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신앙 이야기

그린 엑소더스, 생태적 전환을 향한 여정

작성일
2021-08-2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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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엑소더스(Green Exodus) : 기후위기 시대, 생태적 전환을 위한 한국교회의 여정

제1편 : 그린 엑소더스, 생태적 전환을 향한 여정


이진형 (목사,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사무총장)

문명과 기후
고고학적인 발견에 의하면 인류가 소위 문명을 형성한 것은 기원전 10,000년 이후의 일이다. 세계 4대 문명이라고 하는 메소포타미아, 황하, 이집트, 인더스 문명은 기원전 6,500년에서 기원전 3,000년 무렵에 강을 이용한 관개농업이 가능해지면서 번영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왜 인류는 기원전 10,000년 이전에는 문명을 이루지 못했을까?
지질학은 그 이유를 기원전 10,000년이 되어서야 258만년 가량 계속되었던 빙하기(Ice age), ‘플라이스토세’(Pleistocene)가 끝나고 비로써 온화한 기후의 ‘홀로세’(Holocene)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기원전 10,000년 이전의 유라시아 대륙은 두껍게 얼음이 쌓여있어 사람들이 문명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었고, 기원전 6,000년 무렵 고온다습한 ‘홀로세 기후 최적기’를 거치고 나서야 현재와 같은 생태환경이 만들어졌다. 인류의 문명이란 온화한 날씨라는 기후조건이 충족되었을 때 비로써 존재하게 된 것이다.
문명의 탄생 이후로도 기후는 인류 문명의 흥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13세기부터 17세기까지 이어진 소빙기(little ice age)에는 식량생산 감소로 인한 인구감소와 집단적 이주가 발생했다. 특히 몽골 초원에 닥친 추위는 칭기즈 칸의 몽골제국 건설의 동력이 되어 유럽 문명의 민족대이동으로 인한 연쇄적 흥망을 연출했다. 또한 이 시기에 유럽에 패스트 팬데믹이 발생했던 것 역시 식량 확보를 위해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빈번해졌기 때문이었다.

기후변화, 그리고 기후위기
지난 8월 9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6차 보고서의 일부를 발표했다. 이번 보고서는 기후변화는 자연현상이 아닌 인간 활동에 의한 것이 분명하고, 현재대로라면 불과 10여 년 후에는 세계 평균기온 상승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를 넘어 극지방의 빙하가 대부분 사라지게 될 것이며, 생태계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담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해수면이 급격히 상승하게 될 것이고, 인류는 극한의 폭염, 가뭄, 홍수, 화재, 한파를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UN난민기구에서는 지금도 기후적 요인으로 인한 난민, 기후난민 발생이 해마다 2,500만 명을 넘어 전쟁으로 인한 난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불과 수년 안에 기후난민은 억 단위를 넘어서게 될 것이다. 기후변화는 현재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에 가장 심각하고도 급박한 위기를 발생시키고 있는 요인이다. 하지만 진정한 위기는 인류 문명 내부에 존재한다. 과학자들의 예측보다 빠른 속도로 기후재난이 현실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보다는 눈앞의 경제적 이익에 급급할 뿐이다.

기후난민,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
고고학자들은 기원전 2000년 무렵에 아브라함의 고향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우르(Ur)에 기후변화로 인한 농업생산 감소가 발생했고, 수백 년에 걸쳐 메소포타미아의 북쪽 지역으로 집단 이주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바로 이 시기는 창세기 11장의 아브라함이 아버지 데라와 함께 우르를 떠나 하란으로, 그리고 다시 가나안으로 이주했던 때이기도 하다.
창세기 12장은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인해 가나안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가서 아내 사래를 누이라고 속여 목숨을 부지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또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역시 흉년이 들어 그랄로 이주를 해야 했고(창26), 손자 야곱의 때에 이르러서는 가뭄과 기근으로 인해 온 가족이 이집트로 이주를 해야만 했다(창46).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은 기후재난으로 이주를 해야 했던 전형적인 기후난민이었다.

