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으로

작성일
2020-09-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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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으로


송진순 이화여자대학교, 한국교회환경연구소


2020년은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가를 깨닫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가 일상이 될 즈음, 된더위에 앞서 찾아온 장마는 이례적인 기록들을 남겼다. 50일이 넘는 호우와 태풍으로 1,000건이 넘는 산사태가 일어났고, 섬진강의 제방을 비롯하여 전국 2,700여 개의 도로와 교량이 붕괴되었다. 도시는 물론이고, 논밭, 축사, 양식장 할 것 없이 홍수 피해는 막대했다. 50명이 넘는 인명피해와 6,000여 명의 이재민이 속출했다. 그중에는 인공수초섬을 지키려다 실종된 공무원이 있었고, 침수된 주택에서 나오다 가족의 손을 놓친 여덟 살 아이도, 새벽에 들이닥친 토사에 매몰된 모녀도 있었다.

전국의 침수피해 상황을 보도하는 수치와 그래프, 불어난 강물에 자취를 감춘 마을과 도로, 유실된 경작지, 폐허가 된 농가 등, 참혹한 이미지들은 연일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정작 말해야 하는 것에는 침묵했다. 한순간에 가족을 잃고 삶의 터전이 파괴된 이들의 고통은 숫자나 이미지로 환산될 수 없었다. 더욱이 대중이든, 정부 정책이든 한사람 한사람의 목소리가 본질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이들이 경험할 상실감과 경제적 고통이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릴지, 아니 그 이상의 어떠한 트라우마로 남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 다만 우리에게 요청되는 것은 채널을 돌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문제는 이미 경험했고,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일상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는 데 있다. 2018년 40도에 육박했던 폭염에서 2019년 연쇄적인 태풍과 평균 3℃가 넘는 따뜻한 겨울, 그리고 2020년 유례없는 긴 장마에 이르기까지, 이후 이재민 지원, 식량 수급, 도로와 제방, 산림 복구에 따른 경제적, 정책적 수습 과정이 신속히 진행된다 해도, 지금의 위기는 우리에게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첫째는 가시화된 재난들이 점차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그 폐해가 고스란히 이 사회의 가장 낮은 자들, 특히 자신의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과 동물(자연)의 몫이라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연을 착취하고 인간을 무력한 노동자로 만들어 버린 신자유주의 사회경제체제, 다시 말해 인간이 빚어낸 결과다.

아직 종식되지 않은 코로나의 위협과 전 세계에서 속출하는 이상기후, 이로 인한 환경 난민과 더욱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과 부의 양극화는 긴밀한 연속선 상에 서 있다. 이년 전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지구온난화 1.5℃ 특별보고서’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지금의 절반 이하로 낮추지 않으면 파국적인 재난이 닥칠 것을 예고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재앙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등 첨단 과학 기술과 혁신적 진보의 경제 체제가 인류를 구원해 주리라는 낙관적 기대감에 젖어있다.

“#이것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시태그 운동이 진행 중이다. 집중호우에 파괴되는 인간과 자연을 바라보면서, 기후위기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닌 현실이며, 일상화된 기후위기를 외면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생태 위기 앞에서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인간이 자연 세계를 돌볼 책임에 대해 우리는 너무 익숙하게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인지할수록 우리가 청지기직을 수행할만한 자격이 있는가 부끄러울 뿐이다. 그동안 인간이 하나님을 명분으로 자연을 인질삼아 지구환경에 가한 착취와 폭력이 말할 수 없이 가학적이기 때문이다. 개신교회가 한국 주류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에도 주요 교단 내 조직에 환경 기구가 설치되어 있고, 매년 총회 안건에 생태 문제가 의제로 상정되었는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안타깝게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전무한 것이 교회의 현실이다. 자연이나 인간이나 모두 동등하게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자연 환경없이 인간은 한순간도 살 수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 명제 앞에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며 동시에 얼마나 취약한가를 고백하는 성찰이 응당 우리 안에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매 순간 그를 따라 살아가기로 결단한 이들이다. 하나님의 부르심,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몸을 내어준 구원의 역사는 샬롬, 모두를 위한 평화의 삶을 전제한다. 샬롬, ‘안녕하세요’라는 일상의 인사에 깃든 안녕과 평화는 인간만의 안녕과 온전함을 말하지 않는다. 온전한 평화는 하나님의 피조 세계와 더불어 그분의 공의가 실현되는 삶을 말한다. 이를 위해 그분의 은총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이다.

20년 전 기독교환경운동연대에서 녹색교회 포럼이 있었다. “왜 교회를 푸르게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 자료에는 한 편의 시가 실렸다. 우리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서 피조세계의 고통에 공감하고 슬퍼하며 새로운 신앙을 결단해야 한다고 전한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심정으로” 기후위기를 바로 인식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샬롬에 응답하는 삶,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요청이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생명에게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는 일이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과거에 대한 우리의 빚을 인정하는 것이다.
씨앗은 결코 무에서 창조되지 않았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자연이 하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자연 안에서 모든 생명체가 서로 의존하고 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슬픔의 표시이다.
우리는 은혜로 받은 생명을 당연하다고 잘못 알았었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사회적 선언을 하는 것이다.
녹색운동을 위하여 그리고 생태계의 보전을 위하여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바라보기에 즐겁고 영혼을 하늘로 들어올린다.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생명나무의 가지이며 삶과 죽음을 함께 공유한다.

시몬스 목사, 1987년 Fullwood 교회 전임자를 기념하는 나무를 심으며 쓴 시
http://greenchrist.dothome.co.kr/01susang/01grforum/01grforuml.htm

(이 글은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소식지 '녹색은총' 2020 하반기 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