 가운데 100만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가 있다.

인간은 인간 자신과 인간이 필요로 하는 일부 종 이외와는 지구 생태계에서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맺기를 거부하고 인간이 만들어낸 일방적인 시스템으로 지구 생태계를 종속시키려고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하지만 지구 생태계는 인간 종의 역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오랜 시간동안 생명 시스템을 유지해왔으며, 그 오랜 시간동안 인간 종에 버금가는 탁월한 생명체들이 존재했다 소멸하는 사건들이 수없이 이어져왔다. 이러한 인간 종의 시도는 이전의 지구 생태계에서 일어났던 수차례의 대멸종 사건들의 하나로 종식이 되고 새로운 연대기가 이어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구 생태계는 생태적 균형을 회복하며 소멸된 인간 이외의 종들과 생명다양성을 확대해 나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의 경험을 인간 종이 지구 생태계와 새로운 관계를 맺는 생태적 전환(Ecological transiction)의 계기로 삼는다면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공존의 시간이 연장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인간이 지구 생태계와 맺었던 일방적인 관계를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모색들이 이미 다양한 모습으로 시도되고 있다.

지난 1994년, 호주 동부 해안가의 브리즈번 인근 헨드라라는 마을의 한 마구간에서 말과 사람에게서 급성 호흡기와 발열 증상을 일으키고 뇌수막염이 진행되는 인수공통 감염병이 보고되었다. 사람들은 이 질병이 처음 발생한 지역의 이름을 따서 감염병의 원인인 바이러스를 헨드라 바이러스라고 명명했고, 이 헨드라 바이러스 감염으로 13마리의 말과 한 명의 사람이 사망을 하게 되었다. 역학조사 결과 헨드라 바이러스는 호주의 과일박쥐를 숙주로 삼았던 바이러스인 것이 밝혀졌다. 헨드라 마을 주변의 대규모 산림개간으로 인해 서식지를 잃은 과일박쥐들이 헨드라 마을에 있던 마구간 주변의 과일나무의 열매를 먹이로 삼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과일박쥐의 헨드라 바이러스가 말과 사람에게 전파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헨드라 바이러스를 경험한 호주 정부의 예방조치이다. 호주 정부는 2018년 법 개정을 통해 대규모 산림개간이 과일박쥐 서식지를 파괴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산림을 보호하는 정책을 마련한다. 또한 과일박쥐의 생태를 연구하여 과일박쥐를 죽이거나 쫓는 것은 오히려 과일박쥐에게 스트레스를 줌으로써 핸드라 바이러스 감염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내고, 헨드라 바이러스의 주요 발생 지역 주민들에게 과일박쥐들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꽃과 나무를 안내하며 과일박쥐와의 접촉을 최대한 피하도록 하는 과일박쥐와의 공존을 우선하게 된다. 지금도 호주에서는 주요 과일박쥐 4종의 생태와 이들이 바이러스와 맺고 있는 다양한 관계에 대한 연구들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야생생물과는 공존하되 야생생물로부터 감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를 최대한 관리하려는 호주의 감염병 예방 전략은 코로나19 팬데믹의 상황으로 드러난 인간의 위기의 현실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지역 생태계를 위해 인간이 아닌 생태계에 인간의 지위를 부여한 사례도 있다. 황거누이강은 활화산 통가리로에서 발원해 뉴질랜드 북섬땅 290㎞를 지나 바다로 흘러가는 뉴질랜드에서 세 번째로 긴 강이다. 뉴질랜드 원주민 마오리족은 이 황거누이강을 신성한 강으로 여기는 문화적 전통을 이어왔고 마오리족은 뉴질랜드 이주민들로부터 이 신성한 강을 지키기 위해 지난 160여 년 동안 치열한 싸움을 해야만 했다. 이제 황거누이강은 공익신탁이나 사단법인과 같은 법적인 인격이 부여된 존재이고 마오리족이 임명한 대표자 1명과 정부가 임명한 대리인 1명이 신탁 관리로써 강의 권리를 대변하고 있다. 또한 뉴질랜드 정부는 2017년에 통과된 법안에 따라 마오리족에 8000만 뉴질랜드달러를 보상하고, 강을 보존하기 위해 3000만 뉴질랜드달러를 추가로 투입하여 강의 원형을 회복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불교의 승려이자 평화운동가인 틱낫한은 불교의 정수를 담은 반야심경을 해설하면서 존재와 비존재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호존재(Inter-Being)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 글이 인쇄된 작은 종이 한 장도 언제인가는 나무였고, 강이었고, 하늘이었고, 산이었고, 바람이었고, 사람이었다는, 모든 존재는 홀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으며 다른 모든 존재와 연관되어 항상 상호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이천년 전의 석가모니가 생명체와 지구 생태계를 통찰하고 표현한 그 이상의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지 싶다. 여전히 문제는 지구 생태계가 아닌 인간의 몫이다. 신약성서 누가복음에서 예수가 이야기한 것처럼 지구 생태계는 자신이 지구의 중추신경계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 종이 생태적 회심과 전환을 통해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아들로서 합당한 존재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고 싶다. 하지만 인간의 회심과 전환이 가능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 아직 상호존재로서의 깨달음이 충분하지 못한 한 사람으로써 이 현실이 불안하고 두렵다. 지구 생태계는 인간이 없어도 이미 충분하다.

(이글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NCCK와 크리스챤아카데미가 공동으로 기획한 연속토론회 '코로나19 이후 생명과 자연에 대한 성찰'에서 논평으로 발표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