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작성일
2021-09-0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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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문명에서 내장문명으로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 (김상준 지음, 아카넷, 2021년) 서평

이진형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장자> 1편 ‘소요유’에는 날개의 길이가 삼천리이고, 하루에 9만 리를 날아간다는 ‘붕새’가 묘사된다. 북명 바다의 큰 물고기가 변신한 붕새는 바다가 움직이면 6개월 동안 남명 검은 바다로 큰 날개짓을 하며 날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붕새는 상상속의 새일 뿐이라고? 감상준 교수는 붕새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의 머리 위로 유유히 날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구에서 가장 추운 지역인 아시아 대륙의 시베리아 땅과 지구에 쏟아진 태양에너지를 가장 많이 응축하고 있는 뜨거운 태평양 사이의 대기의 흐름으로 발생하는 계절풍을 붕새로 본 것이다.

지구의 한극과 열극 간의 기후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동아시아 지역은 수만 년 동안 뚜렷한 4계절과 풍부한 강수량을 바탕으로 내부적 확장을 지향하는 소농 중심의 농경 문명이 성장했다. 특히 근대 이후 고도화된 소농농업의 생산성은 동아시아의 인구와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며 ‘내장적’ 번영을 누린다. 반면 서구유럽은 근대 이후 전쟁체제를 바탕으로 한 외부적 ‘팽창’에 골몰했다. 아프리카와 아메리카의 식민지 지배와 약탈을 통한 성장한 근대 서구문명은 결국 동아시아마저 움켜쥐게 된다. 우월한 서구유럽이 열등한 동아시아를 점령하는 ‘서세동점’이 이루어진 것이다.

하지만 근대서구유럽 문명은 끊임없이 외부의 적을 만들어 팽창해야만 하는 문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서구유럽의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농민, 노동자, 여성, 그리고 지속적인 자연의 지배와 약탈은 결국 사회경제적, 정치군사적, 기후환경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특히 기후환경의 위기는 대파국 혹은 대전환이라는 문명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이르게 했다. <붕새의 날개>의 저자는 이제 자연의 흐름, 지구의 흐름, 천하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만이 파국이 아닌 성공으로 귀결하는 방향이고, 다시 출발했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바로 초기근대 동아시아의 내장 문명의 원형을 바탕으로 한 탈근대적인 내장 문명을 향해 문명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내장 문명은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평등을 증진시키고, 선진국과 개도국의 격차를 해소하며, 이념적 패권다툼이 아닌 상호협력을 이루며, 인류의 생태의식을 각성하고, 새로운 과학의 성장을 도모하는 문명이다. 우월한 힘을 통한 지배와 폭력 대신, 수평적 협력을 통한 생산력과 생산력의 확장이 보편화되는 것이다. 저자는 문명의 전환은 근대문명을 종결하고 새로운 문명을 만드는 20만 년 호모 사피엔스 인류사 최초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문명적 전환은 호모 사피엔스가 집단적인 협동성과 수평성을 바탕으로 빙하기를 견뎌내고 홀로세를 맞이했던 인간성과 사회성이 인류의 문화와 공동체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붕새의 날개짓이 계속되고 있는 한 아직 인류에게는 희망이 있다. 하지만 최근 기후위기는 이 거대한 붕새조차 지구의 생명과 함께 소멸할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최근 발표된 IPCC의 1차 보고서는 국제사회가 2050년까지 지구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려는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이대로라면 바로 10년 뒤에 지구 평균기온상승이 1.5도를 넘어서게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엄청난 규모의 기후난민 발생과 생물다양성의 소멸을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최근 기상학자들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으로 인해 10만 년 동안 계속되어온 지구적 기상현상인 엘리뇨와 라니냐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을 내어놓았다. 문명 전환의 시간이 그리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다면,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거의 1,000페이지에 이르는 분량이지만 하룻밤새 후딱 읽을 수 있는 글과 내용이다.

(이 글은 8월 29일 바이블25 오늘의 책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