출애굽 : 지배와 폭력의 문명에서 야훼 하나님 신앙으로
기후난민으로 이집트 땅에 머물렀던 야곱의 자손들은 이집트에서 학대를 받으며 도시를 짓는 노예가 되고 말았다(출1). 이집트 문명은 이집트를 찾아온 기후난민들의 돈과 가축을 뺏은 것(창47)도 모자라, 끝내 그들을 노예를 삼았던 야만적인 지배와 폭력의 문명이었다. 또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이 베풀어준 풍요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집트의 자연환경을 지속적으로 약탈해서 거대한 도시와 건축물을 세워나갔다.
결국 이집트 문명은 거대한 생태적 재앙을 경험하게 된다. 풍요를 베풀어주었던 강물이 오염되고(출7), 균형을 상실한 나일강 생태계에 개구리와 이, 파리, 메뚜기들이 창궐하는 ‘생태계 교란’ 현상이 일어난다(창8-10). 더불어 가축들과 사람에게도 전염병이 퍼져나간다(창10). 성서가 기록하고 있는 10가지 재앙은 생태계의 한계를 넘어서 성장하려했던 인류 문명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생태적 재난이다.
히브리 사람들은 지배와 폭력의 이집트 문명을 거부하고 출애굽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집트의 파라오를 비롯한 이집트 사람들은 그들의 지배와 폭력을 더욱 강화하며(출5) 출애굽을 가로막는다. 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결국 히브리 사람들은 야훼 하나님을 이집트 땅에서는 예배할 수 없어 가나안 땅으로 나가 예배(출12)를 드린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가나안을 향한 여정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며(출13), 샘을 열어 물을 마시게 하시며(출15),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불리 먹이신다(출16). 성서의 야훼 하나님은 처절한 삶을 살아야했던 기후난민과 축복의 언약을 맺은 하나님이셨고, 지배와 폭력의 문명 속에서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찾아 부르짓던 이들의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현대 문명과 기후위기
인류의 모든 문명은 돌봄과 협력, 그리고 지배와 폭력의 양면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근대이후 서구산업문명이 세계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폭력적인 식민지배와 지구 생태계의 약탈은 보편성을 얻게 되었다. 인간의 우월적 지위와 경제성장만이 최고의 신앙이 된 현대 문명의 거대한 신전에서는 생태계의 상호의존성과 인간 사회의 호혜의 전통은 축출되어야 할 열등한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기후위기는 현대문명의 지속불가능성을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의 지구 생태계의 약탈과 힘의 지배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여섯 번째의 대멸종을 앞당길 뿐이기 때문에 문명의 작동원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의 정점에서 지구 생태계의 한계를 고려한 경제활동과 인류의 상호협력을 증진시키는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그린 엑소더스, 생태적 전환의 여정
성서는 히브리 사람들의 야훼 하나님 신앙이 이집트 문명으로부터 가나안 생명공동체를 이루는 출애굽 사건의 핵심이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신앙은 당장 눈앞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 할지라도 끝내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다(히11). 그런데 지금 기후위기에 직면한 한국교회의 신앙은 지배와 약탈의 현대문명으로부터 생태문명으로의 전환을 이끌어낼 힘과 지혜를 가지고 있을까? 이미 한국교회 안에는 자발적인 청빈의 전통과 생태적 영성의 지혜가 존재하고 있고,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추구하는 녹색교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성장과 번영에 눈과 귀가 가려져 보려고 하지 않았으니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의 생태적 전환의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 지난 1982년에 한국교회의 환경선교를 위해 세워진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지난 2020년, 한국교회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그린 엑소더스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여러 사업들을 진행해나가고 있다. 올해는 ‘생명의 길 초록 발자국 캠페인’을 통해 많은 교회들이 생태적 전환의 여정에 동참하고 있다. 이 거룩한 여정에 더 많은 교회들이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게 될 것이다. 기후위기 시대, 교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 생명과 평화와 정의를 이루는 생태적 전환에 있기 때문이다.


( 이 글은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뉴스앤조이의 공동기획으로 뉴스앤조이에 연재되는 글입니다.)